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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이 막말한다? 글쎄…

〔벼리의 돋보기〕노 대통령 발언에 대한 ‘막말 비난’ 어떻게 볼까?

벼리 | 기사입력 2007/06/17 [21:08]

노 대통령이 막말한다? 글쎄…

〔벼리의 돋보기〕노 대통령 발언에 대한 ‘막말 비난’ 어떻게 볼까?

벼리 | 입력 : 2007/06/17 [21:08]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 따르면 단어의 의미는 문장 안에서 그것의 쓰임새에 불과하다. 문장은 읽혀진다. 읽혀지는 문장에서 단어의 의미는 문장 안에서 그것의 쓰임새처럼 읽혀지는 쓰임새가 있는 셈이다. 2차적인 쓰임새라 할 만하다. 결국 쓰기에 있어서나 읽기에 있어서나 중요한 것은 1차적인 쓰임새와 2차적인 쓰임새 사이에 괴리 여부다.

쓰기와 읽기 사이, 1차적인 쓰임새와 2차적인 쓰임새 사이에서 괴리가 있을 경우 단어의 의미는 구겨지거나 비틀린다. 나름대로 글쓰기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이 괴리가 아주 흔하다는 점이다. 대체로 쓰는 사람은 자신이 의도한 쓰임새에 따른 의미로 읽혀지기 바란다. 그러나 읽는 사람은 그 쓰임새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종종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구기고 비트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노 대통령 발언에 대한 막말 비난은 아직도 한국정치가 ‘3류 정치’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사진제공; 청와대)     © 성남투데이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는 조·중·동 등 전국언론, 각종 기득권층 옹호에 앞장서는 집단들, 여권의 지리멸렬로 기세등등한 한나라당의 비난이 거세다. 그 비난은 요컨대 노 대통령이 ‘막말’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질책은 노 대통령의 자질을 문제 삼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대선3수를 모면하려는 한나라당의 기회의 확장이라는 정치적 효과도 부인하기 어렵다.

아마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 같은 막말 비난에 대해 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적인 ‘자기 얘기’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와 관심을 끈다. 최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끔찍하다’는 그의 발언과 관련, 그는 15일자 한겨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끔찍하다.’ 이것은 상징적인 언어다. 정책의 차이를 뚜렷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그 다음에 정책을 얘기했다. 그 얘기의 핵심은 정책 비교를 한 것이다. 그 얘기를 하면서 그런 수사를 했다. 정치에서 언어의 수사를 가지고 적절하네, 안 적절하네 그런 얘기 하면 안 된다. 나는 그때 대통령이라는 직무로서 연설한 것이 아니고 한 정치인으로서 강연한 것이다. 공권력의 집행자로서의 공무를 수행하는 대통령이 있고,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행위를 하는 대통령이 있다. 그 사람들이 나한테 퍼부은 수많은 수사들보다는 훨씬 점잖다. 말의 큰 줄거리가 아니라 그냥 수사로서 쓴 말을 일일이 다 따지면 아무도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

요컨대 정치적 수사가 막말로 구겨지고 비틀렸다는 것이다. 100% 맞는 얘기다. 노 대통령의 얘기는 단어의 의미는 문장 안에서 그것의 쓰임새에 불과하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 전하는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반론은 자기 발언이 정치인으로서 책임있는 발언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엿볼 수 있어 당당하기까지 하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책임있는 자기 애기라는 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왜 노 대통령이 막말 비난까지 받아가며, 이번 경우처럼 발언의 쓰임새까지 부연하며, ‘공권력의 집행자로서의 공무를 수행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행위를 하는 대통령’으로 나서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논리적인 이유에서도 노 대통령에 대한 막말 비난이 비판받을 만하다는 문제의식과 관련이 있다.

노 대통령이 밝혔듯이 대통령은 공권력의 집행자 따라서 공평무사해야 할 지점이 있고, 정치인 따라서 정치적 행위를 수행해야 할 지점이 있다. 이 구분을 인정하지 않고 공평무사해야 할 대통령이 왜 정치에 나서느냐고 따지는 것은 ‘논점 회피의 오류’다. 막말 비난은 결국 노 대통령 발언의 취지나 논점을 뭉개버리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강자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판단하는 탓이다. 바로 노 대통령 발언에 대한 막말 비난에서 읽혀지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공평무사한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을 겨냥한 정치행위를 하는 정치인으로 나서는 구조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 요컨대 그것은 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각종 권력의 도구들을 조종하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조정할 각종 권력의 도구가 없으니 대통령이 직접 정치인으로서 나설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도 더 겪고 가꾸어야 할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정·경·언유착의 사슬구조를 끊고 대통령의 여당총재 지위, 공천권, 당직임명권을 포기하는 한편, 내각은 일상적인 국정운영에 집중하고 대통령은 중장기 국자전략과제에 주력하는 등 분권형 국정운영시스템을 정착시킨 것은 노 대통령이다. 권력을 주권자인 국민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국민권력’의 시대를 열기 위해 애를 써온 것이다. 사실이다.

온갖 권력의 도구들을 조종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힘이 없는 대통령, 바로 노 대통령이다. 뒤로는 온갖 권력의 도구들을 조정하면서도 안 그런 척, 겉으로는 호박씨 까듯 공평무사한 척하는 구시대의 대통령과 그는 다르다. 한나라당의 계보를 잇는 역대 여당 시절 대통령들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박정희, 전두환 같은 희대의 독재자들은 더 말할 게 없다.

국민권력의 탄생은 제도적인 차원에서나 시민 개개인의 차원에서나 ‘권력에 대한 거부’를 실현하는데 있다. 제도적으로 권력에 대한 거부는 권력자가 각종 권력의 도구들을 조종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점에서 노 대통령의 정치개혁 노력은 높이 평가될 만하다. 이 평가에는 삶의 태도에서 자신부터 남에게 힘을 사용하지 않는 원칙적인 태도가 결여되어 있으면 모든 권력에 대한 거부는 실천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되고 배려되어야 한다.

각종 권력의 도구들을 조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나설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지점이 분명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종 권력의 도구들을 조종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에서 노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자신을 믿고 자신에 의거한 정치행위를 적극적으로 펼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자신을 믿는 정치인이 자신의 판단, 자신의 감각에 충실하고 따라서 당당하게 자기 얘기를 자기 언어로 토해내는 것은 자연스럽고 돋보이는 일이다.

노 대통령 발언에 대해 논쟁이 아니라 그저 막말 비난이 쏟아내는 것은 아직도 한국정치가 ‘3류 정치’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물 만난 고기떼처럼 맹공을 퍼붓는 막말 비난도, 막말 비난을 받고 있는 노 대통령의 발언도 그 진짜 쓰임새를 제대로 읽을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란 따라보는 것 아니라 가려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패거리의 일원이 아니라 깨인 시민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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