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의 ‘이중삼중의 종교생활’이 성남투데이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를 다시 보도한 <민중의 소리>는 ‘다중 종교생활 논란’으로 말해 다중인격자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최근 그의 괴이한 종교생활이 지인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화제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술자리를 같이 한 지인들은 그를 아는 사람들.
각자의 생각들이 오간 끝에 결론이 이루어졌다. “그렇게까지 해서 국회의원 한다고 뭔 의미가 있겠냐”는 것. 어떤 정당화의 시도도 무너뜨릴 만큼 지인들의 충격이 워낙 컸던 탓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라는 메시지가 실려 있다는 점에서다. 모두들 씁쓰름했다. 상황 정리에 동물적 감각을 가진 한 지인이 술맛 당긴다며 내뱉었다. “무당 찾아 굿도 하라고 그래!” 모두들 파안대소했다.
한국의 종교 상황은 ‘종교천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만하면 굳이 저 세상(실재계)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현상계)이 그래도 참고 견디며 그럭저럭 살만한 곳으로 다가와야 한다. 종교에서 저 세상은 항상 이 세상에 대한 의지, 명령을 담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 세상이 이 세상의 문제인 이유다. 그러나 이 세상의 현실은 점점 더 반대로 치닫는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주변에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천국이라는 외양의 실상이지 싶다. 종교의 위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역사의 흐름상 사실 종교는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는 길을 밟아 왔다. 단일한 규칙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해체와 타자와 소통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종교가 뿌리내린 지반. 여기에 과학의 영향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날의 종교는 ‘개인의 영역’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앤더슨은 보편종교의 공적을 “우주 안에서의 인간, 종으로서의 인간, 그리고 삶의 우연성에 관계해 온 것에 있다”며 보편종교의 존속 이유를 “병, 불구, 슬픔, 늙음, 죽음이라는 인간이 가진 고통의 압도적 무게에 상상력으로 가득한 응답을 해왔다”는 데서 찾는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신앙’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니체는 “우리가 신을 죽였다”고 말했다(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 선언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간 니체의 통찰이 있었다. 만물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어떤 초월적 실체나 절대적 가치판단의 붕괴가 그것이다. 그의 유명한 위버멘쉬 사상에 담긴 것이기도 하다. 신앙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니체처럼 선명하지는 않더라도 니체와 유사한 사유의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철학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반종교적이거나 최소한 비종교적인 것이다. 니체의 선언이나 신앙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신앙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죽음 곧 자기 가치의 주인은 바로 자기라는 자각일 것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도 있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사실이며 현실이다. 일부의 신앙인들이 신앙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 중생이라고 간주하는 것과는 달리 일부의 신앙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의 자기 극복의 길을 걷는다. 이들은 오히려 신앙하는 사람들의 타락과 그 타락의 다양한 현상을 직시한다. 신상진 의원의 이중삼중의 종교생활은 정확히 이에 해당된다. 그의 문제는 정치문제이면서 정치 이전의 문제이고 후자가 더 눈여겨 봐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인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신상진 의원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을 때 선거 목적이라는 정치적 이유는 전혀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한 지인이 “무당 찾아 굿도 하라고 그래!”라고 내뱉었을 때, 모두들 시원하게 느꼈던 것은 ‘건강함’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건강함이란 병의 반대가 아닌가. 지인들 다수는 신앙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총선에서 투표하지 않았다. 신앙하지 않는 사람들은 종종 ‘반시대적’이다. <저작권자 ⓒ iwa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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