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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훈장처럼 달고 다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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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훈장처럼 달고 다니세요

〔벼리의 돋보기〕이대엽과 함께 바보가 되지 말자

벼리 | 기사입력 2008/11/19 [12:40]

시장, 훈장처럼 달고 다니세요

〔벼리의 돋보기〕이대엽과 함께 바보가 되지 말자

벼리 | 입력 : 2008/11/19 [12:40]
이대엽, 공직을 사유물로 만들다

이대엽은 성남시장입니다. ‘경기도 성남시’의 시장입니다. 이대엽 시장실 벽에는 보건복지부 등 외부의 기관이나 사회단체가 준 상패들이 걸려 있습니다. ‘2008 기초노령연금 최우수기관 경기도 성남시’, ‘환경관리 우수자치단체 그린시티 2006 경기도 성남시’, ‘2008 대한민국 대표 축제 문화예술부문 대상 경기도 성남시 탄천페스티벌’이 그것들입니다. 이런 상패들을 벼리와 김락중 기자가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김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김락중 기자가 답했습니다.

“이런 상을 받기까지 관계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했을 것이고, 또 협력한 수많은 성남시민들이 있을 겁니다. 결국 이 상들은 성남시민이 받은 상입니다. 그래서 수상자도 ‘경기도 성남시’라고 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럼 상패들은 마땅히 시민들이 오가는 공개공간에 전시하는 게 맞습니다. 좋은 일은 나눠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성남시장 이대엽’에게 준 상이 결코 아닙니다. 어떻게 시장실 벽에 상패를 붙여놓을 수 있습니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이대엽 시장이 시장직을 공직이 아닌 사유물로 간주하는 그런 증거로 생각합니다.”

김 기자의 답은 핵심을 찔렀습니다. 조금도 빼고 보탤 게 없습니다. 김 기자의 지적은 ‘이대엽’이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제 이름과 제 삶을 걸고 시정을 펴는 시장이 아니라 공직을 사유물로 간주하면서 수준 이하의 시정을 펴는 한 가련한 인간의 실상을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벼리는 김 기자의 말에 시민과 함께 나누어야 할 상마저 제 사무실의 벽에다가 ‘생색내기’로 써먹는 한 저급한 인간에 대해 성남시장직을 더 맡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습니다. 어찌 김 기자가 말한 이번 일 뿐이겠습니까. 이대엽 시장은 처음 시장이 되기 위해 시장실을 투명유리를 해서라도 시민들과의 소통공간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남투데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인 이상 집단민원에 대한 이대엽 시장의 올해 민원인 접촉은 단 1건’에 불과합니다. 시민들이 시장을 만나려고 할 때는 그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시민들이 이 시장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 성남시청사 2층 시장실 입구 복도에 내걸린 우수 지자체 각종 표창패들....     © 성남투데이

이대엽의 생색내기, 남의 욕망=짜가욕망에서 오다

김 기자의 지적은 <왜 이대엽 시장이 생색내기에 빠져들었을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이 궁금증에 답하려는 것이 오늘 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의 실마리를 열었습니다. <이 시장이 시민들과 나누어야 할 상패를 제 사무실의 벽에 붙이는 행위, 후손을 위해 반드시 남겨두어야 할 그린벨트 땅에다가 뜬금없이 초호화 시청사를 짓는 행위 등이 보여주는 것이 생색내기다. 이 ‘생색내기’라는 말, 아니 이 시장을 통해 나타나는 이 기괴한 현상에 대해서 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색내기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는 전혀 생각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체험적으로 알고 있듯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제 주견으로 사는 사람은 결코 생색내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역으로 입증되는 특이현상입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은 그 욕망이 자발적인 욕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 이 있듯이 그것은 선망하는 태도에서만 발견되는 욕망입니다. 왜 선망하겠습니까. 선망 받고 싶어서입니다.

남에게 선망하는 것이 있어서 자신이 선망하는 것처럼 자신도 남으로부터 선망 받고 싶어서 남을 선망하는 것입니다. 선망을 모방으로 바꾸면 ‘왜 선망하느냐? 선망 받고 싶어서다’라는 말은 “왜 모방하느냐? 모방 받고 싶어서다‘라는 말이 됩니다. 말장난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망이라고 믿는 게 실은 남의 것을 모방하기도 하고 남으로부터 모방 받고 싶어 하는, 그런 ’모방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원본이 아닌 복사본에 지나지 않는 이 모방욕망이야말로 실은 자기의 욕망이라고 믿는 것의 실체인 것입니다.

