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ACCEPT_ENCODING in /home/inswave/ins_news-UTF8-PHP7/sub_read.html on line 3
6·10에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로고

6·10에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정권 획득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민중의 능력을 키우는 것

한덕승 | 기사입력 2011/06/01 [22:34]

6·10에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정권 획득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민중의 능력을 키우는 것

한덕승 | 입력 : 2011/06/01 [22:34]
▲ 한덕승 기획편집위원     ©성남투데이
그 날, 20대 중반의 청춘은 대낮부터 새벽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잠자리에서 조차 ‘꽃병’을 던지는 꿈을 꿨다. 거의 한 달 동안 미친 듯이 외쳤다. “독재타도! 직선쟁취!” 대중의 거대한 물결은 견고한 바리케이트를 일시적으로 무너뜨렸다. ‘열정의 시대’였다.

우여곡절 끝에, 민중의 피와 땀의 대가로 민주화투쟁의 주역들은 청와대로, 여의도로 입성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섰고 사람들은 세상이 나아질 줄 알았다. 청와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감격에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민중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질적으로 나빠졌다.”(최장집 교수). 시장만능주의(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일상에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활도 시장만능주의에 지배당했다. 기대가 컸는가! 냉소가 만연하고 정치 무관심이 팽배했다. 대중의 실망은 현 정부를 탄생시켰고, MB정부의 현 주소는 ‘두 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이념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MB정부 들어 후퇴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서구와 같은 복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야권이 힘을 합쳐 빼앗긴 정치권력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고. “5·18정신과 6·10 정신을 오늘날 계승하는 것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범야권이 승리하는 길 뿐.”이라고.

이 말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알맹이가 빠진 것 같다. 과연 민주주의가 그런 것일까. 정치권력의 획득과 정치권력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일까. 만약 그렇다면 문제는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는 진정한 대표를 선출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대의민주주의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런데 왜 ‘민주정부’하에서도 민중의 삶은 바뀌지 않았을까. 민주화세력 역시 진정한 대표가 아니라서. 그럼 진정한 대표는 누구일까. 국민들은 아직도 진정한 대표를 선택할 수 있는 혜안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언젠가는 그들이 나타난다는 말인가. 나는 ‘그놈이 그 놈’이라는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 민주주의의 핵심은 진정한 대표를 뽑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는 말이다.

‘직선제 쟁취’ 구호가 말해 주듯이 80년대 민주화 투쟁은 참다운 대표를 뽑는 운동이었다. 내 손으로 대통령을 선출했고, 민주노조와 민주적 총학생회를 만드는 성과를 냈다.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참다운 언론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열정이 왜 식었을까. 대표가 대표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일까. 이는 일면의 진실이다. 더 큰 문제는 대표가 제 역할을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배제 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데 있다. 대의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다는 말이다. 90년대를 지나면서, 특히 IMF이후 수많은 대중들은 자신의 이익과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을 갖지 못했다. 제도권 정당들은 물론이요, 시민운동단체들도 중산층의 요구를 대변하는데 그쳤다.

‘처음부터 배제당하는 사람들’ ‘대표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네티즌, 청소년, 성소수자, 장애인, 철거민 등이다. 이들이 21세기 들어 한국의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다. 80년대와는 다른 새로운 주체가 형성된 것이다. 이들은 그 누구에게도 지도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이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았다. 이들이 오늘 한국의 민주주의를 새롭게 만드는 핵심이다.

‘대표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것을 집권자들은 불온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민주정부’하에서도 수많은 민중의 죽음이 있었다. 이는 민주화운동의 주역들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제대로 고민하지 못한 당연한 결과다.

한때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다고 영원한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운동 당시의 이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고 영원한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민주주의적 요구를 보지 못할 때, 민주주의란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에 직면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한때의 민주투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하고 다시 시작할 때, 생동하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민중(대중)의 힘’이다. 민중의 힘은 투표일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에 그쳐서도 안 되고, 대의민주주의 틀 안에 가두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는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정치권력의 유혹(성남시의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입장도 이에 해당될 터)에 넘어가 복종하고 지배당하는 삶을 거부하고, 당당한 주인으로서의 능력을 키우는 모든 행동 속에서 꽃 필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 ‘행복한 삶, 주인으로서의 삶’은 그 누가 대신할 수 없다. 하물며 부모도 자식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는데 그 누가 나의 삶을 디자인한다는 말인가.

*덧붙이는 글; 복지사회의 문제도 민중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완전한 복지국가가 국민들에 대한 완벽한 통제로 전변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 4·11총선, 투표참여가 세상의 변화를 결정한다!
  • 복잡할 것 없다, 살아있는 권력을 심판하자!
  • 국회의원 후보들! 문제는 ‘스펙’이 아니라 ‘진정성’
  • 민선5기 성남시 ‘주민참여예산제’ 도입 의지는 있는가?
  • 성남의 달동네 ‘은행동 아이들’
  • 멀기만 한 공연, 그리고 초대권
  •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은 통합할 것인가?
  • ‘안철수 열풍’과 성남의 변화
  • ‘크레인 위에서 태어난 사람!’ 당신이 우리입니다
  • 성남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 촛불이 진화하고 있다
  • 6·10에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 유능한 이재명 시장, 문제가 뭐지?
  • 많이 본 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