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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헛소리일까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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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헛소리일까 진실일까

〔벼리의 돋보기〕공복을 사복처럼 대하지 말라?

벼리 | 기사입력 2008/12/08 [00:34]

그 말, 헛소리일까 진실일까

〔벼리의 돋보기〕공복을 사복처럼 대하지 말라?

벼리 | 입력 : 2008/12/08 [00:34]
성남시공무원직장협의회에 새 회장단이 꾸려지는 과정에서 출마한 공무원들이 눈길을 끄는 말을 내놓았다. “공무원의 자긍심 우리가 지키겠다”며 “공무원이 시민의 머슴이라 하니까 마치 머슴처럼 대우하는 모든 외부세력으로부터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겠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들의 말은 헛소리일까? 어떤 진실을 반영하는 것일까?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헛소리가 될 수도 있고 진실을 반영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 제4대 성직협 회장단 선거에서  ‘공무원의 자긍심 우리가 지키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면서 출사표를 던져 당선된 김학봉 회장과 백운엽, 김용미 부회장.     © 성남투데이

이들이 말하는 시민의 머슴이란 공복(公僕)을 풀어쓴 말이다. 사회가 공무원에게 공복이란 호칭을 부여해준 것은 그들이 시민의 의지를 실행한다는 의미에서다. 이런 의미 밖에는 다른 게 없다. 이 같은 호칭 부여는 따라서 사회계약론의 관점에 서 있다. 게다가 자본주의에서 국가(지자체를 포함해서)라는 공동체의 업무 관장을 통해 시민의 의지를 실행하는 계급은 관료가 유일하다. 공복이란 호칭이 이런 역할에 대한 자각이나 인정을 드러내는 말이며 수사적으로는 찬사가 되는 이유다.

공복이란 말은 따라서 공무원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말, 게다가 그 척도가 되어주는 유일한 말이다. 그리고 이 같은 사회계약론의 관점에 있는 공복이란 호칭은 일반화된 해석 즉 사회의 상식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기까지 하다. 왕의 신하들은 공복이 아닌 사복(私僕)이다. 반대로 공무원은 사복이 아닌 공복이다. 공무원을 사복 부려먹듯이 사유화하는 선출직 공직자가 퇴출되어야 하고(이대엽 시장이 그렇다) 공무원을 사복 대하듯이 깔보는 저질시민(민원 현장에서 자주 보인다)을 결코 시민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누구도 공복이란 호칭에 다른 어떤 의미를 보탠다거나 뺀다거나 할 수 없다. 비틀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불순하다. 따라서 사회계약론의 관점에서는 이들 공무원들의 주장은 헛소리일 뿐이다. 이들이 공무원의 자긍심을 내세우면서도 끝내 헛소리를 하고 만 것은 맥락을 이탈해 사복이란 개념을 도입한 탓이다. “공무원이 시민의 머슴이라 하니까 마치 머슴처럼 대우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사회계약론의 관점에서는 이런 아전인수도 보기 힘들다. 이 경우, 공무원의 수준을 문제삼아도 괜찮다. 스스로 공복임을 과소평가했다는 자기비하의 책임을 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사회계약론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볼 경우 이들의 주장은 어떤 진실을 드러낸다. 우선 이 다른 관점에서 핵심은 관료는 스스로 자신을 독자적인 계급으로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다는 명제다. 독자적인 계급으로서의 관료의 자기보존 본능을 밝히는 이 명제에 따르면 관료는 관료가 아닌 사회(그 실체는 외부세력이란 이름 하에 포섭되는 정치인이나 시민이다)를 배제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주장에서 드러나는 진실이 아마 이것일 것이다.

이런 관료의 특성에 관한 인식은 아직은 일반화된 관념 즉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관료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실마리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논점인 것은 틀림없다. 우선 정치인 배제에 관해서는 의회를 통해 그것을 고찰한 헤겔의 통찰이 있다. 실제로 관료는 의회에 참여하는 정치인을 결코 동류로 간주하지 않는다. 사실이다. 헤겔은 정책의 결정 및 수행에서 공무원은 “의회가 있다고 해도 최선의 것을 이룰 수 있지만 의회가 없어도 최선의 것을 이룰 수 있다”(법철학)고 말했다.

의회민주주의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관료지배는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의회민주주의가 관료지배를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가능하다. 헤겔은 실제 의회민주주의가 관료가 내린 결정과 판단을 의회라는 장치를 통해 마치 시민들 자신이 결정하고 판단한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장치라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 관료가 독자적인 계급으로서 자립한다는 통찰을 헤겔은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막스 베버 역시 관료가 독자적인 계급이며 시민을 배제한다는 점을 관료제 연구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그것은 행정기능이 왜소화된 봉건제와 달리 오늘날의 국가로 이어지는, 행정기능이 극대화된 (가부장적)가산제(家産制)에 대한 언급을 통해 드러난다. 베버는 “자신을 신민의 복지의 보호자로서 정당화하지 않을 수 없다”(지배의 사회학)고 말했다. 이 정당화가 관료가 시민의 상전 노릇하려는 그런 관료지배에 관한 것임은 물론이다. 관료는 이런 정당화를 통해서 정책의 담당자로 등장한다는 것이 베버의 통찰이다.

관료를 구조적으로 파악하지 않고는 관료의 생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성남시공무원직장협의회가 노조냐 아니냐를 따지는 일도 부질없는 짓이다. 가령 임명권자와 공무원조직, 고위직과 중하위직이란 차이는 내부의 사소한 차이가 아닐까. 그것은 독자적인 계급으로서 이득의 일치라는 동일성보다 크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공무원 철밥통이라는 사회의 비난에는 이 비난이 지닌 도덕적 악취만 걷어내면 어떤 진실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관료가 독자적인 계급으로서 자립한다는 관점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사회로부터의 분리를 뜻하는 게 아닐까.

그럼 시민인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이며, 우리가 처한 딜레마다. 현재로선 한편으로는 국가라는 공동체의 업무를 관장하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에 대한 기대를 너무 갖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국가를 중심으로 곧 권력의 쟁취나 유지를 중심으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자들은 위험해 보이기 마련이다. 대개 이들은 당파적인 자들이다. 대신 시민인 우리에겐 다른 사유, 다른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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