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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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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죽었다

〔벼리의 돋보기〕 작가와 독자

벼리 | 기사입력 2008/10/19 [11:28]

작가는 죽었다

〔벼리의 돋보기〕 작가와 독자

벼리 | 입력 : 2008/10/19 [11:28]
작가, 작품, 독자가 있습니다. 상호 간에 맺어지는 관계를 ‘경제적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 관점이란 ‘교환’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교환을 통해서만 ‘이득’이 남기 때문입니다. 교환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질 높은 노동력으로 만든 상품일지라도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하면, 회사 문 닫아야 합니다. 상품이 돈으로 교환되지 않으면 사장님만 망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 역시 굶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작가는 작품을 생산합니다. 독자는 작품을 소비합니다. 독자가 작품을 소비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작품이 교환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경제적 이성’을 가진 작가라면 교환되지 않는 작품은 생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보 같은 작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령 작품이 교환되지 않는 것을 독자 탓으로 돌리는 작가 말이죠. 그는 작가로서는 사실상 죽은 존재입니다. 교환의 주도권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에게 있기 때문이죠.

교환의 장에서는 ‘생산 따로 소비 따로’입니다. 생산에서 사장님과 노동자는 한 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노동자가 주인이라는 사고는 틀렸습니다. 노동자는 결코 ‘보편적인 존재’일 수 없습니다. 동물이 먹이를 구하듯 인간이 생산하는 것은 ‘자연사적 사실’이어서 역사에서 논의될 사항은 아닌 것이죠. 그래서 반대로 소비자가 주인입니다. 생산의 주도권은 소비자의 주도권에 비하면 별 거 아닙니다. 작가-작품, 작품-독자라는 관계 역시 마찬가지죠.
 
▲ 민주노동당성남시위원회가 상대원시장 버스정거장 인근에 내건 현수막.     © 성남투데이

왜 교환에 관한 얘기를 하냐구요? 일요일, 저는 아우 내외가 차려주는 정성스런 밥상을 기분좋게 함께 한 후 돌아오는 길에 어떤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상대원 시장 인근 버스정거장에서 이런 제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죠. 촉발시킨 것입니다. 버스정거장 부근에 부착된 그 프로파간다는 이렇습니다. “시립병원 설립 방해하는 ○○○시의원 규탄한다!!” 누가 이런 것을 거리에 붙였을까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거기엔 “민주노동당성남시위원회”라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프로파간다는 불특정다수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폭격으로 치면 ‘무차별 폭격’이라고나 할까요. 분명합니다. 이것을 보게 된 저는 그 불특정다수의 한 사람인 셈입니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요. 그래서 프로파간다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불특정다수의 한 사람일 수 없습니다. 저는 ‘벼리’입니다. 벼리라는 존재는 결코 다른 사람일 수 없는 고유명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 불특정다수를 겨냥한 프로파간다를 그들이 원했을 방식이 아닌 제 방식인 교환의 관점에서 읽은 것이죠.

이제 작가-작품, 작품-독자라는 생산과 소비, 이 서로 다르고 분리된 두 과정을 말하는 이유가 분명해진 셈입니다. 그럼 작품-독자라는 소비의 관점에서 이 프로파간다를 따져보겠습니다. 독자인 벼리가 주도권을 갖고 민주노동당성남시위원회라는 작가가 생산한 작품, 그 프로파간다를 따져보겠습니다. 그리고 소비자의 입장에서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이 상품을 사지 않는다면 작가는 불평을 늘어 놓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독자인 제가 사지 않으면 그만이죠. 제겐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충동구매야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말합니다. “시립병원 설립 방해하는 ○○○시의원 규탄한다!!” 독자인 저는 ○○○시의원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작가가 고유명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남시의회 홈 페이지에 나오는 의원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참고해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 시의회 의장인 김대진 의원을 ○○○에 잠시 대입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프로파간다는 “시립병원 설립 방해하는 김대진 시의원 규탄한다!!”가 되었습니다.

