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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생활사박물관은 어때?

〔문화/하다말다〕시립박물관 ‘복합’인가, ‘짬뽕’인가?

벼리 | 기사입력 2007/03/18 [23:08]

지역생활사박물관은 어때?

〔문화/하다말다〕시립박물관 ‘복합’인가, ‘짬뽕’인가?

벼리 | 입력 : 2007/03/18 [23:08]
시립박물관이 문화예술과 역사를 동시에 담는 복합형으로 간다는 소식이다. ‘성남시박물관 건립방향 및 타당성 검토 연구’ 결과다. 한편에선 그 동안 성남시, 문화재단에서 추진해온 시립박물관 설립에서 우선 과제인 테마 설정이 좌충우돌해온 점을 고려하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복합형은 문화예술 내지 공연예술에 대한 성남시 및 문화재단의 기존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짬뽕’인 것도 사실이다. 또 무게 중심이 여전히 역사가 아닌 문화예술에 있다는 점에서 성남에서 시립박물관 설립 요구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모호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박물관은 기본적으로 테마박물관이 아닌 역사박물관이다. 이 역사박물관이 성남지역의 역사를 담은 지역사박물관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지역사박물관이 갖는 함의는 성남지역의 정체성을 확보하자는 데 있다. 다른 취지가 있을 수 없다. 있다면 그것은 보조적일 수밖에 없다.

성남지역사회에서 정체성의 문제는 분명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문제다. 전국 또는 세계라는 틀 속에서 성남이라는 삶의 단위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성남문화가 다른 지역문화들과는 다른 개별성을 갖고 있으며, 이런 삶의 단위와 문화적 개별성이 전국이나 세계라는 보다 큰 틀 속에서 변용될 수 있고 기여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다.

더구나 팔도민 박물관으로 부를 만한 성남은 정체성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성남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하듯이 정체성의 파열은 지역의 성장과 성숙, 특히 지방자치 안정에 가장 큰 저해요인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성남시민이 시립박물관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시립박물관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 속에서 성남에서 이루어지거나 일궈온 삶의 체취를 체험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이렇게 중요한 정체성 문제를 정면에서 대적하지 않는 한, 시립박물관은 앞으로 설립 추진과정은 물론 설립 후에서도 흔들릴 소지가 다분하다. 우리가 바라는 100년의 성남 미래를 고려한 박물관이 되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보자면 연구 결과는 역사박물관을 보는 눈이 상당히 기계적이다.

연구 결과는 사례 조사 결과라며 전시 경쟁력, 이용객 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 단지 역사박물관으로는 박물관 유지가 어렵다는 대단히 기술적인 논리를 제시한다. 문화예술을 짬뽕한 이유이자 짬봉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틀렸다. 경제적 패러다임으로 삶과 그 문화를 규정하려는 관점에 선 논리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패러다임은 문화적 패러다임과 충돌한다. 문화적 패러다임은 문화와 예술을 비영리적이고 공공적인 성격으로 파악하며 시민의 문화적 권리와 향수권의 신장을 겨냥한다. 문화적 패러다임이 문화를 돈이 되는 개발사업 쯤으로 보는 경제적 패러다임과 충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긴 연구 결과 발표장에서 나온 시장이나 관료들의 얘기들도 거의 대부분 이 같은 관점에 있다. 특히 역사박물관이 다양성이 떨어지느니 인기가 없느니 하면서 수익성 운운하며 공연예술을 테마로 한 박물관을 언급한 이 시장의 발언은 역사박물관에 대한 무지와 천박한 반문화적 사고의 진수를 폭로한다. 더 평가해줄 게 없다.

오히려 강효석 건설교통국장의 발언이 쓸 만하다. 그는 “문화예술 테마를 충족시킬 전시물품의 확보 가능성과 전시물품의 업그레이드 방안은 마련되어 있는지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콘텐츠가 아닌 전시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문화예술 테마에 대한 실무적 차원의 고민이 배어 있어서다.

