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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영화 '황산벌' 도정정신의 새로운 시도 긍정적 평가

이창문 기자 | 기사입력 2003/11/14 [15:00]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영화 '황산벌' 도정정신의 새로운 시도 긍정적 평가

이창문 기자 | 입력 : 2003/11/14 [15:00]

[영화속으로] 지난 29일, 월간조선 조갑제 대표가 “한국사의 가장 비장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파괴하고 이를 우스개로 만든 非국민적 反역사적 행태” 라며 강하게 비난하였지만, 이준익 감독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지금과 같이 사투리를 쓴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기존의 역사적 사실을 코믹하게 풀어낸 퓨전 역사 코미디라 한 영화, 황산벌...

서기 660년(의자왕 20), 나당(羅唐)연합군이 동서로부터 침입하여 당군은 백마강 북안에 상륙하고,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 황산으로 밀려온다. 이에 백제의 용장 계백은 "살아서 적의 노비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하여 자기의 처자를 모두 죽이고 황산(논산시 연산면)에서 신라군을 맞는다.
▲황산벌 영화 포스터.     ©우리뉴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5천의 백제 결사대는 신라의 김유신이 이끄는 5만의 군사가 3방면으로 나누어 네 번의 치열한 공격을 가하나 번번이 막아낸다. 이로 신라군은 기력이 다하고 사기가 떨어진다. 이에 신라 장군 흠춘은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아들 반굴을 적진에 뛰어들게 하여 전사하게 하고, 장군 품일도 16세의 어린 아들 관창을 백제군 속에 뛰어들게 한다. 자비로운 계백 장군은 차마 죽일 수 없어 처음에는 풀어주지만 재차 반격해왔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관창의 목을 베어 그의 말에 실어 보낸다. 관창의 의로운 죽음을 본 신라군은 모두 의분심을 일으켜 백제군을 향해 돌진한다.

5만의 신라군과 5천의 백제군의 치열했던 황산벌은 피로 물들인다. 백제가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된 비운의 이 싸움에서 계백은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전사하고 만다. 백제군은 전멸하고 신라군 역시 절반이 넘는 숫자가 죽는다.

<황산벌>은 지금의 전라도와 충청도가 백제이고 경상도 지방이 신라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여기에는 전라도의 ‘거시기’와 경상도의 ‘살’로 대표되는 사투리의 맛을 살리는 동시에 대사 전달 면에서도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으려 했으며, 배경만 삼국시대일 뿐 그 안에서 사용되는 유머나 상황 전개는 21세기 오늘과 일치시켰다.

또한, 전쟁은 알지만 정치는 모르는 ‘직업 군인’의 전형으로 그려지는 계백역에 박중훈과  정치가 형 군인에 가깝운 김유신역에 정진영은 이름에 걸맞는 안정된 연기를 통해 극의 무게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그러나, 갑옷입고 창을 든 병사들이 말을 타면서 벌이는 전투는 고루하다. 단순하게 칼 들고 말 탄 장군의 ‘공격하라’란 외침에 전투하는 모습들이 그저 색다르고 기발한 전투의 모습들로 등장할 뿐이다. 심리전이라는 타이틀로 시작되는 병사들 간의 욕지거리 전투에서 토속적인 사투리의 정감이 살아있는 욕설이 아닌, 누가 더 잔인하고 지저분하게 욕을 하는 지가 승부의 관건이 되는 전투는 쓴 웃음만을 유발시키고, 치부를 드러낸 지저분함에 구토를 해대는 백제군 병사를 볼 때엔 웃음을 강요한다는 인상마저 받게 된다.

나른한 역사 교과서 속의 이야기를 가장 쉽게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건 웃음이라며 영화 중반까지 코미디로 일관하던 영화는 본격적인 황산벌 전투가 시작되면서 비장미가 흐르는 역사전쟁물로 돌변한다. 백제의 5천 병사가 전멸한 비극적인 역사를 한낱 코미디의 소재로 끝낼 수 없다는 제작진의 고민이 담겨있는 대목일 것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황산벌 총공격 씬(Scene)의 스케일과 극의 흐름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한 연예인들의 까메오 또한 볼만하다. 

<황산벌>은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로 대표되는 두 나라의 사투리가 코믹적인 핵을 이루고 있다는 전제의 뒤편에는 역사적인 해석을 달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화합을 보여주리라는 기대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계백의 처연한 죽음에서 그 어떤 예우는 찾을 수 없을 뿐더러, 당나라 사령관인 소정방의 탁자에 칼을 꽂는 김유신의 호연지기는 개인적 혹은 지역적 자존심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높게 평가해 주는 이유는 분명 새로운 시도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를 계기로 참신하고 새로운 도전 정신의 영화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영상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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