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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종의 반란 또는 삑사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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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종의 반란 또는 삑사리의 비밀

〔벼리의 돋보기〕지방자치의 위기, 대의정치의 위기

벼리 | 기사입력 2008/07/06 [23:43]

박권종의 반란 또는 삑사리의 비밀

〔벼리의 돋보기〕지방자치의 위기, 대의정치의 위기

벼리 | 입력 : 2008/07/06 [23:43]
3일 한겨레신문이 한나라당 소속 기초의원들이 자행한 ‘짜고 치는 의장선거’를 보도했다. 성남시의회, 안양시의회의 사례를 통해서다. 한겨레는 기사에서 한나라당 시의원들이 “미리 정해둔 의장감을 당선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무리수란 미리 정해둔 의장감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의장에 선출된 시의원을 제명시키기로 결정했거나(안양시의회 사례) 재투표를 통해 새 의장을 선출한 것(성남시의회의 사례)을 말한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제명이나 재투표가 일종의 ‘반란’ 진압이거나 ‘삑사리’ 바로잡기인 셈이다. 그러니 한겨레가 인용 보도한 성남시 공무원의 말대로 의장선거는 ‘짜고 치는 화투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겨레의 보도내용은 보도내용 이상의 ‘심각성’을 안고 있다. 의장선거가 공산당선거와 똑같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결코 비유도, 과장도 아니다. 한겨레의 보도내용은 의장선거가 시의회 다수당인 한나라당 시의원들로 인해 요식절차에 불과한 선거 곧 ‘하나마나한 선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의회 의장은 가령 의원내각제라면 시장 아닌가. 이 같은 짜고 치는 의장선거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공산당은 반드시 미리 정해둔 사람을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공산당의 지배는 이런 하나마나한 선거를 통해 존속된다. 그것은 선거가 아니다. 그래서 심각하다고 보는 것이다.

▲ 제5대 성남시의회 후반기 원구성을 위해 시의회 자료실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    ©성남투데이

의장선거를 공산당선거로 전락시킨 한나라당 시의원들은 성남과 성남시민을 전국에 개망신시키는 꼴뚜기들일 뿐이다. 이유는 한 가지. 권력욕을 채우는 데 급급해서다. 여기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앞장 선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 한나라당 국회의원·시의원들은 무능과 시장권력 사사화로 성남시민과 성남을 전국에 개망신시키고 있는 한나라당 이대엽 시장과 도찐개찐이다. 본회의 중 정용한 의원이 자행한 폭력이 꼴뚜기들의 행각에서 발생한 자체 모순의 추악한 단면임은 물론이다.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은 채 정 의원의 폭력을 덮는 결정을 통해 한 사람의 폭력을 시의원 전체의 오물로 비화시킨 윤리특위의 결정 역시 꼴뚜기 행각일 뿐이다.

한나라당 시의원들의 짜고 치는 의장선거는 공산당 선거와 똑같다는 점에서 완벽한 탄핵감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들에 대한 탄핵은 요원해 보인다. 왜 일까? 그것은 지방권력이 한나라당 일당독재로 전락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체자치가 시민자치를 기초로 운영되고 있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설령 다음 지방선거에서 잘 해보겠다는 야당들이 승리하고 시민들의 자치역량이 높아져 지방선거 참여나 일상적인 지방자치 참여도가 크게 높아진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제2, 제3의 꼴뚜기들은 어디서든 등장하기 마련이며, 꼴뚜기들은 줄어들 수는 있어도 획기적으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일당독재가 무너진다고 해서, 시민들의 자치역량이 강해진다고 해서 권력욕을 채우려는 인간성이 바뀐다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 더구나 줄곧 ‘지방의원들의 수준과 자질’을 문제 삼는 공론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지방의원들은 보통의 시민들과는 다르다. 입후보 당시 그들이 시민들 앞에 머슴임을 자인하며 애써 주장하는 내용과는 달리 그들은 시민들은 대의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도, 그런 훈련도, 그런 검증도 받지 않는다. 실은 그들 중 상당수는 대개 돈이 있거나, 누군가에 줄서기를 한 자에 불과할  뿐이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보통의 시민들은 대의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 단지 이들에게 한 표를 던질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민자치권, 나아가 헌법 제1조의 표명과는 달리 주권이 처한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대의정치(representation)를 문제 삼아야 한다. 대의정치의 기반은 보통선거라는 명목 아래 치러지는 무기명 투표(secret ballot)에 있다. 사실 재투표를 통해 ‘짜고 치는 의장선거’를 관철한 결과인 한나라당 김대진의원의 의장 선출도, 첫 투표에서 예기치 못한 한나라당 박권종의원의 의장 선출도 그 비밀은 무기명 투표에 있다. 무기명 투표는 말 그대로 누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밀투표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밀투표에 원리적으로 대의하는 자와 대의되는 자를 분리한 대의정치를 성립케 하는 근거가 있고 동시에 대의하는 자가 대의되는 자를 대의하지 않는 근거가 숨어 있다.

