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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의 한계를 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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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의 한계를 씹는다

〔벼리의 돋보기〕‘그분’에게 드리는 답글

벼리 | 기사입력 2008/10/30 [21:27]

성남의 한계를 씹는다

〔벼리의 돋보기〕‘그분’에게 드리는 답글

벼리 | 입력 : 2008/10/30 [21:27]
성남투데이에 온 그분의 메일

<무대보다 무대 옆 대기실이 흥미롭다>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상황론과 원리론 같은 어려운 말은 모르겠지만, 글 읽고 듣는 생각을 몇 글자 적고자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벼리 기자님의 생각에 일부는 동의하지만, 핵심적으로 주장하시는 내용에 있어서는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는 왜 묵묵부답일까?’라는 제목으로 질의하신 세 가지 질문을 보고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립병원 설립과 민주노동당과의 관계는 뭘까요? 성남에서 시민사회단체, 정당을 포괄해 그 동안 가장 열심히 시립병원 설립운동에 앞장섰었던 단체나 정당을 뽑으라면 보건노조 인하지부나 민주노동당을 뽑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분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 설립투쟁 과정에서 다수의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연행되고, 구속되기도 했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성남시의 어떤 정당보다 열심히 시립병원 설립운동에 나섰고, 지금까지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단체 중 하나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민주당의원 3분이 제기한 시립병원 수정구청에 이전설립에 대해 2가지 단서 조건이 붙는다면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성남시청 부지가 시립병원 건립과 완공시기가 차이가 없고, 성남시가 2010년 이후 시장이 바뀌어도 반드시 설립한다는 조건하에 민주당의 주장대로 수백억 원이 절약된다면 이전에 적극 찬성하겠습니다. 물론 시립병원 병상규모도 변함이 없어야겠지요.

다만, 이 문제를 제기한 시기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벼리 기자님께서는 작년에 민주당에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셨는데, 당시 민주당이 얼마나 의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쟁점화 되지도 않았고, 공론화 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만약, 민주당이 좀 더 진정성 있게 이 문제를 제기하고, 추진했다며 이런 감정싸움이 벌어지지는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론화 시키고, 토론회도 열고, 문제점에 대해 파악해 보고... 이런 과정을 삭제하고, 바로 결의안 제출하고, 통과시키려고 하였으니….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았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일부 신흥동 주민들이 마치 시립병원이 혐오시설인냥 했다는 주장에 한 말씀 보태겠습니다. 혐오시설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시립병원운동본부에서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는 말씀에, 전 그 주장이 신흥동 전체 주민들의 생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꼭 수정구청 부지에 설립해야 한다면, 아마도 시나 시의원들보다 시립병원운동본부에서 나서서 설득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혐오시설이라는 지적에 대해 영안실 없는 최신식 병원 짓겠다는 하는 의원들이 더 웃기지 않나요? 우리나라 빅4라고 불리는 병원들 중에 영안실 없는 최신식 병원 있나요? 그런 생각을 갖고 시립병원 설립 이전을 주장하는 그 진정성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대충 정리하자면, 시립병원 문제의 핵심은 설립에 대한 의지라 생각됩니다. 시립병원 조례안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립병원이 설립될지 안 될지 믿을 수 없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시와 시의회, 모든 정당은 이제는 진정으로 시민들 입장에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벼리의 돋보기'를 읽고...)

드러나지 않은 것과 드러나는 것

어떤 분이 성남투데이에 보낸 메일입니다. 그분을 위해 그분이 쓰고 있는 아이디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메일의 내용은 크게 봐서 의문과 주장이 섞여 있지만 주장 쪽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메일이 아니라 의견달기 난을 통해 글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케뮤니케이션에서 드러나는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 사이에는 효과 면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제 글)와 그분(그분의 메일)을 놓고 말한다면 저는 무한정 노출되어 있음에 반해 그분은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분은 ‘발언의 안정성’(?)을 확보한 셈입니다. 저는 온갖 비난을 다 받을 수 있지만 그분은 그럴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고 있는 것이죠(^^). 사유의 세계도 그렇지만, 담론에 있어서도 타자에게 드러나지 않으면 자기성의 회로에 빠지고 맙니다. 자기란 놈이 자아의 포로가 되어 결코 자기와는 다른 타자를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에서죠. 모든 종교적 도착, 관념론적 태도가 바로 이 자기성의 회로에 기생하지요.

