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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농부인 인간의 초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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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농부인 인간의 초상 앞에서

<기자수첩> 강기갑과 김대진 사이에서

벼리 | 기사입력 2008/11/09 [14:14]

아직도 농부인 인간의 초상 앞에서

<기자수첩> 강기갑과 김대진 사이에서

벼리 | 입력 : 2008/11/09 [14:14]
7일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자치단체장·지방의원 432명 직불금 수령’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자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했다. 대서특필은 종종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캔들을 몰고 오기도 한다. 이 보도는 아마 전국 각 지역의 농민들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공분을 자아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강 의원이 낸 보도자료가 초래할 결과란 이 공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 보도자료가 나온 즉시 나는 432명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자료를 입수했다. 성남에서는 유일하게 성남시의회의 수장인 김대진 의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료상에 나타난 사실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의미 여하에 따라 지역정치판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그런 그림도 스쳐 지나갔다. 의문은 풀기 위해 있는 것. 쌀 직불금문제와 관련해 김 의장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 용인시 백암면 백봉리 논에서 모내기 후 뜬모를 내는 김대진 의장.     ©성남투데이

관련 문서자료들의 수집과 분석, 현장 답사, 증언, 김대진 의장과의 인터뷰 등을 조합해 의문을 풀기로 했고 또 그렇게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자는 탐정과 같다. 탐정이 범죄를 재구성하는 방식에 의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가듯 기자 역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답이 나왔다. 이는 취재를 통해 알게 된 관련 사실들의 조합의 결과다. 그러나 그 답은 의문 자체를 완전히 무력화시킨 그런 답!

그 답이란 김대진 의장의 경우 강기갑 의원의 보도자료가 초래할 그 공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김 의장은 정말 농사를 지었고, 그것도 농심을 가지고 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런 결론을 도출한 관련 사실들의 조합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흔히 객관으로 분류되는 사실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여전히 농토를 버리지 못하는 농부로서 이 땅의 농사, 농업의 현실을 대하는 김 의장의 숨길 수 없는 태도였다. 내가 먹는 쌀만큼은 손수 농사지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코 쉽지 않은 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찾아 농사를 이어온 김 의장. 농사의 즐거움과 괴로움, 농민의 입장에서 풀어낸 이 땅의 농업이 처한 현실에 대한 그의 체험적인 견해들, 그리고 아직도 낫을 들고 피를 뽑았을 그의 거친 손.

나는 그의 꾸밈없는 이야기들에서 도시화 과정에서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농토를 잃고 멀리까지 대체농토를 마련해 농사를 놓지 않는 한 농부의 초상을 읽을 수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농부에게 “부당수령자로 오해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떳떳한 소명의 기회”(강기갑 의원의 보도자료 일부)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단 말인가. 쌀 직불금과 관련한 의문을 싹 걷어내기로 했다. 그에게만큼은 이 의문이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쌀 직불금이라는 문제에 김 의장을 끼어 맞출 경우, 그는 적격자 여부문제에 상관없이 ‘자치단체장·지방의원 432명 직불금 수령’이란 프레임워크(framework), 그리고 그것이 초래할 공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싹 걷어내고 전혀 다른 사실들의 계열로 그를 추적할 경우, 우리는 그토록 멀리 떨어진 곳까지 찾아가며 손수 농사를 짓는 인간의 어떤 초상을 마주치게 된다. 이 지점에선 골프채를 휘두르는 상당수 시의원들을 문득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취재는 어떤 교훈을 준다. 그 교훈의 이름을 나는 ‘의미의 논리’라고 말하고 싶다. 사물들, 사건들이 어떻게 계열화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산출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강기갑 의원의 보도자료가 초래할 결과와, 또 그런 프레임워크를 마냥 따라가기만 하는 언론의 행태에서 우리는 나아갈 지점과 멈출 지점을 구분하기 어렵다. 시민운동도 그것을 닮아가는 중이다. 시립병원 설립부지 변경문제에서 내가 읽은 것도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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