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 광주대단지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별기고>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역사의 반격이 있을 뿐이다

하동근 | 기사입력 2009/08/10 [09:31]

‘8·10 광주대단지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별기고>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역사의 반격이 있을 뿐이다

하동근 | 입력 : 2009/08/10 [09:31]
▲ 하동근 성남문화연구소장.      ©성남투데이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성남은 신도시이다. 정확하게 40년 전이다.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가 신도시계획의 대상이었고 지금의 구시가지 일대와 맞물린다. 공업도시 울산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신도시가 성남이다. 믿겨 지시는가? 그 인공성과 계획도시성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당시 계획은 국가재정으로 재원을 충당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공영개발’ 그런데 ‘공영’과 ‘경영’은 비슷한 어감에도 그 내용이 많이 다르다. 지금의 토개공과 주공이 장사해서 개발하는 방식과 당시 성남신도시개발계획인 ‘일단의 주택단지 경영사업’은 일반개발사업과 투기개발사업 이라는 차이점을 갖는다.
 
지금의 개발은 ‘선개발 후입주’(이런 말은 없다. 당연하므로)인데 대하여 당시 투기개발은 ‘선입주 후개발’이다. SOC 건설비용 까지도 투기사업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단다. 개발의 ‘실용논리’는 그 한계가 없다. 사람들이 붐비면 땅값이 오르는 투기방정식을 박정희 정부와 김현옥 서울시장이 채용했던 것이다. 손 안대고 코푸는 계획.

그 신비한 계획은 두 개의 축으로 만들어졌다. 서울의 과잉도시화(서울은 만원이다. 소설가 이호철의 연재소설)의 문제해결과 경영사업방식. 그런데 그 두 축은 그런 식으로 궁합을 맞추는 관계가 아니다. 계획의 폭력성, 투기의 임시성(선거가 끝나면서 거품이 날아갔다)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주민들 불만의 대규모 폭발이 발생했다. 당시 인구 12만 명 중에 5만 명 가량이 모였다. 상상이 되시는가?

경찰지서와 성남출장소를 비롯한 관공서들이 불타고 관용차들이 불붙은 채로 독정천(은행주공에서 삼부아파트를 흘러 탄천으로 간다) 바닥에 자빠뜨려졌다. 공공의 이름을 쓴 모든 행정이 부정되었다. 가자! 청와대로! 공직자들은 동네에서 타자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을 피했다. 오겠다던 양택식 시장도 피했단다. (강나루 다리에서 자동차 바퀴가 펑크 났다는 설과 엄청난 규모에 놀라 피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사건의 효과로 모든 요구조건이 가감 없이 관철되었다. 성남의 공단이 마련되었다. 사업의 주체도 서울시에서 경기도로 이관되었다. 경기도는 투기와는 상관없는 희망대 도서관, 희망대초등학교 체육관, 모란 공설운동장등에 투자했다. 세워놨으되 14%만 집행되었던 도시기반시설 예산도 그 나머지 모두가 투여되었다. 현재 성남도시의 골격이 결정되는데 이 사건이 크게 기여한 것이다.

오늘은 8·10 광주대단지사건이 일어난 지 38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사건의 역사적 무게와 현실적 기능을 생각하면 동네의 무관심은 매우 심각하다. 시청을 옮기고 1공단 개발하는 등의 현실의 문제가 너무 버거워서인가? 실용성을 동의하기엔 너무 연관성이 없어 보여서인가?

그러나 이 사건의 효과는 현재에도 적용되고 있다. 성남시 도시공간의 왜곡은 재개발의 문제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남 최대이슈이다. 분당과 구시가지를 가르는 사회적 문화적 장벽은 그 바탕에 8·10 사건과 그 이미지가 깔려있다. 성남도시공간의 재구조화는 60년대 말의 성남개발, 80년대 말의 분당개발, 그리고 2000년대 말의 판교개발로 매 20년 마다 파행적 수준에서 복제되고 있다. 그 복제물들 사이마다 장벽이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3색도시를 염려하고 있다.

▲ 8.10 광주대단지 사건당시 주민들이 차량을 불태우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성남투데이

이러한 장벽들을 횡단하여 도시를 하나로 묶는 정체성을 사유할 수 있겠는가? 있다면 이 역사적 사건으로 되돌아가는 데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거대한 개발 들이 반복되면서 문제도 함께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개발사업 모두가 성남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서울의 문제이거나 정부의 부동산 문제해결을 향하고 있다. 성남을 괄호치는 개발계획들이 지속되어도 동네에서 어떤 수준에서든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는가?

도시를 마케팅하고 브랜딩 하는 일들에 행정이 신경들을 쏟고 있다. 그런데 우리 성남의 난점은 도시행정의 궁극적 목표에 시민적 합의나 규명된 내용이 없다는 있다.( ‘e 푸른성남’은 도시 행정의 목표가 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시민적으로 합의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성남의 정책인지 아니면 다른 도시의 정책인지를 구별할 기준이 없다. 도시의 역사를 배제하고서 이러한 곤란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역사의 반격이 있다는 명제는 널리 규명된 사실이다. 더구나 이 사건의 배경인 무모한 개발. 그것을 되돌리는데 엄청난 비용을 요구된다. 60년대 말 성남초기개발에 60억이 들었다. 지금 구 시가지를 재개발 하는데 8조이상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더라도 그 폐해를 짐작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역사적 평가를 무시한 채 무모한 개발들이 계획되고 시행되고 있다. 그 폐해가 우리 당대에 미치지 않는 것 뒤에 숨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남한산 관통도로나 4대강사업 등 역사적 평가가 피드백 되지 않은 엄청난 규모의 개발들은 그래서 무모하다.

8·10 사건을 우리 도시의 역사로 세우는 일, 기념공간과 기념조형물을 세우고 지역의 초·중등 학생들에게 동네역사를 알리는 텍스트로 정리하는 일 등을 다시 시작하기를 제안한다. 내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40주년에는 현실적으로 기념할 물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성남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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