생색내기는 남을 모방하는 욕망입니다. 따라서 남의 욕망 결국 ‘짜가욕망’입니다. 동시에 생색내기는 남으로부터 모방 받고 싶어 하는 욕망입니다. 따라서 ‘과시욕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과시는 남을 무시하고 짓밟는 짓입니다. 왕따감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이 말은 모방하려는 욕망보다 모방 받으려는 욕망이 더 뿌리가 깊고 따라서 그만큼 모방 받으려는 욕망이 끈질기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시장의 끝이 없는 생색내기 사례들은 이런 끈질김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시장이 보여주는 생색내기의 사례들은 그것이 자기의 욕망이 아니라 남의 욕망인 짜가욕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비싼 혈세 들여 선거까지 치러가며 부여받은 성남시장이란 그 신성한 공직을 사유물로 간주해 제 주견도 배어 있지 않은 남의 욕망, 짜가욕망이나 부리는 일로 쓰다니요! 어리석은 시장의 행각으로 인해 상상을 초월하는 시민혈세가 줄줄 새나가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들을 조장하는 민주주의는 압살 당하고, 그만큼 성남지역사회가 쇠퇴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은 지금 분명한 사실이 아닌지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주견이 있어야 합니다. 주견이 없는 사람은 바보, 멍텅구리입니다. 사람이 주견을 갖기 위해서는 사람이란 존재를 ‘일반성(가령 인류)-개체성(개인)’이란 회로에 갇혀서 바라봐선 안 됩니다.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모든 이념, 사상이 이 회로에 근거합니다. 이 회로에 갇혀서는 어떤 사람도 한낱 개떼와 같은 무리나 패거리의 일원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고유한 제 이름이 있고 제 삶이 분명 존재하는데 이런 패거리의 일원으로 간주되는 삶이야말로 비극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주견을 갖기 위해서는 사람이란 존재가 ‘보편성-단독성’이란 회로에서만 자신의 고유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회로에 대한 자각은 제 이름, 제 삶을 걸고 행하는 어떤 것에도 매개물을 개입하지 않게 만듭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보편적인 어떤 것과 접속할 때 오로지 제 이름과 제 삶을 걸고 접속할 뿐 어떤 권위도, 제도도, 이념도, 사상도 모방해야 할 모델로서 개입하지 않게 만듭니다. 불순물처럼 끼어드는 매개물이야말로 변전에 변전을 거듭할 뿐입니다. 이 회로에선 오직 현실 직시와 자기 결단이라는 비약의 반복만이 있습니다. 고유성이라는 주견은 이렇게 해서만 탄생하는 것이죠.

▲ 이 시장이 시민들과 나누어야 할 상패를 제 사무실의 벽에 붙이는 행위, 후손을 위해 반드시 남겨두어야 할 그린벨트 땅에다가 뜬금없이 초호화 시청사를 짓는 행위 등이 보여주는 것이 생색내기다.     © 성남투데이

훈장처럼 달고 다녀야 제대로 된 생색내기다

이 시장의 생색내기가 남의 욕망, 모방욕망 곧 짜가욕망에서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분명합니다. 그의 생색내기는 이대엽이라는 고유한 제 이름, 제 삶을 걸고 시장직을 수행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시장의 각종 생색내기를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물론 이 화는 시민의 입장에서 나오는 ‘사회적 공분’이란 보편적인 맥락에서죠. 이 보편성이 앙리 베르그송의 태도를 빌리자면 아주 정당한 ‘사회적 복수’를 요구하게 합니다.

“이대엽 시장, 이왕 생색내기 하려면 훈장처럼 가슴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제대로 된 생색내기, 진짜 생색내기가 아닐까 싶은데 어떻소? 그렇게 해보겠소? 경기도 성남시의 각종 수상 사실과 그 기쁨을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보는데 이 시장, 어떻소?”

그렇습니다. 제대로 큰 어른과 제대로 크지 못한 어른은 다릅니다. 그것은 어른과 아이의 차이와 같습니다. 어른과 아이는 다릅니다. 아이는 가령 아무 생각도 없이 전쟁놀이를 합니다. 그러나 어른은 결코 전쟁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어른은 놀이가 되는 그 전쟁의 실상이 실은 동물적인 살육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어른은 전쟁놀이라는 모델을 결코 빌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입니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것은 이대엽 시장의 생색내기라는 그 모방욕망도 실은 하나의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주관이 없는 사람은 제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제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짜가욕망에 지나지 않는 모방욕망이라는 모델에 기댈 뿐입니다. 이대엽 시장은 지금도 여전히 ‘이대엽’이라는 고유한 제 이름, 제 삶을 걸고 시장직을 수행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도 한참 모자를 판에 그는 남의 욕망, 그 짜가욕망으로 생색내기나 하는 것을 시정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색내기나 하는 이대엽 시장에 대해 우리 모두는 함께 분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은 야만입니다. 사람은 결코 야만인이 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는 함께 슬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수준 이하의 사람을 성남시장에 앉힌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이니까요. 마지막으로 힘주어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함께 바보가 되지 맙시다. 이 시장의 생색내기는 지금 분명 성남을 퇴락으로 몰아가고 있으니까요. 특히 그와 함께 우리 모두는 바보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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