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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다수가 아니다

〔벼리의 돋보기〕밀실 날치기 통과가 ‘잘했다’니?!

벼리 | 기사입력 2006/12/26 [21:26]

한나라당은 다수가 아니다

〔벼리의 돋보기〕밀실 날치기 통과가 ‘잘했다’니?!

벼리 | 입력 : 2006/12/26 [21:26]
정치에 대해 착각하지 말아야

분명하게, 단호하게 말하지만 정치란 삶의 방식을 바꾸는 문제다. 왜 그런가?

권력이 개인의 활동에 하나의 고정된 방향을 부여하려는 욕망이라면 이점에서 권력은 삶의 방식을 고정함으로써 개인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고정하려는 활동이다. 그렇다. 권력은 개인의 삶을 포섭하고 통합하려는 속성이 있다. 반면 가장 적극적인 의미에서 정치는 이런 권력을 바꾸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는 활동이다. 그렇다. 정치는 제한되고 고정된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능동적인 삶의 활동이다.

정치를 삶의 방식 안에서 권력과 결부된 활동의 문제로 보는 이런 시각은 ‘정치에 대한 착각’과 아주 다르다. 이 착각이란 정치를 국가권력 또는 지방권력 주변에서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활동으로 보는 것이다. 이 착각은 종종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어떻고 내가 반대하는 정당이 어떻다는 수준에서 정치를 이해한다.

▲ 한나라당 젊은 의원인 남용상, 남상욱, 정용한 의원이 이수영 의장을 보디가드 형태로 호위한 채 예결위가 삭감한 시청사 이전 예산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시의회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조덕원

왜 정치에 대한 착각이 늘 문제가 되는가?

이 착각은 정치를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자들과 결부된 어떤 활동, 그들이 우리를 대표하고 대신하는 활동으로 간주하게 함으로써 정치를 우리의 삶과 활동에서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과 활동에서 분리된 정치란 고작 이따금 벌어지는 선거에서 표를 던지는 것이거나 극단적으로는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자들이 우리의 명운을 위태롭게 하는 잘못된 결정을 하는데도 이를 방관하거나 개입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에서 대의와 대행의 관념을 제거하는 것은 중요하다. 정치에 대한 착각을 깨부수고 정치를 우리의 문제로, 우리의 삶과 활동의 문제로 사유하는 것은 중요하다. 정치란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자들에게 맡겨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란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는 활동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수에 대해서 착각하지 말아야

정치를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자들의 활동 수준에서 이해하지 않는다면, 정치를 정당활동의 수준에서 이해하지 않는다면, 바꿔 말해서 정치를 우리의 삶과 활동을 우리 스스로 책임져 나간다는 관점에서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문제로 이해한다면 다수의 의미도 뚜렷해진다.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하지만 다수란 숫자의 의미가 아니다. 다수란 척도의 의미다. 이점에서 다수란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질적인 개념이다. 척도란 무엇인가? 스스로를 재도록 주어진 잣대의 의미다. 바로 이점에서 척도는 그 수가 적은 경우에도 언제나 주류를 형성하며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따라서 다수란 척도이기 때문에 주류가 되고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척도의 유무가 삶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를 가르며, 도덕적으로는 고귀한 자와 천한 자를 가르며, 정치적으로는 건강한 시민들이 믿고 지지할 수 있는 정당과 이른바 대중을 쫓아다니는 정치패거리를 가른다.

다수에 대해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수가 많아서 다수가 아니다. 민주주의의가 다수의 지배이며 이때 다수가 수를 의미한다면 민주주의는 노동자나 민중이 지배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다수의 지배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표로 환산되는 수의 많음이 선출직을 결정하지 않는다. 반대로 선출직들이 척도적 의미의 다수라는 통로를 통해 수의 많음을 확보할 뿐이다.

한나라당이 시청이전 예산을 다루는 과정에서 시청이전 예정부지에 보상을 노린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박권종 의원을 숫자놀음 하듯 뺐다 넣었다 한 것은 그들이 다수를 어떤 수준에서 이해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박권종 의원의 사례에서 내가 본 것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개인(사람)이 아니라 필요하면 쓰고 필요하지 않으면 버리는 물건, 바로 그것이다.

한나라당이 시의회 이수영 의장을 밀실 날치기에 써먹은 것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은 이수영 의장을 앞장세워 두 번씩이나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막고 있는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또 의장인 그가 본회의 의사봉을 휘두르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그를 가로막고 지키고 있는 것을 한나라당이 역으로 이용,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밀실 날치기에 써먹었다.