강 국장의 지적은 실은 시립박물관의 중심 테마인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문제다. 연구 결과대로 성남역사관을 고고유물실, 성남문화실, 도시문화실로 구성한다고 해도 과연 어떤 유물들을 전시자료로 채울 것인가?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유물 수집과 관련해 돈의 문제가 우선 걸리고 역사와 유물을 보는 안목도 크게 걸린다.

실무적으로는 이 점 때문에, 또 관점상으로는 성남이 겪어온 시·공간의 특성을 고려하고 보다 주민밀착적인 박물관 설립의 필요성 때문에 전에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춘 박물관 곧 지역생활사박물관을 제안했던 것이다. 일상생활이 갖는 풍부함은 이루 말로 못한다. 의미, 창조 뿐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하는 토대인 역사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정체성 문제에 강한 호소력을 지닌 유물의 수집과 전시가 용이해지고 풍부하게 갖출 수 있으며 유물 기증 및 전시, 운영에서 시민참여가 활발해질 수 있다. 실무적 운영주체의 문제에 있어서도 전문성 요구보다는 기획과 시민접촉 능력 요구가 강해져 다양한 차원,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반한 지역과의 결합력이 훨씬 더 잘 발휘될 수 있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바 있는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과거의) 박물관이 하나의 단언이었다면, 상상의 박물관은 하나의 물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시자료와 관련해 이 말은 과거의 박물관에 들어올 수 있는 유물이 한정적이라면 상상의 박물관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해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성남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지역살이에서 찍은 사진들은 얼마나 많겠으며, 그것들은 아이디어와 분류에 따라 풍부한 수집과 다양한 전시가 가능하다. 이 점에서 상상의 박물관은 하나의 물음이 아니라 수많은 물음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지역생활사박물관은 상상의 박물관을 현실로 구현한 한 가지 사례일 수 있다.

주민밀착형의 지역생활사박물관이라면 박물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도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기존 박물관이나 연구 결과에서 제시된 박물관보다 더 클 것이다. 정체성 문제에 대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상에 파고 들기 때문이다. 이런 박물관이야말로 성남과 성남사람으로 살아온 시민들의 삶의 흔적들로 그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건립 및 운영 예산도 오히려 지금 예상하는 규모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문화예술 테마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정부가 문화를 문화 자체로 접근하는 자세만 잃지 않는다면 굳이 역사박물관에 보조적으로 끼어들건 아니면 특화하는 방식으로 끼어들건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화예술은 미술관, 공연장, 예술회관, 기념관이 아닌 박물관의 개념으로도 얼마든지 읽어낼 수 있고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끼어들더라도 역사박물관은 의연 종합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역사가 문화예술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역사박물관에 강조점을 찍는 한, 양자의 관계는 패러다임 차원에서 결코 대당적인 관계가 아닌 주종적인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박물관에서의 문화예술을 공연예술로 가자는 것은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에 관해서는 전에도 나름대로 비판한 바 있다.

현실적으로는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재단이나 영화배우 출신 이대엽 시장과 무관할 수 없다는 ‘속 들여다보이는 이유’도 있다. 또 공연예술이 전시될 경우 정체성 문제는 별개로 치더라도 얼마나 시민들에게 문화적 관심과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현재로선 의문이다. 상설전시 외에 교체전시, 기획전시, 특별전시 등 다양한 전시가 과연 가능한가라는 의문도 보탤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한다. 한 편의 오페라나 뮤지컬를 공연하고 즐기기 위해 드는 인적·물적 자산이 수많은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삶을 노래하고 춤을 출 때 일상은 곧 예술이 된다. 그렇다고 민중예술을 들먹이는 것도 아니다. 예술 나아가 문화는 다양할수록 좋다. 그러나 예술사가 입증하듯 예술의 출발은 일상이며 일상의 삶을 떠난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

시립박물관 설립방향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여전히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역사를 끼어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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