더구나 그분이 메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보호 받아야 할 사생활과 같은, 그런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라 오히려 드러내서 다루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그 누구도 특권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제 태도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분의 아이디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분의 의문이랄까 주장에 답도 하고 또 공개적으로 다루기로 작정했습니다. 양해를 기대하겠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 번역하는 것

그분은 “상황론과 원리론 같은 어려운 말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솔직한 게 아니라 게으른 것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상대의 무시입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근거없이는 그 누구도 상대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과연 어려운 말일까요? 저는 <상황론은 위험하다>는 토픽 아래 그것들에 대해서 이론과 실제를 충분히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그것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습니다. 게으른 경우라면 다시 읽기를 권유할 수밖에요. 근수가 좀 나가는 논제라서요.

그분은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는 왜 묵묵부답일까?>라는 토픽 아래 되풀이한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에 대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합니다. 이는 숨겨진 어떤 의도가 있고 그 의도가 세 가지 질문으로 나타났다는 문맥에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조언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소통이나 담론에서 아주 그릇된 태도라고. 이는 사상적으로 주체와 주체의 작용을 분리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에 대해서 저는 단호합니다. 이미 쓴 바 있습니다.

“사람들이 번개를 그 섬광과 분리하여 섬광을 번개라고 불리우는 주체의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활동의 배후에는 어떤 존재도 없다. 주체란 활동에 덧붙여진 상상의 허구일 뿐이다”(니체, 도덕의 계보). 여기서 니체가 말하려는 것은 ‘활동의 활동’을 ‘주체의 활동’으로 말하거나 생각함으로써 주체와 활동을 분리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주체가 마음입니다. 그 결과는 도착입니다. 즉 마음이 처음부터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마음에 의해서 대상이 파악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진정성이 있냐고 물으면>)

말해진 것이 전부입니다. 달리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닙니다. 본질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심층(의미)이란 게 있다면 그것은 표층(표현)을 통해서만 나타나며 표층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체와 주체의 작용을 분리하는 관점은 달리 재현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재현이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다시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번역하는 것’ 또는 ‘가공하는 것’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비틀어 보는 것입니다. 이는 타자를 거부하는 독아론적 태도에 속합니다.

실제 그분은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와 민주노동당의 ‘특별한 관계’(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에서 민주노동당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를 언급함으로써 숨겨져 있다고 보는 제 의도가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와 민주노동당을 떼어놓으려는 것에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는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찍은 것입니다.

제가 이미 분명히 밝혔습니다.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에 드린 세 가지 질문은 원리론에 입각한 것이라고. 그 원리들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어떤 관계입니까?>라는 글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앞서 근수가 좀 나가는 논제라는 지적도 했지만, 좀 부언하면 그 원리들은 누구든 사회운동이나 그 사회운동을 이끌어가는 운동체들을 이해하고 또 참여하는 데서 매우 의미 있는 것들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원리론을 주장하는 것은 곧 원칙을 따지는 것입니다. 가령 민주노동당이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에서 열심히 활동한다는 것과 이 원칙을 따지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만약 그분이 민주노동당이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단체이니까 그것을 알아줘야 한다는 취지라고 주장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인식의 차원과 제 인식의 차원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경험론적 수준의 인식과 원칙이나 원리에 입각해 보는 이론적 인식의 차이와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프로파간다와 민주주의

다음으로 그분은 윤창근, 최만식, 지관근 의원이 제기한 시립병원 설립부지 변경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단, 조건을 달았지요. “성남시청 부지 건립과 완공시기가 차이가 없고, 성남시가 2010년 이후 시장이 바뀌어도 반드시 설립한다는 조건 하에 민주당의 주장대로 수백억 원이 절약된다면, 물론 시립병원 병상규모도 변함이 없어야겠지요.” 이 단서의 내용들은 물론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저는 이 단서의 내용들을 따질 필요는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이 단서의 내용들을 저는 ‘보충’을 통해 이해한다고 밝혀둡니다(따라서 제 태도는 보충이지 부정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둡니다). 시립병원 건립·완공에 방점을 찍는가 아니면 시립병원 개원에 방점을 찍는가, 시장권력 교체 여부라는 정치적 문제가 과연 시립병원 설립이라는 지역사회의 합의를 위협할 만한 것인가 또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조건인가, 시립병원 설립재원 마련 문제와 관련된 예산 절감 주장이 과연 거짓말에 불과한 것인가, 당초 예정된 병상 규모는 과연 줄어드는가.

오히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시립병원 설립부지 변경문제가 제기되자마자 이런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시작부터 프로파간다에 의해 사실상 묻혀 버리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공론장을 통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거를 것은 거르고 분명히 할 것은 분명히 함으로써 논점을 드러내고 논점을 중심으로 실제와의 부합 여부를 따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여기에 제가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은 주지하는 대로입니다.