이수영 의장은 의회를 대표하는 수장이며 상임위 활동을 하지 않는 의원이다. 이 점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의원 아닌가. 더구나 양당 합의 없이는 본회의 의사봉을 잡지않겠다고 약속까지 한 마당이다. 그런 그를 한나라당이 본회의장 진입에 앞장 세웠고 밀실 날치기 통과를 감추기 위한 용도로 써먹었다는 것은, 의장 자신의 판단에 상관없이 한나라당이 과연 이수영 의장을 어떤 수준에서 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사례에서 내가 본 것 역시 개인이 아닌 아닌 물건, 바로 그것이다.

한나라당이 시청이전 예산을 밀실에서 날치기 통과한 것을 두고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 시각은 다수로 밀어붙인 한나라당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각은 쥐가 구석에 몰려 고양이를 물려고 달려들 듯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의원들의 불가피한 선택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이 무시의 바탕에는 다수의 의미를 척도가 아닌 숫자로 간주하는 착각이 자리잡고 있다.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진입을 막은 이유, 몇 가지가 확인되고 있다.

시청이전 예산을 본회의에서 부활시키려는 수정안 제출 움직임이 이미 포착되었고 당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에 의해 본회의에 상정될 수정안이 실제 확인되었다. 또 의회에서 시청이전문제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부재했다. 그동안 시청이전문제와 관련해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의원들의 근거있는 반대논리는 많이 나왔지만 한나라당의 근거있는 찬성논리는 사실상 없었으며 따라서 의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 않았다. 여기에 시민사회에서의 충분한 공론화와 합의 역시 부재했다는 점도 추가될 수 있다.

이대엽, 한나라당에 다수의 의미를 가르쳐줘야

이번 한나라당의 밀실 날치기 통과는 한나라당이 다수를 수자의 의미로 이해하는 유치한들의 단순 패거리집단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수가 척도라는 정치적 의미를 따라서 다수가 척도로서 다수답게 처신해야 한다는 정치실천적 태도를 전혀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한나라당은 수자에 불과한 오합지졸당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하나, 이번 밀실 날치기 통과를 두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정치담론 중에는 그야말로 수준 이하의 언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숫자적 의미의 다수로 밀어붙인 밀실 날치기 통과를 잘했다고 하는 발언은 더 덧붙여 말할 필요가 없는 최악의 발언이다. 김태년 의원이 민생문제를 뒷전으로 한 국회의 정쟁을 다룬 성명서 발표내용을 어떻게 오독하고 악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나쁜 사례도 있다. 성남의 한나라당 실상은 보지 못하고 전국적 의미의 열린우리당 지지에 관한 문제를 끌어들여 논점을 흐리는 물타기도 있다.

이런 수준 이하의 발언들은 정치를 정당대결 구도로만 보는 유치함에서 기인한다. 근본적으로는 정치를 국가권력 또는 지방권력 주변에서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당활동으로 보는 이른바 ‘정치에 대한 착각’에서 기인한다. 다수가 다수다워야 한다. 그것은 다수가 보다 큰 다수인 시민들에게 공감할 수 있고 따를 수 있는 다수의 척도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일이다.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한나라당은 다수의 척도가 없다. 아직도 시청이전문제와 관련해 정책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내놓은 게 전혀 없다. 무능 그 자체다.

따지고 보면 이들의 척도는 시민의 안위와 성남의 희망을 추구하는 이대엽 시장이 아니라 다만 독선적인 시장권력을 추구하는 이대엽 씨일 뿐이다.

한나라당에 다수의 의미를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 누가 다수인가? 한나라당인가? 아니다. 시청이전에 반대하는 구시가지 시민들이다. 바로 구시가지의 어제를 살아오고 구시가지의 오늘을 사랑하며 구시가지의 내일을 염려하는 구시가지의 시민들이다. 백보 양보하더라도 구시가지의 명운을 가르는 시청이전문제는 충분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는 문제다. 어떻게 한나라당에 다수의 의미를 가르쳐줄 것인가?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근조(謹弔) 성남시의회’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상징적이며 시사적이다. 그렇다. 성남시의회는 죽었다.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수영 의장, 박권종 부의장, 성남의 한나라당이 의회를 무용지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본인이야말로 독선적인 권력의 길로 치닫고 있는 이대엽 씨다.

장외 바로 구시가지 시민들 속에서 시청이전문제는 원점에서 다시 다루어져야 한다. 시청이전문제는 구시가지 시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처음부터 다시 다루어져야 한다. 구시가지 시민들의 삶의 방식 안에서, 구시가지에서 살아온 삶의 눈으로 처음부터 다시 다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광범위한 시민적 토론뿐 아니라 이대엽 씨와 자기척도 없이 이대엽 씨를 따르는 성남의 한나라당에 대한 시민적 저항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나라당은 다수가 아니다. 어떻게 한나라당에 다수의 의미를 가르쳐줄 것인가? 값싸게 가르쳐줄 수는 없다. 비싸게 가르쳐줘야 한다. 구시가지 시민들이 질기게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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