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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있는 만남" 소설가 이외수

광인, 천재, 거지, 기인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 -진정한 예술은 고통 끝에 나온다고 생각해-

이채연 기자 | 기사입력 2003/11/02 [15:00]

"향기있는 만남" 소설가 이외수

광인, 천재, 거지, 기인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 -진정한 예술은 고통 끝에 나온다고 생각해-

이채연 기자 | 입력 : 2003/11/02 [15:00]

아카시아 향기와 함께 춘천 격외선당으로부터 가슴 따뜻한 소식이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따뜻한 봄, 초록의 봄, 향기로운 봄.... 이 좋은 봄날을 함께 바라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우 독자들을 위한 콘서트 ‘귀로 본다’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반가운 마음에 춘천으로 향했다. 여전히 긴 머리에 비쩍 마른 몸으로 주름진 웃음을 웃으며 일행을 반기는 그가 그 곳에 있다.

▲소설가 이외수님의 주옥같은 작품들.     ©우리뉴스

광인, 천재, 거지, 기인, 이외수.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에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뭇사람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 그는 얼마전 오랜만에 소설 ‘괴물’을 출간했다. 3년7개월만이다.

등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털어버린 사람처럼 그는 지금 아주 가볍다. 그리고 아름다운 봄을 맞았다. 그러나 독자들과 이 봄을 함께 느끼고 싶다는 또 다른 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결국 그는 작지만 아름다운 무대를 준비했다. 그 아름다운 마음을 담아 격외선당에서 들려온 나지막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휘청휘청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 비쩍 마른 몸이 걱정스럽다.
그러나 그는 한마디로 기자의 생각을 일축시킨다.
“작은 사물도 거룩하게 보려고 노력해봐.
자신을 최하 단계로 놓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걸 알 수 있을거야.

소리를 통해 봄을 보다
“소설도 끝냈고 햇빛도 너무 좋아. 아주 홀가분하다구. 그런데 문득 나만 이 봄을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내 독자들 혹은 내 지인들 중에 시각장애우들이 몇 명 있는데 그들은 이 봄을 어떻게 즐길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많이 무거웠지.

그래서 공연을 하기로 했어. 보이지 않아도 소리로 봄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마침 여기 앉아 계신 아카디아 사장님이 그런 내 뜻에 적극 지원을 하셨고.(아카디아는 클래식 공연 전문 기획사다.) 이거 보라고. 아마 국내에서는 처음일거야. 점자 팜플렛 만든 것도 여기 사장님 생각이고. 고맙지. 사장님 뿐만 아니라 흔쾌히 공연을 수락해준 여기 소프라노 이윤아씨에게도 고맙고. 나야 뭐 특별히 할 일이 있나.

그저 여기저기 소문내는 일밖에. 난 이번 공연이 함께 하는 콘서트를 만드는 문화의 시발점이 됐음 좋겠어. 저런 방법도 있구나 뭐 그런 거 하나만이라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너도 나도 장애우들과 함께 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지 않겠어. 어차피 예술은 감상하는 기관만 다르지 본질은 같거든. 나처럼 소설을 쓰는 사람이나, 음악을 하는 사람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분명히 할 일이 있을 거라구.

계속 할거야. 이번에는 공연장 여건이 많이 부족했지만 다음에는 지체장애우들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공연을 만들어볼까 해. 그때도 여기 저기 소문 많이 내줘. 그래야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런 일에 뛰어들지.”

괴물 그리고 사랑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나연이는 충격적인 사실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연이는 모든 인간들이 어릴 때부터 자기처럼 만물들과 감정을 교류하면서 살아온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다른 존재들과의 감정교류를 일체 단절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 무생물에 대해서는 의사도 소통되지 않고 감정도 소통되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 살고 있었다. 심지어는 선생님들조차도 만물이 물질적으로는 인간과 분리되어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인간과 교류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 「괴물」 본문 중에서 ―
“어쨌든 악은 응징되어야 해. 선이 악을 물리치건, 악이 악을 물리치건 말이야. 이번에 쓴 괴물도 마찬가지지. 결국 내가 쓰는 소설들은 평화를 기원하는 글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반성하며 살아야 돼.

예술의 궁극적 목표가 뭐겠어. 바로 감동이거든. 그것을 통해서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것, 그게 예술가들의 몫이야. (선생님 책은 꼭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게 되는데 그건 왜 그럴까요?) 글쎄 왜 그럴까. 아마도 내 소설 속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해서 아닐까. 난 늘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해. 메시지의 심각성이나 가벼움, 무거움을 떠나서 내가 가슴으로 쓴 글, 가슴으로 읽어달라고. 그러면 되는 거야.

어쩌면 이렇게 비쩍 마른 몸으로 쓴 글이라 더 마음 졸이는지도 모르겠네(웃음). -그는 요즘도 하루 한끼만 먹는다-  연애소설을 한번 써 볼까 해. 사랑을 주제로 하는 글... 과연 현대인들의 사랑이 본질에 가까운 것인지,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거든.

구더기, 걸레, 쓰레기같은 것들도 사랑받을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을까. 그걸 고민해봐야겠어. 물론 소설이 나온 후에도 해답은 독자들의 몫이겠지. 8월쯤부터 섬에 들어가서 연애소설 쓰면서 한 3년쯤 안 나올까 생각중이지.”

내 마누라가 최고지
“격외선당에 한 달에 몇 명의 손님들이 찾아오는 줄 아나? 정확히는 몰라도 한 400명 쯤 될거야. 그 사람들 다 식사대접하고, 넉넉치 못한 사람들은 차비도 챙겨주고, 언제나 환영해주는 사람이 바로 내 마누라야. 내 마누라가 최고지, 최고.

난 역대 작가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거야. 내 문학, 내 예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최고의 독자(가족)가 있으니까 말야. 지금도 내 아이들은 배가 고픈걸 잘 못참아.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워낙 굶어서 그런 거 같애.

결혼하고도 몇 년을 굶겼는지 몰라. 시정잡배로 살면서 하루하루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글도 제대로 못 썼어. 그랬는데도 내 마누라, 내 아이들 많이 굶겼는데. 지금은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거 하나는 확실하게 먹고 산다고. (가난이 예술을 만든다는 말도 있잖아요. 오히려 더 왕성한 활동을 하셨었을 것 같은데…) 그거 거짓말이야. 매 순간 숨쉬며 사는 것조차 힘든데 작품이 나올 리가 있나. 결국 고통 중에는 아무 것도 나올 수가 없어. 진정한 예술은 고통 끝에 나온다고 생각해. 몇 년 전부터 마누라가 제주도 한번 가자고 하는데, 올해는 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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