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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컴퓨터 의사 " 안철수

이채연 기자 | 기사입력 2003/11/03 [05:33]

"별난 컴퓨터 의사 " 안철수

이채연 기자 | 입력 : 2003/11/03 [05:33]

1982년 가을, 의과대학 본과 1학년 학생이 우연히 접한 애플Ⅱ+ 컴퓨터에 매료된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학생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컴퓨터 치료사로 우뚝 섰다. 호기심 하나가 전세계로 수출되는 V3 프로그램의 개발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안철수.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조차도 안철수라는 이름은 ‘아하, 그 사람’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국내 벤처계의 신화를 이룩한 작은 거인. 무엇이 그를 지금의 자리에 오게 한 것일까. CEO로서 또한 컴퓨터박사로서 그가 말하는 성공스토리를 들어본다.

▲CEO 안철수씨의 모습.     ©우리뉴스
▶ 얼마 전 쓰신 한 칼럼 중 기업의 핵심가치에 대한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안철수연구소의 2003년 현재 핵심가치는 무엇입니까?

안철수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핵심가치는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창립자나 경영층, 심지어 구성원이 모두 바뀌어도 믿고 지켜갈 수 있는, 회사가 영속하는 근간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핵심가치는 CEO인 제가 혼자 생각하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지난 2000년 전 직원이 우리가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가지고 왔던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지 도출해 정리한 것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우리는 존중과 신뢰로 서로와 회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고객과의 약속은 꼭 지킨다’ 라는 세 가지 핵심가치를 정리했습니다.

▶ 불법복제가 여전히 횡횡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안철수연구소와 같은 업체
들의 수익률에 영향을 끼치리라고 봅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품 사용 인식을 고취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정부에서 모범적으로 직접 관리하는 컴퓨터의 보안에 대한 투자와 관리를 적정한 수준으로 실시해 다른 부문에 피해를 입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특히 정보보안 관련 설비 투자시 세제 혜택 등의 지원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또 보안에 대한 의무화를 제도화하는 한편, 이미 있는 제도가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점검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IT 예산 중 정보보호 예산이 5.5%~8%에 이르는데 우리나라는 1% 수준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하드웨어 또는 소프트웨어에 포함돼 항목을 구분하지 않아 다른 일에 전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인 만큼 정보보호 예산을 별도 책정하여 관리해야 합니다. 또 일본처럼 B2C(Business to Customer)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한시적인 부가세 면세, 세제 혜택, 보조금 지급 등 다양한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 보안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것은 1982년 가을, 의과대학 본과 1학년 시절이었습니다. 같이 하숙하던 친구가 애플Ⅱ+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저는 이 ‘물건’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저도 컴퓨터를 장만하게 되었죠. 

이후 컴퓨터 관련 서적을 탐독하던 어느 날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의대생으로서 생물학적 바이러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저는 당연히 이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존재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컴퓨터도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이 컴퓨터 백신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88년 초 당시 우리나라에도 브레인 바이러스가 상륙했는데 마침 저는 기계어를 공부하고 있던 터라 그것을 분석하고 치료 방법까지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이러스에 걸려 고민하는 주변 동료 후배들에게 치료방법을 알려주었죠. 그러나 보통의 일반인들은 제가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해도 치료 과정에 대한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저는 그럼 직접 치료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첫 프로그램을 바이러스 치료제의 이름을 따 ‘백신(VACCINE)’이라 이름 붙이고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습니다.

이후 의대 교수로서, 군의관으로서 저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 프로그래밍을 계속했고, 처음에 브레인 바이러스만을 퇴치할 수 있던 ‘백신(VACCINE)’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업데이트되어 이름도 V2(백신 Ⅱ)에서 V2PLUS를 거쳐 91년 V3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 벤처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곧 과감한 투자와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안철수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좌절했던 적은 언제인지, 반대로 가장 큰 성취욕을 느꼈던 때는 언제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97년은 안철수연구소 설립 이후 가장 힘들었던 한해였습니다. 당시 우리회사는 외국기업과 기술 격차가 1~2년 정도 벌어져 있는 상태였고 98년이 되면 인터넷 사용 인구 가 급속히 증가하고 바이러스 숫자가 많아지면 그것에 대처하는 데 1~2년 정도 시간이 또 다시 소모될 것 같았습니다.

