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업 하시는 분들, 소 키우시는 분들은 보상을 하면 숫자가 적으니까 될 것이고. 도시 근로자들은 질 좋은 고기를 값싸게 먹게 된다.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된다.”(4월 21일 쇠고기 협상 타결 후 이명박의 발언)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위험하면 우리가 안 먹는 것이며, 수입업자도 장사가 안 되면 안 들여온다.”(5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명박의 발언) 이명박에 따르면 전면적인 미국쇠고기 수입은 단지 돈 되기를 원하는 상품문제일 뿐이다. 장사치의 논리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는 핵심을 뚫어 지적하면 화폐권력의 문제다. 돈이 되는 것은 번성하고 지배할 것이며,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지배받고 소멸될 것이라는 뜻이다. 한우들은 사라질 것이다. 파산한 낙농가들, 소 키우다가 망한 농부들은 분노와 저항을 참지 못할 것이다.
화폐권력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그 어떤 것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무효화된다. 가치의 잠식, 탈가치화의 과정은 폭력적 양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버려지고 파괴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공황은 고전적 사례 아닌가. 생산의 외부로 내몰린 생산자들, 그들 삶의 파괴는 필연적이다. 이렇게 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명박정권의 전면적인 미국쇠고기 수입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명박정권이 인간존재 자체의 붕괴를 마다하지 않는 반생명적인 인간파괴정권이라는 점이다. 이명박에 따르면 위험 곧 광우병은 고려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 당시 고려대상이 아니었음이 이미 폭로되지 않았는가! 광우병, 피하면 그만이란다! 대통령이 이런 망언을? 당장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려 몰매를 놔도 성이 풀리지 않을 소리다. 확실하다. 이명박정권과 우리 사이에는 메울 수없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화폐권력의 지배를 내세운 장사치의 발상과 인간존재 자체의 붕괴를 우려하는 생명적인 태도의 차이다. 광우병이 뭔가? ‘뇌송송 구멍탁’ 아닌가! 치사율 100%! 뇌에 송송 구멍이 뚫려 붕괴되듯 죽는다는 것! 잠복기 10년! 무슨 뜻일까? 단 한 명이라도 발생할 경우 그 공포는 천하를 뒤덮고도 남는다! 이 어찌 괴담인가? 이 어찌 확률문제인가? 확실하다. 양자간의 차이는 비교 불가능한 차이, 심연의 차이다. 따라서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성난 민심의 방향과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예견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명박정권은 미국쇠고기 수입문제를 단지 돈 되는 것으로만 표상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이런 왜곡된 표상을 거부하고 대신 미친소를 먹을 수 없다는 의지, 믿음을 가지고 있다. 돈이라는 표상의 거부, 자연스럽게 솟구친 의지와 믿음의 흐름, 이것이 우리가 가진 이유의 전부다. 성난 민심이 이명박을 향해 ‘미친소! 너나 처먹어라!’라는 구호로 집약돼 나타난 이유이기도 하다. 미친소를 먹을 수 없다는 우리의 믿음, 의지는 초유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이는 생명의 상실이라는 근원적인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인간 본성에서 기인한다. 소유의 상실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치적 재단도 불가능하다. 아니, 어떤 정치논리나 정치적 이해관계로도 막을 수 없는 힘을 지녔다. 성난 민심, 이명박정권이 막을 수 없다. 초강대국 미국도 막을 수 없다. 이명박정권이 불러들인 이 초유의 공포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성난 민심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성난 민심의 본질을 보지 못한 채 지금과 같은 이명박정권의 정치적 접근, 공안적 접근이 지속될 때 우선적인 우리의 선택은 이명박 탄핵일 수밖에 없다. 이명박정권의 무능력의 지대와 성난 민심의 원천인 우리의 믿음, 의지의 흐름 사이에서 새로운 시대의 각성, 새로운 정치가 등장할 것 같은 예감도 스친다. 새로운 시대의 각성, 새로운 정치의 탄생은 늘 이런 접점에서 탄생했음을 역사는 보여준 바 있다. 시대의 고비를 맞이하는 강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작권자 ⓒ iwa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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