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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이 있냐고 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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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이 있냐고 물으면

〔벼리의 돋보기〕마음이라는 중병

벼리 | 기사입력 2008/10/28 [22:58]

진정성이 있냐고 물으면

〔벼리의 돋보기〕마음이라는 중병

벼리 | 입력 : 2008/10/28 [22:58]
왜 마음을 앞장세울까

성남시립병원 설립부지 변경문제가 성남지역사회에서 거론되자마자 이를 부정적으로 본 사람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토해낸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령 ‘마음’, ‘진정성’, ‘진심’, ‘속내’, ‘신뢰’, ‘불신’, ‘양심’, ‘증오’, ‘음모’와 같은 말들을 토해냈습니다. 관계상 서로 무관하지 않은 말들이라 하나의 계열로 묶을 수 있습니다. 요컨대 ‘마음’에 관한 말들이겠습니다. 마음에 관한 말들은 다음과 같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가령, 한나라당 이대엽 시장을 믿을 수 없다, 성남 뜨면 그만인 부시장을 믿을 수 없다, 한나라당 시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 시립병원 설립부지 변경 특별결의안을 주도한 시의원들의 진정성 또는 속내가 뭐냐, 벼리는 사람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벼리는 이대엽 시장을 증오한다. 사람이 다급해지면 양심을 왜곡시킨다더니 벼리가 그렇다, 마음을 다해 시립병원을 흔들지 말 것을 호소한다, 시집행부와 민주당 간에 정치적 거래가 있다, 정치적 음모다 등등.

이번 시립병원 설립부지 변경문제라는 사태의 추이를 직시해온 저로서는 하나의 계열을 이루는 이런 말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접하고 무척 당황했습니다. 일반적인 이성적 태도와도 물론 동떨어진 것이지만 오히려 거의 종교적 분위기에 가까운 어떤 도착(倒錯)증세를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것이 제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말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의 실마리를 도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이쿠에 마음은 없다

일본에 근세에 시발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통문학으로 하이쿠라는 게 있습니다. 다섯 글자, 일곱 글자, 다섯 글자 즉 모두 열일곱 글자로 이루어진, 지구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알려진 일본의 시죠. 일본문학의 정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가장 일본적이라는 것이죠. 하이쿠는 오늘날 일본에서 문화의 레벨에서도 전통을 잇고 되살린 좋은 사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근세 하이쿠 시인들이 답사하면서 하이쿠를 읊었던 여행코스는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코스로 자리잡았습니다.

저는 하이쿠를 좋아합니다. 시의 본질이랄까, 그런 것을 강렬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 느낌을 보편적인 어떤 것으로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따금 읽다가 고개를 쳐들고는 그 좋은 느낌에 한참 젖어들기도 하죠. 팔순을 훌쩍 넘기신 어머님을 찾아뵈올 때면 당신께  마땅할 그런 하이쿠를 한두 구쯤 읽어드리기도 하죠. 감흥을 일으키신 어머님의 환한 얼굴이란! 잡념이 많아 보이거나 좋은 정념들을 가졌으면 하는 제 이웃들에게 하이쿠 열심히 감상해보라고 권유할 때도 가끔은 있죠.

일본 것 좋아한다고 나무랄 분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문학에 내셔널리즘이랄까 그런 척도가 개입되어선 안 됩니다. 그런 이데올로기적 태도를 넘어서서 이성 감성 양면에서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태도야말로 오히려 문학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사상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다만 사상이 있는 것일 뿐 한국사상 따로 외국사상 따로는 아닐 겁니다. 이런 태도에서 하이쿠를 만났기 때문에 선입관 없이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롤랑 바르트는 하이쿠를 “선(禪)의 문학적 지류”(기호의 제국)로 봅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하이쿠는 ‘(선의) 깨달음’이나 어떤 ‘심오한 뜻(奧義)’이 의미 내용으로 읽혀져야 합니다. 그러나 롤랑 바르트의 이런 하이쿠관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읽은 하이쿠는 그런 거창한 의미내용과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하이쿠의 시조로 알려진 마쯔오 바쇼라는 하이쿠 시인이 쓴 구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해묵은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퐁당!


단지 보고 들은 대상만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봄날 소리로 귀결되는 한 폭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읊었을 뿐입니다. 여기에 그 어떤 주관 즉 마음이란 것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이미 대상에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린 그런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결국 표현된 언어가 전부, 즉 열일곱 글자가 전부입니다. 다른 어떤 의미 내용이 이 시 안에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런 이해에 따르면 롤랑 바르트의 하이쿠에 대한 이해는 언어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의미내용에서 출발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긴 이방인에 불과한 롤랑 바르트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바쇼 이후 이 구를 롤랑 바르트처럼 의미내용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지배적으로 나타났던 적이 있습니다. 바쇼를 두보와 같은 시성(詩聖)으로 추켜세우면서 세속적인 이득을 챙기려는 무리들이 줄을 이어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반발한 “퐁당 소리 날 때마다 멈칫 서는 바쇼옹”이라는 패러디가 등장하기도 했죠.

마음이라는 중병

마음이 사라지는 지점에서야 대상이 환히 드러난다는 취지로 하이쿠를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이쿠는 단지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읊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하이쿠가 선의 깨달음이나 심오한 뜻으로 읽혀지는 즉 의미내용으로 읽혀지는 폐단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이는 제대로 읽지 않은 것입니다. 눈앞에 생생한 열일곱 글자를 전혀 대상으로 삼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마음부터 상정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주체로 삼은 것입니다. 이는 마음을 몸으로부터 떼어내는 발상에 입각해 있습니다. 스피노자식 어법으로 마음의 대상인 몸을 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식물인간처럼 몸은 있으나 마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마음은 있으나 몸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마음을 주체로 삼는 한, 마음 밖 대상은 대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 밖 대상이 아니라 마음 안 대상, 즉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도착(倒錯)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번개를 그 섬광과 분리하여 섬광을 번개라고 불리우는 주체의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활동의 배후에는 어떤 존재도 없다. 주체란 활동에 덧붙여진 상상의 허구일 뿐이다”(도덕의 계보). 니체의 말입니다. 니체가 말하려는 것은 ‘활동의 활동’을 ‘주체의 활동’으로 말하거나 생각함으로써 주체와 활동을 분리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주체가 마음입니다. 그 결과는 도착입니다. 즉 마음이 처음부터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마음에 의해서 대상이 파악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도착되어 나타난 마음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뻔합니다. ‘무한’입니다. 마음이 몸이나 그 어떤 대상에도 규제받지 않고 무한대로 치닫듯 움직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몸이 느끼고 명령하는 것을 위반할 뿐 아니라 마음 밖 대상으로부터 인식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제 멋대로 움직여 그 활동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 ‘진정성’, ‘진심’, ‘속내’, ‘신뢰’, ‘불신’, ‘양심’, ‘증오’, ‘음모’와 같은 말들은 이렇게 해서 탄생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말들을 일삼는 사람들은 대상을, 일을, 사태를, 제반 관계들을 있는 그대로 읽어 들이지 못합니다. 즉 그들은 마음 밖 자연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마음 가는 대로’ 자연을 볼 뿐입니다. 자연이 무한입니다. 마음은 무한일 수 없습니다. 마음은 무한한 자연에 비하면 한 터럭의 먼지와 같습니다. 그 한 터럭의 먼지를 붙들고 마음, 마음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관념론자’가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명백한 도착입니다. 그들은 마음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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