또한 97년 무렵부터 외국 기업들이 지사를 설립하는 등 공격적으로 국내시장에 진입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이틀 만에 덜컥 병이 나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10년 정도 공부와 프로그래밍을 같이 하면서 쌓인 피로가 급성간염으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11월 어느 날 병상에 누워 있는데, TV에서는 IMF 관리체제에 들어선다는 서명 모습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CEO가 아파서 누워 있는데 나라 상황도 이렇게 되고 보니 과연 안철수연구소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도 있듯이 외환위기는 안철수연구소에 커다란 기회였습니다. 전 제가 스스로 회사 경영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회사를 경영하는데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빚을 내지 않는 대신 제가 3년 동안 월급을 받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그 덕에 현금흐름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빚 없이도 회사 운영이 가능해졌는데 그것이 IMF 관리체제에서 힘을 발휘했습니다.

빚을 얻어 사업을 확장하던 회사들이 망하고, 한국 상황의 악화로 지사를 철수하는 외국 기업들이 생기는 상황에서 안철수연구소는 내외적으로 경영 상태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여기에 추가로 고급 인력들의 이동으로 우수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건물임대료가 내려 고정비용이 줄고, 필자의 건강도 98년 즈음부터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98년부터 연구개발에 모든 힘을 쏟아 98년 말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터넷/네트워크 서버용 백신을 개발함으로써 격차를 좁히는 것은 물론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술격차 극복, 내부조직구성 정비, 영업채널 확보 등 큰 위기를 넘기고 난 우리회사는 토털 보안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뜻 깊은 한해였습니다.

▶ 별난 컴퓨터 의사라는 별명에 만족하시는지요. 사람과 컴퓨터의 치료, 분명 다르지만 그 근본은 같다고 보는데요.

‘별나다’라는 표현에는 제가 그동안 걸어왔던 길과 간직해 왔던 가치들이 우리 사회에서 ‘특별하게’ 여겨지고 있기 때문인 듯 합니다. 앞으로는 저의 이런 모습들이 ‘특별하지만은 않도록’ 많은 미래의 ‘컴퓨터 의사’와 보안전문가들이 탄생하여 우리나라가 진정한 정보화 강국으로 거듭나는 데 기여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컴퓨터를 치료하는 것은 치료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사명감과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다른 점은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자연 환경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좋은 약과 의술만 있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컴퓨터 바이러스나 악성 프로그램은 누군가가 악의로 만들어낸 것이라 해커와의 싸움이며 두뇌싸움입니다. 그래서 힘겨운 싸움이기도 합니다.

▶ 일을 하시는 시간 이외에 특별히 즐기는 취미활동은 무엇입니까.

주로 책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또 영화감상을 즐기는 편이라 DVD로 영화를 즐겨 봅니다. 최근에는 시간이 나지 않아 즐기지 못하고 있으나 대학교 때 정신수양차원에서 바둑을 배워(아마 1,2단 수준) 곧잘 두기도 했었습니다.

▶ 넓은 세상에 도전하고자 하는 대학생들 혹은 새내기 직장인들에게 삶의 가치를 적립할 수 있는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사람들로부터 종종 사회생활은 교과서대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듣지만 저는 아직도 교과서와 책은 지혜와 행동의 기준을 얻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웠고, 회사를 세운 후에도 경영에 도움이 되는 많은 지혜를 책에서 얻어 그대로 적용하여 성공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문 서적을 통해서는 관련 전문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소설책을 통해서는 인간의 다양한 성격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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