프로파간다는 반대합니다. 이론적인 레벨에서 그것은 이른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어떤 인간이 왕인 것은 다른 인간이 신하로서 그를 상대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천박한 변증법에 대해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합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갖는 전염시키는 힘에 의해 승리한다”(들뢰즈)는 비판은 적절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프로파간다는 차이나 고유성을 짓밟는 전염병과 같은 것이죠.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행위입니다. 일부에서는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와 민주노동당을 무시한 처사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런 태도 역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헤게모니를 따진다는 뉘앙스가 강합니다. 누가 제기하든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든 민주노동당이든 제기된 것에 대해 따져보고 따져본 뒤에 그 함의가 드러나면 그에 맞게 대응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이 책임지려는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시작부터 정당과 시민단체라는 구분된 차이조차 무너뜨려가며 프로파간다를 자행하고 말았습니다. 이 프로파간다를 통해 대표적인 공론장이자 시립병원 설립의 키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의회와 시 집행부로 구성된 단체자치라는 공식적인 제도조차 부정하고 말았습니다. 이 프로파간다에 앞장 선 민주노동당 김현경 의원의 행태는 가령 러시아의 혁명 과정에서 볼세비키들의 의회의 도구화 이른바 ‘의회전술’과 꽤나 닮아 있습니다.

이 프로파간다가 어떤 왜곡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는지 실례를 들어 제가 밝힌 바 있습니다. “가령 병원 규모에 대해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는 500병상이 200병상으로 전락할 게 분명하다고 단정적으로 반박합니다. 시립병원 설립부지 변경 특별결의안은 기존 병상 규모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근거입니까? 왜 이런 주장을 했습니까? 작태 운운하면서 말입니다.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가 공개적으로 밝히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사회적 책임이 실려 있지 않습니까?”(<민주노동당과 어떤 관계입니까?>)

그래서 주장했습니다. ‘시립병원 설립부지 변경 특별결의안’을 읽어보고 따져보라고 말입니다. 그 특별결의안에 시립병원 설립 자체를 흔드는 그런 주장이 나오는지, 병상 수를 줄인다는 주장이 나오는지, 빨리 짓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지 제대로 읽고 제대로 따져보고 대응해도 늦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거리의 프로파간다는 계속되었고 그런 주장을 하는 제게 돌아오는 것은 ‘민주당 2중대’, ‘민주당 나팔수’더군요(^^). 사회운동이든 정치든 그 영역에서 프로파간다를 일삼는 자들의 상투적 수법이 실은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놈 없다는 식의 ‘낙인찍기’ 아니겠습니까. 이런 일은 왜 일어났을까요? 이 의문에 답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민주노동당과 어떤 관계입니까?>, <무대보다 무대 옆 대기실이 흥미롭다>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시 반복하면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나 민주노동당은 부지변경문제를 접근하는 데서 ‘이성의 공공적 사용’이라는 제 원칙과는 완벽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등장했고 그들은 시민단체라는 조직으로서 또는 당이라는 당파로 등장했던 것입니다. 그런 태도에 대해 저는 분명히 ‘이성의 사적 사용’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들에겐 개인도 없었고 시민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도 없었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 동의하지만

다음으로 그분은 부지변경문제를 제기한 시기가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근거로서 “여론화 시키고, 토론회도 열고, 문제점에 대해 파악해 보고. 이런 과정을 삭제하고, 바로 결의안 제출하고, 통과시키려고 하였으니…” 맞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지적한 대로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았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정확히 말하면 시기의 문제라기보다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민주당은 부족했습니다. 아니 민주당이라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한 의원들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들은 정략적인 셈법에 따라 민주당이란 이름으로 도매금으로 넘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론으로 제출된 게 아니었고 심지어 결의안 부결 당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드러낸 민주당 의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절차적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은 바깥에서 볼 때만 그렇습니다. 바깥에서 볼 때는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고 또 그렇게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안에서 볼 때 또는 안팎으로 볼 때 부지변경문제는 또 다른 문제인 시급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점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지점인데 두 가지를 밝혀 둡니다.

