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ACCEPT_ENCODING in /home/inswave/ins_news-UTF8-PHP7/sub_read.html on line 3
누구를 위해 시청사를 옮기려는가?:
로고

누구를 위해 시청사를 옮기려는가?

[특별기고] 성남시의 폭력적 정책과 착취의 마술성에 대하여

하동근 | 기사입력 2006/12/13 [00:19]

누구를 위해 시청사를 옮기려는가?

[특별기고] 성남시의 폭력적 정책과 착취의 마술성에 대하여

하동근 | 입력 : 2006/12/13 [00:19]
사회적 생산과 시청이전의 경제학

시청사 이전을 위한 행정절차들이 시정부의 의도대로(약간의 파열음이 없진 않았지만) 움직이고 있다. 공유재산 ‘관리(니 맘대로 하세요)’를 시의회는 승인해준 상태이고 사용예산 심의 의결이 코앞에 있다.

시청의 이전이 시민들(특히 구도심 거주 21만 가구 52만 명)에게 가져올 정책효과를 정량적으로 계산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가구당 가치 하락분을 천만 원씩만 계산해도 2조가 넘는다.
▲ 성남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이자,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하동근 공동대표     ©조덕원

그러나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가격이 5억을 넘는 사정을 고려하면 그 가치하락의 폭은 억대에 이를 수 있고 따라서 그 크기를 상상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효과를 갖는 정책이 공청회 한번 없이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는 은행동에 있는데 32평형에 3억 7천만 원가량에 호가된다. 똑 같은 평의 분당 아파트는 10억을 넘는다. 둘 사이의 차이를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땅값? 토개공은 분당의 택지를 조성하기 위해서 평당 평균 30만원에 매입하고, 택지 조성 후 평당 평균 80만원에 분양했었다.
 
당시 구도심의 토지가격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사용가치로서의 건축비의 차이는 무시해도 좋다. 집값 상승률을 비교하면 다 나온다. 그러면 상상을 초월하는 집값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집값에서 사용가치를 빼면 교환가치가 남는다. 분당에 살고 싶은 사람이 많고(수요의 증가) 팔 집이 없다면(공급의 감소) 교환가치가 증가한다. 왜 분당에 살려는 사람이 많을까?

정부는 분당을 건설하면서 서울의 명문고(경기고, 경기여고 등)들의 분당이전을 추진했었으나 실패했다. 대안이 분당의 고등학교들을 비평준화지역으로 특별히 묶는 것이었다. 교육수준을 강남과 비슷하게 하지 못하면 분당은 실패(강남의 분당이전이 불가능해지고 따라서 분당건설의 목표는 상실된다)할 것이 뻔해서였다. 서현고 등 학교 설립 순서대로 명문의 서열화가 만들어졌다.
 
또한 토개공등 공기업들을 분당에 이전시켰다. 교육과 공공시설의 일련의 배치효과는 공간의 가치를 급속하게 상승시키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기호가치’ 혹은 ‘상징가치’를 통한 공간가치의 상승이었다. 이런 기호 가치를 활성화하고 이 기호가치를 지키려는 거주민들의 노력이 겹쳐지면서 공간가치의 상승은 확대재생산 되는 구조를 고착시킨다.
 
공공시설의 배치와 주민의 기호가치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들이 생산해내는 효과를 인류학자들은 ‘사회적 생산’이라고 부른다. 분당의 사회적 생산의 효과와 집값 상승의 사이에 이런 함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분당의 고교평준화 정책에 자식들이 이미 학업을 끝낸 할머니들까지 반대데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했던 유일한 이유다.

시청 이전은 구도심의 사회적 생산에 폭력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행정과 관련된 사무실들의 이전은 기호가치의 하락에 비하면 오히려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 될 것이다. 시청은 구도심을 기호화하는 핵심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시청의 이전은 도시공간의 단순한 재배치를 넘어선다. 시청은 도시 공간을 조직하고 배치시키는 구조적 기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청이전은 구도심의 공간을 파행적으로 변화시키는 지렛대가 될 것이다.

문제는 가치하락의 효과가 일정한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시청이 이전되고 한참 지나서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효과, 이것이 사람들이 잠잠할 수 있는 근거이다.
 
심지어 시청이 이전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시민들도 많을 것이다. 시점의 차이를 이용한 정부의 착취를 들뢰즈는 ‘포획의 마술성’이라고 부른다. 이 마술성의 뒤에 성남시가 숨어있다.

투표용지의 인주가 마르기도 전에

현대행정에서 정책생산의 시작은 ‘투입’이고 이 ‘투입’의 기본은 ‘주민의 요구’이다. 주민의 요구가 없으면 정책도 없다. 이러한 사유는 정책생산에 주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기초로 작용한다.
 
안타깝게도 성남시 행정에서 주민의 참여는 극도로 제한되어있다. 정책의 전 과정에서 주민의 배제 혹은 소외는 성남시 행정의 봉건성을 드러낸다. 봉건적이라고 했더니 행정의 귀재들이 성남시 공무원 중에 많다고 반론한다.
 
그러나 행정기술과 행정관계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 둘의 관계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생각하면 이해가 편하다. 행정기술이 아무리 현대화되고 세련되었어도 행정관계(주로 정책의 최종결정에서 이뤄진다)가 봉건적이면 ‘봉건행정’이 되는 것이다.
 
