우리의 명절은 민족의 공동체적 삶이 집약된 잔치마당
어린 시절 정원 대보름날이 되면 우리는 무심코 오곡밥을 먹고, 부럼을 깨물었다. 그것이 가끔 먹는 음식이므로 맛도 있었고, 귀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부모님을 따라 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어렸을 때에는 그저 무작정 부모님을 따라 빌었던 것인데,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둥근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어본 기억은 없는가? 생활에 지쳐 피곤한 어깨를 늘어뜨리고 귀가 할 무렵 한없이 넓고 원만해 보이는 보름달을 보면 어쩐지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간절한 기분에 젖어든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어린 시절 명절 때 맛본 들뜬 기쁨, 그때 배운 기원의 방법, 지혜, 예절 등을 가지고 한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먹은 오곡밥, 그저 깨문 밤 한톨, 호두 한 알의 의미를 차츰차츰 깨달아가다 보니 늙어버렸다는 예전 할머니들의 말씀은 바로 이것을 뜻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에는 수천 년 동안 이땅에서 살아온 조상들의 모든 것이 전해져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고유의 생활풍습을 통해 우리에게 자기 혼을 물려주었다. 그 점에 있어서 세시풍속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한편 우리의 명절은 공동체적 삶의 집약적 표현이었다. 함께 모여 풍년을 기원하고, 서로의 복을 빌어주는 모두의 잔칫마당이었던 것이다.
정월에는 농악대가 마을을 돌면서 출원하는 지신밟기, 마을 청년들이 두 패로 갈리어 하던 윷놀이를 비롯해 농사 짓는 모습을 본뜬 각종 유희를 즐겼다. 농악대가 마을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할 때면 각 집에서는 대문을 활짝 젖히고 장독대 뚜껑을 열어 액막이를 하였다. 이때 장독대에 물을 떠다놓고 두 손 모아 자손들의 안녕을 빌기도 하였다.
또 정월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 할머니에게 드리는 당산굿, 공동 우물을 지키고자 하는 샘굿을 하여 부락 액막이를 하고, 각 집마다 지신밟기를 할 때에는 부엌신에게 드리는 조왕굿을 드리며 가정의 안녕을 빌었다.
정월 대보름
고대로부터 이 날에는 명이 길기를 빌어 약밥을 먹고, 아침에는 귀밝이술을 마시며 각종 나물과 오곡밥을 먹는다. 밤, 잣, 호도, 땅콩 등 부럼을 까서 먹는다. 밤이 되어 보름달이 뜨면 달맞이를 하며 두 손 모아 정성껏 소원을 빌었다.
약밥 먹는 풍속이 유래된 것은 신라 때부터라고 한다. 신라 소지왕 때 어느 보름날 왕궁에 자객이 침입하였다. 그런데 까마귀가 임금을 도와 거문곳집 속에 든 자객을 잡게 해주었다. 임금은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보답하였고 이때부터 약밥 짓는 풍습이 생겼다는 것이다. 후에 각 가정에서는 까마귀가 오면 액운이 온다 하여 액운을 막기 위해 약밥을 짓기도 하였다.
대보름날 오곡밥을 지어 먹은 것은 겨우내 부족하기 쉬운 각종 영양소를 오곡으로 보충하려는 뜻이었다. 나물을 먹은 것은 비타민 및 각종 유기물질의 섭취를 위한 것이다. 밤, 잣, 호도, 땅콩 등은 모두 따뜻한 음식들이며 영양가, 특히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한 것들이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귀하여 각종 부스럼을 앓는 경우가 많았다. 나물로 비타민을 섭취하고 밤, 잣, 호도, 땅콩 등으로 균형 잡힌 영양을 공급하면 부스럼을 예방할 수 있었다.
특별히 날을 잡아 이것들을 먹은 데에는 조상들의 공동체적인 생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명절이 되면 있는 집은 있는 대로, 가난한 집은 가난한 대로 반드시 명절 음식을 해먹었으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했다. 그러므로 어느 집 하나 빠지지 않고 반드시 영양 공급을 해주기 위하여 특별한 날을 잡았다고 여겨진다.
한편, 정월 대보름에는 달집 태우기를 비롯하여 각 지방마다 전해 내려오는 민속놀이를 하였다. 달집 태우기에는 대보름날 보름달 앞에서 온갖 액을 태워 한 해의 안녕을 비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이 날에는 각 집마다 돌아다니며 찰밥을 거둔 다음 술을 빚어 2월 초하룻날, 영등날 맞을 준비를 하였다. 대보름날 부녀자들이 하는 놀이로는 널뛰기가 있다. 널뛰기를 함으로써 다리를 튼튼하게 하려던 것이다. /민족생활의학연구소 장두석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