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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개, ‘웃기지만 웃고 넘길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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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개, ‘웃기지만 웃고 넘길 수 없는’

삶은 돼지고기가 다과? ‘우리말 사전 다시 써야’

벼리 | 기사입력 2007/05/06 [16:33]

우스개, ‘웃기지만 웃고 넘길 수 없는’

삶은 돼지고기가 다과? ‘우리말 사전 다시 써야’

벼리 | 입력 : 2007/05/06 [16:33]
서울 고등법원 형사6부(재판장 서명수 부장판사)가 피고 이대엽과 그의 조카 이춘식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제공한 삶은 돼지고기(정확하게는 ‘돼지고기 수육’)를 다과에 속한다며 기부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명아나운서 손석희가 “세상에서 처음 듣는 소리!”라고 했듯이 식자층에서 ‘넌센스!’라는 반응을 보인 것은 물론이다.

저자거리에서도 비아냥이 이만저만 아니다. 앞으로 선거판에서 돼지 잡아 내놓는 일뿐 아니라 소 잡아 내놓는 일이 가능해졌다며 선거법이 ‘고무줄 선거법’이라는 비난이 한창이다. 이 비난이 가진 사회적 함의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법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겠다.

‘외시의미’라는 게 있다. 기호(sign, 記號)와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체(object) 사이에 있는 ‘단순하고, 분명하며, 직설적인 관계’를 뜻하는 용어다. 어떤 기호와 지시하는 대상체 사이에는 너무나 분명한 뜻을 가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외시의미는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하는’ 의미라고 하면 딱 맞다.

가령 ‘집’이란 기호는 ‘사는 곳’을 뜻한다. 누구든 집하면 사는 곳이 아닌 곳을 떠올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다과란 ‘차와 과자’를 뜻한다. 우리들은 다과하면 차와 과자가 아닌 것을 떠올리지 않는다. 이 외시의미가 흔히 말하는 ‘사전적 의미’에 해당되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서의 외시의미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이다. 결코 모호한 구석이 없다. 기호 속의 기의(signified, 記意)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시의미는 누구든 기호를 대할 때 누구에게나 똑같이 알려진 기의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의미이다.

이 같은 사전적 의미가 뜻하는 바는 사전적 의미를 임의적으로 조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호의 기의가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다는 것은 그 기의가 이미 주어져 있다는 뜻과 같은 탓이다.

서울 고등법원 형사6부가 돼지고기 수육을 다과에 속한다고 판단한 것은 사실상 다과의 사전적 의미를 임의적으로 조작한 것과 같다. 그것은 이미 그 기의가 주어진 대로, 다과하면 차와 과자를 떠올리는 우리들에게 ‘돼지고기 수육’을 떠올리라고 쇼를 하는 것과 같다.

서울 고등법원 형사6부의 판단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당장 ‘우리말 사전’은 다과에 대해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돼지고기 수육은 과자라고. 문화비평가들은 “다과에서 ‘과(果)’가 중국에서는 ‘과일’이었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과자’로 변해 오랫동안 쓰다가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이대엽과 그의 조카 이춘식으로 인해 ‘삶은 돼지고기’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쓰게 될 것이다.

반면 ‘함축의미’라는 게 있다. 사전에 들어 있지 않은 의미들을 가리킨다. 사람이 기호에 덧붙이는 암시적인 의미로 주관적인 느낌이 강한 의미이다. 보통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체와 연관된 ‘문화적 체험’이 다르면 기호의 함축의미는 달라진다.

‘집’은 여러 가지 함축의미가 있을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낙원’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돼지고기 수육’은 솔로몬의 지혜를 지닌 서울 고등법원 형사6부에서는 ‘삶은 돼지고기’, ‘식사가 아닌 다과’가 될 수 있다. “앞으로 7년은 더 해야겠다”며 재판부를 우롱한 피고 이대엽과 최측근 이춘식에게는 ‘천당과 지옥, 그 갈림길’에서 ‘일시 천당행 티켓’이 될 수 있다.

외시의미와 함축의미는 의미작용의 두 가지 상반된 양태이면서도 함께 커뮤니케이션의 바탕을 이룬다. 커뮤니케이션의 유형에 따라 외시의미와 함축의미의 비율도 다르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외시의미이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외시의미가 흔들리면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상식, 과학, 법의 영역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외시 의미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누구도 외시의미를 넘을 수 없다. 우리들은 외시의미의 차안(此岸)에 갇혀 있는 탓이다.

어느 날 어떤 국문학자가 연구실로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국문학사를 다시 써야 할 대발견이야!”
흥분한 그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모두들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서동요’는 서동이 쓴 게 아니었어! 그와 이름이 똑같은 다른 서동이 쓴 거라구!”

서동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곤 ‘그가 현전하는 최초의 향가 서동요를 썼다’는 사실 밖에 없다. 따라서 서동요를 서동이 아니라 같은 이름의 사람이 썼다는 국문학자의 말은 ‘불확실한 말’이 된다.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가 우스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 고등법원 형사6부가 돼지고기 수육을 다과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우스개에 나오는 국문학자와 완전히 같다. 국문학자가 사람들에게 우스개감이 되는 것은 “‘이 서동’과 ‘저 서동’이 도대체 뭐가 다른 거야?”라고 되묻게 하기 때문이다(사실 되물을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서울 고등법원 형사6부의 판단은 다과하면 차와 과자를 떠올리는 우리들에게 “왜 ‘삶은 돼지고기’를 떠올리지 않는 거야?”라고, 그야말로 우스개를 한 셈이다. 그럼 우리들은 서울 고등법원 형사6부에 어떻게 되물을 수 있을까(사실 되물을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왜? 우스개이니까!)?

“‘다과’와 ‘돼지고기 수육’이 정말 같습니까?”

그러나 양자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국문학자를 소재로 한 우스개는 있을 수 없는 일 따라서 ‘지어낸 우스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울 고등법원 형사6부가 우리들에게 보여준 우스개는 우리들이 목도한 ‘엄연한 현실’ 아닌가.

이 현실이 우리들을 웃기게 하는 현실이면서도 우리들로 하여금 결코 웃고 넘길 수 없게 하는 현실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현실은 “정확한 판결”(?)이라는 피고 이대엽의 말대로라면 ‘정확한 현실’(?)로 미화되고 은폐되는 어떤 상황은 아닐까. 독자들을 위한 펀치라인 하나 남겨둔다.

‘그래, 웃기는 세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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