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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뭘 말하고 싶은 거냐고!

[씨네 리뷰]말 많던 그때 그 사람들, 영화는 영화일 뿐인가...

한명희 시민기자 | 기사입력 2005/02/23 [05:29]

그러니깐 뭘 말하고 싶은 거냐고!

[씨네 리뷰]말 많던 그때 그 사람들, 영화는 영화일 뿐인가...

한명희 시민기자 | 입력 : 2005/02/23 [05:29]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때' 나는 '그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0·26 사태'는 내가 첫돌잔치를 한지 몇 개월 후의 일이기에, 역사책을 중심으로 이해를 해왔다. 역사책은 당시의 사실에 양념을 살짝 넣어 가미한 것 같다. 다름 아닌 18년간 수많은 치적을 남긴 대통령이 아니신가.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감히 건들기 어려운 소위 전대미문의 사건을 영화를 통하여 재해석하는 차원으로 알고 있었다.
 
감독이 어떤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픽션 속에 사실 장면을 삽입하였다. 배역을 썼으면 되지 않았을까? 이유는 당최 모르겠지만 굳이 부마항쟁시위와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장면, 그리고 장례식 장면을 넣었다. 법원에서는 이 장면을 삭제하라는 결정을 내렸고, 가위질을 한 상태로 상영이 된다고 하였다. 덕분에 돈 안들이고 절로 홍보가 된 영화였다.

이러한 연유로 기대를 안고서 기본적인 정보만 슬쩍 봤을 뿐, 왈가왈부한 영화였음에도 거의 무지한 상태로 관람을 하였다.

암전. 3분 30여초 동안 어둠이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사전검열입네 하며 반발하는 그 장면이다. 그 까만 스크린을 보며 삭제된 부분을 상상해보았다.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 했다는 자막이 나오더니 느닷없이 저급한 장면이 나와서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저급함은 시종일관 유지를 하며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영화를 이른바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를 빙자하여 시대상과 권력을 풍자하였다.
 
▲ 영화에서 삭제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장면     ©성남투데이

대통령과 주인공의 캐릭터
 
'효자동 이발사'의 근엄한 캐릭터와는 달리, 할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대통령의 집무 모습은 초반부에서 행사에 다녀오는 헬기 안의 모습 뿐. 영화에서 그의 관심사는 주색에서 허우적거리며 엔카 잘 부르는 아이를 찾는 것이며, 9시 뉴스에 나오는 YS나 데모 얘기는 안주거리일 뿐이라는 것에서 충격을 금치 못했다.
 
18년간 대한민국을 휘둘렀던 천하의 각하께서는 음주가무를 즐기는 무방비 상태에서 김재규의 총을 맞고 힘없이 쓰러졌다. 또 한방을 쏘려하자 사면초가의 상태에서도 "김 부장, 또 쏠라꼬?", "한방 맞았다 아이가?"라며 순간 '친구'의 대사를 연상케 했다. 불도저라는 그의 별명을 무색케하며 그렇게 힘없이 생을 마감했다.
 
김 부장은 18년 독재 체제의 심장과 머리를 야수의 심정으로 쏜 것이라고 한다. 실제 3가지 설이 있지만, 영화 속의 10.26사건은 심하게 표현하면 한 과대망상가의 일종의 객기로 보여진다. 보통 대통령 암살 영화에서 보여지는 철두철미한 사전 암살음모는 여기에선 찾아볼 수 없다. 번쩍이는 비데 위에서 끙끙대다가 "오늘 되는 일이 없다"며 화가 난 상태였고, 회사 과장 같은 생활에 지친 모습이 역력한 주 과장은 연신 껌을 씹으며 스트레스를 푼다. 주 과장은 "인생 쇼부쳐버리자"며 김 부장의 뒤를 따르지만 "할아버지 뒤처리해"라고 명령하고 내팽개치듯 차를 타고 가버리는 김 부장의 행동에 "말을 해주고 가야 할꺼 아니야?"라며 대책 없는 김 부장의 행동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을씨년스러운 새벽에 광화문 16차선을 혼자 종횡무진하며 말이다.
 
