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학교가 생긴 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였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더 큰 문제는 바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아직도 해외배낭여행은 대학생들의 전유물쯤으로 생각되어지는 우리사회에서 학교밖청소년에 어울리기나 하나. 굳이 해외로 까지? 이것을 반박할 어떤 답을 찾아야 하지만 떠날 때까지도 딱히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쨌든 지난 3월 우리는 10년 만의 나라 밖 탈출을 결행했다. 목적지는 인도. 학생 7명과 교사 2명이 15박 16일의 일정으로 우리들과 맞지 않은 소위 ‘해외배낭여행’을 떠난 것이다. 참여 학생들은 디딤돌학교에서 검정고시, 자기 길 찾기, 직업체험 등 2년 여 교육과정을 마친 10대 후반에서 20세 초반의 선배그룹이다. 학교에서 마련한 비행기 삯 이외 비용은 인턴십과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생들 스스로 마련했다. 그동안 도보여행, 농활, 집짓기 등 힘든 캠프를 10여 차례 이상 경험한 베테랑들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말 통하고 먹을 것 걱정 없는 나라 안 이야기였다. 어디 붙어 있는지도 잘 몰랐던 인도라는 낯선 나라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내공은 대부분 무용지물이었다. 인도는 한국보다 30배나 크다. 한 번 타면 18시간 정도는 꼼짝없이 기차에서 지내야 한다. 38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천장에 붙어 있는 선풍기는 기차가 뿜어내는 열기를 바람개비처럼 뿜어낸다. 창문을 열면 모래바람이 들어와 기차 안은 온통 모래투성이가 된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생수 한 병과 기차타기 전에 사온 도시락이 전부이다. 한창 나이에 먹지 못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밥 먹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를 되 뇌이며 손짓 발짓 다해가며 한참을 주문한 음식이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을 때의 좌절감. 그나마 익숙한 음식일 것 같아서 시킨 돈가스가 요상한 맛을 내는 소스에 덮여있어 한입 물고 접어야 했을 때의 배신감. 나중에는 아예 포기하고 음식 대신 콜라만 네 병 시켜먹는 학생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간밤에 있었던 모기 때의 습격으로 얼굴에 각종 분화구가 생기기도 하고, 정신없이 혼잡한 길을 가다 자칫 발밑의 쇠똥을 피하지 못한 일, 믿고 들어간 고급식당 화장실에도 휴지가 없었을 때의 난감함... 이 정도는 귀여운 사건이었다. 막연하게 품었던 해외여행에 대한 환상은 채 피기도 전에 24시간 실전 서바이벌게임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러한 고난행군은 아이들은 날로 달라지게 만들었다. 여행 종반에 들어서자 갑자기 달라진 우리를 느끼게 되었다. 처음 타보는 낙타에 온통 허벅지가 까져가며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진 길을 갔다. 뜨겁게 사막을 태우던 태양이 모래언덕 위로 넘어가며 사막을 붉게 물들인다. 침낭 하나에 몸을 맡기고 바라보던 까만 하늘의 수많은 별들. 적막한 모래위에 피운 모닥불과 거기서 구워 낸 통닭 두어 마리, 누군가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노래와 함께 두런두런 이어지는 선생의 애틋한 첫 사랑이야기. 우리의 고난 행군은 더욱 삭막한 사막에 가서야 비로소 낭만이 되었다. 우리가 감동한 것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타지마할도 아니고 위용을 자랑하는 사원과 성이 아니라 끝없이 달리는 기차와 그 속에서 처음 만나 떠들고 웃었던 깊은 눈의 사람들, 적막한 사막에서의 너무도 고요한 밤과 별들 이었다. 아, 이것이 여행하는 맛이구나... 아이들은 돌아오자마자 개고생(?)은 다 잊었다는 듯이 다시 한 번 인도에 가고 싶다고 한다. 온 몸으로 구현하는 생존 바디랭귀지, 워터, 고고 씽, 오케이같이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해버리는 무지막지함. 해외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떨쳐버린 것 같다. 어떤 아이는 돌아오자마자 영어회화 책을 구입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인도에서 해방감을 느꼈다한다. 그것이 어떤 해방감인지 묻지는 않았다. 학교 밖 아이들이 나라 밖에서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 인도는 우리에게 ‘어느 학교 다니느냐’, ‘지금 뭘 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말없이 넓은 사막의 품속으로 받아들여주었다. 누구든 가리지 않고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는 갠지스 강처럼. 인도는 떠날 때 까지도 찾지 못해 난감해 한 답을 돌아와서야 문득 깨닫게 해주었다. 아주 단순한 답을. 청춘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누리는 것에는 대학생이 건 아니 건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따라서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빛나는 청춘을 차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디딤돌학교 대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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