시의회 부의장이 김유석 의원인가요? 민주노동당 소속 김현경 의원도 있군요. 김현경 의원을 집어 넣었더니 이 작품은 “시립병원 설립 방해하는 김현경 시의원 규탄한다!!”가 되었습니다. 즉 36명의 시의원들 누구라도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작가인 민주노동당성남시위원회가 시의회 의원들 전체=시의회에 대한 규탄이 아니냐는 의미로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독자의 입장에서는 말이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고유명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성남시위원회에서는 “시립병원 설립 방해하는”이란 ‘한정사’(분석철학에 말하는 確定記述)가 있기 때문에 시의회 의원들 전체=시의회에 대한 규탄으로 확산될 수는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의 입장입니다. 생산의 관점입니다. 독자의 입장, 소비의 관점에서는 ○○○시의원이 누군지 도저히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했습니다. 생산의 관점과 소비의 관점은 완전히 분리된 과정 즉 소비는 생산이 넘볼 수 없는 전혀 다른 과정이라고 말이죠.

고유명을 명시하지 않는 한, 설령 그 한정사가 아무리 다발을 이루더라도 그 한정사는 고유명을 가리킬 수 없습니다. ‘X가 존재하고 X는 벼리다’라고 해봤자 X는 결코 벼리를 가리킬 수 없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뿐만 아니라 그 어떤 한정사로도 대체될 수 없는 것이 바로 고유명입니다. 벼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이 벼리가 바로 고유명이 가리키는 것입니다. 벼리는 벼리입니다. 고유명은 고유명인 것입니다. 고유명을 명시하지 않는 한, ○○○시의원은 36명의 시의원 누구라도 규탄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프로파간다는 그것이 ‘거리’에 부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 관점에서는 생산이 아닌 소비라는 문맥에 놓여 있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작가의 입장에서, 생산의 관점에서 아무리 시의원들 전체=시의회에 대한 규탄으로 확산될 수 없다고 주장해봐야 소용없는 일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소비의 관점에서는 “시립병원 설립 방해하는 김현경 시의원 규탄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이 작품의 작가는, 그렇군요, ‘민주노동당성남시위원회’군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사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프로파간다를 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시립병원 설립을 방해하는 ‘그’가 누군지 분명하게 밝히지도 않으면서 따라서 떳떳하지도 못하면서 독자가 되어달라는 사실에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프로파간다는 시의회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읽혀진다는 점에서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시의회 차원의 적절한 대응이 없지 않겠다는 상식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미 시립병원 설립을 원점에서 재논의하자는 주장이야말로 ‘시립병원 흔들기’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바로 이 같은 내용으로 얼마전 기자회견을 가진 정용한 의원입니다. 민주노동당성남시위원회가 생산한 작품대로라면 이야말로 ‘시립병원 설립을 방해하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민주노동당성남시위원회가 시립병원 설립을 원점에서 재논의하자는 주장에 대해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씁쓰름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시립병원 설립부지로 현 시청사가 결정되고 나서도 당시 일부 시의원들은 공식적인 시의회 발언을 통해 시립병원 설립부지로 지금과 똑같은 수정구청을 제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으로는 그 땐 민주노동당성남시의원회가 침묵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지금은 왜 제게 소비되지 않는 작품을 들고 나와 프로파간다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요? 그 속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겐 다음과 같은 사실이 남습니다. 이 사실이 제겐 전부입니다. ‘소비자가 주인입니다.’ ‘소비자가 왕입니다.’

민주노동당성남시위원회의 프로파간다.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이 프로파간다에 대해 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와 함께 소비자로서 독자로서 제 어법으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작가는 죽었다.’ 그러니 그냥 피식! 하고 말았죠. 오히려 버스에 올라 제게 왕의 밥상을 차려준 살가운 제 아우 내외를 떠올렸습니다. 세상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살 만하다는 충만감이 넘쳐 흘렀습니다. 다음에 무슨 선물로 화답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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