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찾기보다는 동지 찾기가 우선이다

<경인년 새해 메시지> 성남환경운동연합 하동근 공동대표

하동근 | 기사입력 2010/01/04 [23:47]

길 찾기보다는 동지 찾기가 우선이다

<경인년 새해 메시지> 성남환경운동연합 하동근 공동대표

하동근 | 입력 : 2010/01/04 [23:47]
지화문으로 가는 길

새 해 첫날 새벽 5시 반. 수정구 옛 시청 정거장에서 남한산성행 버스를 기다린다. 어둡다. 아직 꺼지지 않은 전구들이 많지만. 10차선 대로에서 길을 묻는다. 4419 버스를 타다. 혹시 길로 이끌지도 모르지. 남한산성 입구. 반가운 얼굴들이 뜨거운 입김으로 다가온다. 뚜벅뚜벅 익명의 구도자들 틈에 끼어 오른다. 빛이 그들을 익명으로 만들지만은 않았을 터이지.
 
▲ 2010 경인년 새해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에서....     ©성남투데이

갑자기 지화문(至和門, 南門)! 조명 등을 설치해서인지 단청의 푸른빛이 은은하게 압도하다. 그 중심에 지화문 문패. 그 서체가 오늘따라 매우 날카롭다. 경계의 안과 밖은 원래 날카롭게 대비되는 것이지만. 전쟁의 안과 밖. 전쟁과 평화의 경계. 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평화롭게 숨 쉬었을 터이다. 한 숨 돌릴 수 있는 것은 경사가 완만해졌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길은 평화를 향해 열려 있다. 평화에 이르는(至和)길.

다시 어두운 굽이를 돌아선다. 그런데 갑자기 밝은 세상. 동짓달이 서쪽 하늘에 걸렸다. 해보다 밝네! 해마다 해돋이 길을 찾지만 저리도 명징한 달과 함께 걷기는 처음 일듯 하다. 성벽에 달을 비는 사람들이 몰려있다. 소원을 빌어볼까? 한 번도 소원지를 써본 적은 없었는데. 그래도 달보다는 해가 더 영험이 있지 않을까?

마침내 풍물들의 기원에 화답하여 경인새해가 솟아오르다. 매바위 뒤로 성긴 소나무 가지를 넘어 붉디붉은 새 해가 뜨다. “너무 붉어! 내 경험으로 저리 붉으면 그 해가 가물어. 내 나이 일흔 넷. 틀린 적이 없었어.” 74년의 경륜이 아니라도 그 표정에 진정성이 넘쳐난다. 그런데 나에겐 상기된 호랑이가 느껴졌다. 4대강의 절박한 뭇 생명들의 한숨, 독선에 밀려난 이 땅 민중들의 하소연을 들은 것은 아닐까?
 

e 푸른 성남으로 가는 길

그런데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길은 산(仙)에 있지 않는 법이라네.

1공단 용도변경 ‘도시계획’의 근거는 ‘돈’이다. 도시 마케팅이나 시민들의 주거환경은 뒷전이다. 시립병원은 무기력한 태업 속에 아슬아슬한 곡예 중이다. 시립병원은 주민들의 의료환경과 관련되기 보다는 몇 사람 정치인들의 이해가 그 근거인 것이다.
 
▲ 성남시 시민 혈세 3천222억원이 들어간 초호화 신청사 건물 상징모형.     ©성남투데이

행정구역 통합시 추진은 어떤가? 통합정책을 입안한 행정안전부는 정책의 근거로 인구가 적은 지자체나 면적이 좁은 지자체가 갖는 경쟁력을 내세웠다. 도시동의 인구도 못되는 자치군(증평시등)에 경쟁력이 없다는 얘기. 일개 면의 면적도 못되는 자치시도 있다. 무슨 사업을 벌이려 해도 공간이 문제라는 것이다.

성남은? 두 개의 조건과 상관이 없다. 인구 50만을 이미 넘어섰고 면적도 상대적으로 넓은 쪽이다. 그런데 통합을 해도 수정. 중원. 분당구는 자치구가 되지 못하고 행정구 그대로이다. 광역시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합의 근거는? 추상적 경쟁력이다. 덩치만 커지면 무조건 경쟁력이 생겨난다.

요즘 도시의 경쟁력이 매우 중요한 이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면적과 인구 등 하드웨어적 변수는 산업사회시대의 것에 속한다. 후기 산업사회에서 장소전쟁(place war)은 감성, 문화, 디자인에서 그 경쟁력을 찾는 법이다. 그래서 당연히 그 근거가 의심된다. 혹시 위기에 몰린 공천과 관련된 건 아니여?

그리고 호화신청사. 소돔성의 소금 기둥을 연상시킨다. 3200억의 자랑거리라고 이대엽 성남시장의 대표치적으로 몰고 갔는데 3200억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 동네 시민운동하는 놈들은 뭐하고 있었어?” 시민운동엔 관심도 없던 친구가 핏대를 세운다. 헐~ 시민운동과 행정감시를 연계시킬 줄은 알고 있었구나.

아무튼 산성 넘어 동네(성내미) 사람들 노곤한 한 해를 보낸 건 확실하다. 성남 산다고 얘기하기가 쑥스럽다.

그래서 산은 산에서 길을 찾지 말고 내려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일까?
 

행복한 민선5기로 가는 길

2006년 민선4기 쑥대밭 좌절은 정치적인 선을 넘어섰었다. 없는 후보가 당선되고 말소된 후보도 당선되고. 선거제도에 대한 이론을 뒤집는 이성에 대한 좌절. 쓰나미의 후폭풍은 대단했다. 선출직 공무원들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사적 욕망과 연결되었다. 공공은 좌파적 가치일 뿐이어서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왜 호화청사, 호화축제, 호화 건축 등에 목을 맬까? 복지, 민주, 주민의사 등은 추상적이고 물질성이 없다. 자치의 물적 자랑이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거기에 필수적으로 떡고물이 없다.
 
▲ 성남사회단체연대회의 하동근 운영위원장이 지난 2009년 신년하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성남투데이


반MB연대. 후보단일화가 길이다. 그러나 걱정되는 일들이 많다. 반MB라는 프레임은 이념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엠비의 정책적 프레임은 신자유주의와 권위주의, 그리고 국가개입주의가 결합한 독특한 형태이다. 따라서 반 엠비의 프레임에는 신자유주의이면서 반권위주의, 혹은 반 국가개입주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치집단들이 연합할 수 있다. 어떤 민주? 어디로부터의 자유?

어디까지 연합할 수 있는가? 반MB라면 신자유주의와도 결합할 수 있단 말인가? 신자유주의도 매우 다양하지 않는가? 지뢰는 도처에 널려있다. 이념에서 길을 찾는다면? 그건 ‘어두워~’ 거기에 사회구성체를 기계적으로 정의하는 전통적 패러다임도 그 실용성을 재검토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그 프레임으로 길을 찾자면 그 꼬이는 실타래를 어찌할 가?

그렇다고 구조를 무시하고 체험의 즉각성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구조의 객관주의와 주관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는 틀이 필요할 때이다. 정치와 시민이 짊어질 짐이 되겠다.

우리 동네의 좌절의 현장에서 길을 찾으면 어떨까? 그것은 이념과 실천의 위상을 뒤집어보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중앙이 아닌 지역에서, 이념중심이 아닌 문화중심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촛불의 에너지는 문화적 에너지였지.

길을 묻는 성남의 시민사회에게 동지를 찾으라는 상기된 시민들의 답을 듣는다.
 
전지현, 과거-현재 일생 비교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