행정관계를 푸코는 배치로 얘기한다. 행정-의회-주민의 배치를 민주행정이라고 한다면 행정 - 의회, 심지어는 의회의 행정포섭의 배치를 부르는 역사적 이름이 ‘봉건’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의회포섭이 행정관계가 아니라 사적인(술자리 등) 기술(?)을 통해서 이뤄진다면 이것도 봉건적이다. 봉건시대의 행정은 “대상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성남시 행정의 대상을 추출해내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정책을 만들면서 정책의 수요자가 배제되는 것이다.

성남시 행정이 이런 형편이라면 이런 구조에서 의회는 변화의 보루일 수 있다. 시의원은 권력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다.(시장도 마찬가지 이지만) 유권자의 이익과 의견을 대리하는 위치에 배치된 것일 뿐이다.
 
이런 구조는 근대가 발견해 낸 최고의 정치형식이다. 거꾸로 얘기하면 ‘의원은 유권자의 이익과 의견을 대리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의회에 파견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의미는 ‘공공성’으로 표현된다. 시청 이전은 유권자들의 상상하기 어려운 크기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이다. 유권자와의 약속을 저버리기엔 투표용지의 인주가 너무 촉촉하지 않는가?

구도심 출신 시의원들 중 유권자의 이익과 의사를 외면하고 사적인(당론이라 해도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사적이다)이익에 양심을 놓쳐버린 시의원들은 다시 생각해 주기 바란다. 유권자들이 이런 결정을 모를 수도 있다는 우연에 기대서는 안 된다. 그냥 덮어질 사안이 아니지 않는가?
 
문제가 심각하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고, 그 결과가 초래하는 폭발력은 엄청날 것이다. 시장과 당으로부터의 압력은 일시적일 뿐이다. 시장 개인이나 정당의 의원이 아니라 성남의 의원으로 남아야한다.

시청사 이전의 논리는 공간과 위치의 문제로 집약된다. 공간이 좁아서 옮기자는 공간의 문제. 위치론은 세 도심의 중심에 있는 것이 옳다는 얘기다.
 
공간문제는 현 위치에서도 충분히 해결되는 문제이다. 공간이 좁다고 시의 상징을 옮기는 것은 철없는 발상이다. 적어도 청사를 옮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공간이 좁다는 푸념은 그냥 푸념일 뿐이다.
 
또한 세 도심의 중심위치로의 이전 문제다. 교통이 발달한 현대에 거리는 그 의미는 상실한다. 중심에 설 이유가 없다. 도쿄도의 도 청사는 부심(중심이 아니고)에 있다. 그런 논리라면 용인시청은 구성이나 신갈 정도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옮기자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구도심의 공간가치하락을 상쇄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시립병원을 짓기 위해 시청을 이전하려는가?

시립병원을 설립하는데 가장 우선시 되어야할 가치는 시급성이다. 바삐 움직이려면 몸집을 줄여야한다. 신흥동 부지를 시립병원 부지로만 접근해야한다.
 
의료바이오 산업센터를 시립병원에서 분리하면 시립병원은 신흥동 부지에 얼마든지 설립이 가능하다. ‘부지과다매입으로 인한 민원’도 해결되고, 즉각 설립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시립병원을 짓기 위하여 시청을 이전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시립병원의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곤란하다. 그들의 철없는 용기가 두렵다.

필자는 ‘누구를 위해 시청사를 이전하려는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공공정책에 대하여 이런 제목을 설정하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짓인지를 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공공적인 필요는 발견되지 않고, 사업추진 속도는 어떤 사적인 욕망을 느끼게 한다.
 
구도심 출신 시의원들의 정치적, 정신적 부담을 엄청나게 부과하면서 막무가내로 갔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이 누구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구도심의 50만이 넘는 시민이 불안하다. 분당의 주민들도 환영하지 않을 것임이 확실하다. 분당의 사회적 생산은 강남에 대한 동일시와 성남에 대한 거리두기이기 때문이다. ‘성남’의 상징이 분당에 들러붙은 것은 분당의 사회적 생산과 반대방향이다.

좋아할 개인들이 있을 것이다. 소수의 토지소유주, 공무원, 그리고 이대엽 시장. 그 말고 또 누가 있나? 정신 좀 차리자! /의료공백해소와 성남시립병원설립을위한 운동본부 공동대표
 
  • 성남시, 여수동 부실 호화청사 ‘손해배상’ 청구
  • 성남시 ‘호화 찜통청사’ 손해배상 청구키로
  • ‘여수동 신청사에 시민들이 모여든다’
  • 한나라당 ‘용비어천가’ 너무 심하다
  • 시장실은 낮은 곳에, 그게 예수님 뜻!
  • 성남시 호화신청사 파문 어디까지?
  • 성남시 신청사 ‘편법’으로 준공 검사
  • 성남시 호화 신청사 ‘특혜공사’ 의혹
  • 이명박 대통령, 성남시 호화청사에 ‘격노’
  • 한나라당, 이대엽 시장 공천 배제하나?
  • 성남시 여수동 신청사 개청식 ‘강행’
  • 성남시 ‘호화개청식’ 규탄 목소리 높아
  • 성남시, 그래도 우리는 갈길(?)은 간다
  • 성남시민과 함께 하는 e-푸른 콘서트 열려
  • 권위적·폐쇄적인 신청사 ‘성남시장실’
  • ‘성남 시청사 및 의회 개청식’열린다
  • 성남신청사, 제왕적 리더쉽의 결과물
  • “초호화 청사 입주하기가 너무 죄송”
  • “민선4기 이대엽 성남시장 자숙해야…”
  • 성남시 신청사는 ‘한국판 베르사이유 궁전’
  • 많이 본 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