가부장성과 폭력
 
'맞으면서 컸다'라는 박정희의 맞는 게 당연하다는 대사처럼 폭력이 빈번하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총격, 부하들 시켜서 죽은 사람들을 확인사살하고, 피로 난자한 만찬장과 주방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많이 죽이는 것이 곧 과잉충성이라고 생각하는 조 실장은 "캄보디아에서 백만 명이나 죽였다"며 취중에 허풍처럼 늘여놓는다. 세트장 구성도 위엄적이고 딱딱하고 강인한 분위기에서 남성적인 사회를 표현하였다.

군사문화 속에서 남자들의 쇼에서 시작과 결말의 내레이션은 여자들의 전리품이다. 철딱서니 없다는 윤희모의 멘트는 감히 그 남성우월을 일언지하에 깎아내린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그린 드라마
 
절대 권력자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에서 바보들의 정치판을 보는 듯 했다. '정말 저랬을까?' 반신반의를 하면서도 실소를 자아내었다.

한편, 그 주변인들의 인간성은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어쩌면 영화의 포커스는 그 주변인들에게 맞춰진 듯 했다. 군사독재라는 그럴싸한 이름 아래 뭔지는 모르지만 절대복종하는 부하들, 본의 아니게 그곳에 있어야 했고 그로인해 희생을 당했고 또 그로인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들의 정신없는 하룻밤의 시대의 아이러니를 스크린에 담았다.
 
주 과장은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끌려나온 경비원 원태를 비롯한 부하들에게 명령하고, 단지 해병대 출신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작전에 가담한 지목된 운전수 상욱 등은 영문도 모른 채 잔뜩 긴장한 채로 김 부장의 총소리를 기다린다. 어리바리한 이들의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역사적인 날임에도 변함없다.

주방에서는 경호원들과 주방 식구들이 함께 사진을 찍으며 한가로이 노는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이들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켜준다.
 
대통령의 부름으로 온 송금자는 심수봉을 연상하게 하는데, 고고하게 통기타로 엔카를 연주한다. 그리고 옵션으로 온 가짜대학생 미스 조는 단지 놀기 좋아하는 값싼 여자이다. 대통령이 "본관이 어디냐"고 묻자 어디 조씨인지도 모르지만 당당한, 그래서 정감이 가는 캐릭터이다. 이 두 여성은 대통령이 사망하고 어수선한 틈을 타, 빈 방에 숨어 침대위에 누워 양주를 먹으며 "나는 처음에 쇼하는 줄 알았어"라고 태연하게 농담을 하며 놀고 있다. 하지만 궁정동에서 나오자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듯이 두 여자가 터뜨리는 울음은 사건의 황당함을 역설하고 있다.
 
육군참모총장을 어느 모 대학의 총장으로 알고 민간인출입금지구역이라며 다짜고짜 차 돌리라는 초병 홍록기와, 대통령 죽음에 놀란 권력자들을 보면서도 상황파악이 안된 채 옆방에 숨어서 라면을 먹고 있는 상욱과 준형을 통해 역사는 이들의 본성 앞에서 무력했다.
 
그러니깐 뭘 말하고 싶은 거냐고?
 
무거운 주제를 수박 겉핥기만 한 것 아닌가? 억압을 벗어나려고는 했지만 어쩐지 눈치를 많이 본 것 같다. 2% 부족함에 조금은 안타깝다.
 
본의 아니게 명령에 복종한 죄로 잔인한 고문을 받다 사형을 당한 그 사람들과, 마른하늘에 날벼락 마냥 총소리에 비명횡사한 사람들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지독한 고문에 시달리며 만신창이가 된 원태는 "이제 집에 가면 아가하고 꼭 바람 쐬러 가자"며 수화기에게 말하던 독백 같은 대사가 내내 뇌리를 맴돈다.
 
내 나이 이하의 관람객들에겐 김윤아는 역시 예쁘고 노래 잘한다, 故김성재 동생인 김성욱과 홍록기가 카메오로 출현한 것이 관심사일 테고, 30세 이상의 관람객들은 3공 군사독재를 운운하며 국보법을 논할 것이다. 이 두 세대의 가운데에 있는 내 또래들은 의견의 교집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인가?' 맞다 아니다는 관람객 각자의 판단에 맡겨질 뿐, 나에겐 'None of business'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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