무기명 투표의 폐단은 대의정치 현장에서도 입증된다. 가령 시의회 상임위에서 이루어지는 표 대결이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 잘 하나 못하나, 제대로 하나 대충 하나를 따져보며 상임위의 토론을 지켜보게 되면 의미 있는 토론이 이루어진 경우(실은 이런 토론은 드물다)조차 기자들을 내몰고 비공개로 진행되는 비밀투표로 마무리 짓기 일쑤다. 그러나 투표는 “그 이념에 따르면 지속적이고 공개적으로 진행된 찬반토론의 종결행위”(하버마스)이다. 이 점에서는 토론을 매듭짓는다는 점에서 상임위에서 토론 후에는 시의원들이 당당하게 거수하거나 기명하는 투표 곧 공개투표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상임위에서 시의원들은 자주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주로 토론의 흐름상 자연스럽게 귀결될 것이 분명한 어떤 결론을 일거에 뒤집기 위해서다. 꿀 먹은 벙어리, 똥과 된장의 차이를 모르는 무분별, 기자 면전에서와 비밀투표 때가 판이한 입장 번복, 윗선(?)의 지시, 공무원과의 결탁, 사적 이해관계의 얽힘 등이 뒤집기의 요인들로 작용한다. 경험적으로는 한나라당 시의원들이 비밀투표를 즐기는 편이다. 이들은 다수라는 척도 같지 않은 척도를 빽으로 삼아 토론의 흐름이나 귀결을 부정하는 ‘표 대결’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본회의장에서 주로 이용하는 전자투표 역시 이런 비밀투표에 다름 아니다.

무기명 투표가 되풀이 되는 한 대의정치는 위기가 늘 잠재적이다. 노골적인 ‘너희들만의 정치’로 그 모습을 현실화할 때만 위기인 것은 아니다. 물론 대의에 충실하려는 의원들도 보이며, 이들이 대의에 충실한 정당, 의회를 위해 고심하고 노력하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이런 의원들에 대한 기대는 해볼 만한 것이며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제한적일지라도 대의정치 안으로부터 올 수 있는 변화의 싹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금의 투표방식으로는 권력욕을 채우려는 인간성의 본질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고, 사실상 보통의 시민이 대의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대의정치의 위기를 해소하기 어렵다.

지난 번 하반기 의장 선출에 앞서 의장선거에서 교황식 선출방식은 아이들 반장선거보다 못하다고 비판하며 ‘연기투표’와 ‘제비뽑기’를 제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시의원들이 제도화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대립이나 투쟁을 유발하지 않고 단지 투표방식만을 바꾸는 사유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제안에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이나 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했다. 통합민주당조차 개선을 모색해보자며 교황식 선출방식 보이콧 운운하다가 순식간에 꼬리를 내렸다. 앞뒤가 달랐다. 모두 알량하게도 대의정치 안에서 보장된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소탐대실일 뿐이다.

기억해두시라. 이번에 성남과 성남시민을 전국에 개망신시킨 성남시의회의 의장선거에서 보듯 어떤 대의정치는 공산당선거로도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대의정치 안의 기득권에 연연하는 소탐대실이 결국 대의정치 자체를 일종의 정치감옥으로 전변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언젠가는 이런 합법적이고 평화적이며 제도적인 작은 변화의 길마저 외면하는 대의정치의 반시민성 앞에서 공유되는 시민적 좌절이 전면화될 때 거대한 시민저항을 불러들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이명박 정부의 독재적인 의지와 보통 시민들의 일반의지의 괴리에서 거대한 촛불의 바다가 일렁이고 있음은 얼마나 시사적인가.

‘촛불의 바다는 형태인가, 흐름인가. 이 땅에선 지금 경이로운 역사가 비밀투표에 오염되지 않은 새로운 촛불인류와 함께 출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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