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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는 동양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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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는 동양의 평화”

【6·15 햇볕칼럼】‘동양평화론’을 다시 생각한다

한채훈 | 기사입력 2011/04/30 [23:59]

“한반도의 평화는 동양의 평화”

【6·15 햇볕칼럼】‘동양평화론’을 다시 생각한다

한채훈 | 입력 : 2011/04/30 [23:59]
▲ 노세극 6.15경기본부 홍보위원                                             ©성남투데이
지난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나는 그날 안중근 추모 평화기행단의 일원으로 안의사가 돌아가신 여순 감옥 사형장 교수대 앞에서 겨레와 조국을 위해 청춘과 생명을 바친 그의 32년의 삶을 추모하였다.
 
안중근 추모평화기행단은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을 오늘에 재조명해보자는 취지로 작년 가을부터 논의되어 추진된 행사로서 한중일 3국의 평화운동가들이 모여 안의사의 행적을 따라 다니며 같이 기행도 하고 토론도 하며 동양평화를 위한 구체적 연대를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일본측 참석자들이 오지 않아 조촐한 행사가 되고 말았다. 어떻든 김태준 동국대 교수를 단장으로 한 안중근 추모 평화기행단은 안의사의 행적을 따라 3월 22일 하얼빈을 출발점으로 하여 장춘과 대련을 거쳐 이곳 여순으로 온 것이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치고 안중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체로 안중근에 대한 인식은 하얼빈 역두에서 이등박문을 격살한 장거를 이룬 의사로서만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사상가로서 안중근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안중근은 불굴의 의지와 용기, 담대하고 의연한 기상과 열정, 신념과 결단력 등 위인의 소양과 풍모를 갖추고 있었지만 또한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선견지명과 통찰력의 소유자이기도 하였다.
 
필자도 이번 기행을 통해서 안중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고 알면 알수록 정말 존경심이 가슴 깊은 곳에서 절로 우러나왔다. 그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거사한 후 1910년 3월 26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5개월간 감옥생활을 하였는데 감옥 안에서 그는 사형이라는 극형을 선고 받은 사람 같지 않게 평상심을 잃지 않고 몸과 마음이 항상 평화로웠다고 한다.
 
도저히 함부로 대할래야 대할 수 없는 기품이 넘쳐흘러 그를 취조 했던 검찰관도 감옥의 간수도 그를 내심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추상같은 어조로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과 일본의 침략행위를 규탄하였는데 그의 논리정연한 주장에 오히려 안중근에 의해 일본 제국주의가 심판을 받는 자리 같았다고 한다. 당시 법정 공판 광경을 취재했던 영국신문 ‘더 그래픽’지는 재판의 진정한 승리자는 안중근이었다고 전하였다.

안중근은 법정에서 자신의 행위가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감옥 안에서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 두편의 원고를 썼는데 아쉽게도 ‘동양평화론’은 일본측이 당초 약속과 달리 원고를 쓸 시간을 주지 않고 서둘러 사형을 시키는 바람에 완성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동양평화론의 원고를 보면 동학혁명을 좀도둑의 소요로 치부하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높이 평가하고 또 법정진술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바 일본제국주의의 핵심인 일본 천황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일제에 대한 인식의 한계가 보이는 부분도 일부 나타나지만 오늘날에도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주장을 많이 하였다. 동양평화론은 원고 완성을 보진 못하였기 때문에 일본 고등법원장인 히라이시와의 대화록 등을 통해 대략이나마 그 전모를 알 수 있는데 그가 제시한 구체적 실천 방안은 다음과 같다.

당시 일본이 차지하고 있던 여순을 중국에게 돌려주어 중립화하고 그곳에서 한중일 3국이 모여 평화회의를 하고, 3국간에 공동 군단을 창설하며 또한 공동화폐와 공동은행을 설립하고 공동으로 경제를 개발하며 그리고 한중일세나라 황제가 로마 교황을 방문하여 협력을 맹세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진일보한 사상으로 조명받고 있고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으며 100년 앞을 내다 본 선견지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순의 중립지대화는 한반도의 중립적 조정국가론으로, 3국 평화회의는 오늘날 6자회담으로 3국 공동군단 창설론은 동북아 집단안보체제로, 공동화폐는 아시아판 유로머니로, 공동은행은 동북아 개발은행 설립으로, 공동경제 개발은 동북아 시장 통합론으로 그리고 로마교황청 방문은 유엔 안에서의 상호 존중으로 확대 해석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중근의 동양 평화사상의 핵심은 조선의 독립에 있었다. 조선이 독립을 하지 않으면 동양 3국간에 평화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안중근 의사가 오늘 남과 북으로 갈라선 분단상황을 본다면 어떻게 말하실까? 게다가 남쪽에는 외국군마저 주둔해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볼까?
 
참으로 통탄해 마지않는 가운데 동양평화 전에 남과 북이 먼저 평화정착을 하라고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남과 북간에 중립화 통일을 그리고 공동의 군대와 공동화폐 공동은행 설립과 공동으로 경제개발을 촉구할 것이다. 나아가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한시바삐 대체하라고 강력하게 주문할 것이다.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야말로 동양평화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며 핵심요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의사의 정신과 유지를 계승하는 길은 다같이 평화와 통일의 한길에 올곧게 나서는데 있다./6.15경기본부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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