첫째, 바깥에서는 시립병원 설립 추진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행정절차를 잘 모릅니다. 부지변경을 시도하는 측에 서게 되면 이 시점이 아니면 이후 거쳐야 하는 도시계획시설 변경, 입찰 및 공사계약, 예산반영 등 일련의 행정절차가 미뤄질 수밖에 없어 결국 시립병원 설립을 늦추게 되는 중대한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바깥에 있는 분들은 잘 모르지만 이런 행정절차 상에서 비롯되는 시급성의 문제는 집행의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 실은 이 문제의 핵심은 부지변경문제가 아닙니다. 시립병원 설립부지로 이미 결정된 대로 현 시청사부지를 고집할 경우 초래되는 시민회관 철거 및 대안 마련문제, 나아가 수정구보건소 이전문제, 향후 제기되는 수정구청 입지 선정문제 등과 같은 구시가지 공공시설의 재배치라는 문제에 있습니다. 이런 재배치를 통해 새로운 부지 마련이라든가 새로운 시설을 건립하지 않음으로서 부지가 남는다든가 건립비가 새로 들어가지 않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예산 절감 효과를 얻게 되는 것도 분명합니다.

둘째 지점은 새로운 시립병원 설립을 포함해 공공시설 재배치를 중심으로 한 도시의 삶 내지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도시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흥할 수도 있고 쇠퇴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문제는  시청 이전 및 호화 시청사 건립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더 이상 구시가지가 망가지는 것을 그대로는 볼 수 없다는 위기감, 절박감이 배어 있다고 본 것입니다.

문제는 달을 가리켰는데 죄다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본 셈입니다. 이 점이 지금도 안타깝습니다. 이는 시야의 폭의 문제입니다. 부지변경문제가 제출되었을 때 저는 숲의 관점에서 섰지 나무의 관점에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줄곧 비판적 태도를 잃지 않는, 관계공무원들을 포함한 다수의 공무원들이 이런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한 제 태도에 공감하고 있었다는 것을 저는 충분히 확인했습니다.

반대로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나 민주노동당이 이런 시야를 확보하고 있는 수준에는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다 폭넓은 시야에서 문제를 바라보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요컨대 그들은 대단히 정치적이었을 뿐입니다. 이 점과 관련해 이번 결의안 부결에 나선 나무의 관점에 섰던 사람들, 그들은 앞으로 이 숲과 관련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그 책임을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아마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실례를 들겠습니다. 우선 당장 시민회관 철거 및 대안 마련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마땅한 부지도 없고 이에 소요되는 어머어마한 예산문제도 있습니다. 저는 뉴스를 보고 놀랐습니다. 소위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의 책임있는 어떤 관계자 분이 이 문제에 대해 문제를 다룰 각계각층으로 구성된 모임을 만들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시민회관 철거하고 새로 지을 땅이 당장 없다는 데 이 무슨 봉창 두들기는 소리입니까! 여기저기서 지금 꽤나 성토 중입니다.

덧붙이면 이 절차적 민주주의의 문제를 문제를 제기한 측에서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이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민주노동당 측과 민주당 관계자 사이에 사전 접촉이 있었고, 접촉한 민주당 관계자가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을 기다리는, 안에서 이루어진 작지만 의미 있어 보이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없던 일로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제가 공개적으로 평할 부분은 아닙니다.

한 가지 비유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적대국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국민의 동의를 얻는 절차를 받아야 할까요? 이것은 딜레마입니다. 이율배반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딜레마는 언제든지 제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특히 관념이 아닌 일의 관점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말이죠. 이런 일의 관점에서는 시의회는 정쟁의 장이 아닌 정책을 따지는 장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관념론적 태도로는 안 된다

그분은 이른바 내 집 앞에 안 된다는 님비와 관련된 문제도 지적하셨습니다. 이 같은 님비문제는 님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이 님비가 발생하게 된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시립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말입니다. 이 부정적인 인식의 문제는 시립병원 설립이라는 공론장에서의 합의와는 무관하게 앞으로 공론장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그분 주장대로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가 앞장서고 시, 시의원들이 함께 해주어야 할 숙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님비에 편승해 시립병원 설립 흔들기에 나선 정용한 의원을 강 건너 불보듯 지나가고 항의하는 신흥주공 일부 주민들 앞에서 무기력하게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던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수익구조 창출을 이유로 장례식장을 빼고 다른 것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고 나온 시의원들도 반성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엔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라든가 쏟아지는 매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시의원의 경우, 그렇다고 그분이 주장하는 것처럼 ‘진정성’ 운운할 수는 없습니다. 윤챵근 의원의 예를 들면 그는 정용한 의원과 같은 지역구이면서 그처럼 하지 않고 오히려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쏟아지는 지역구 주민들의 항의전화에 그가 당혹해하는 것을 의회에서도 몇 차례나 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따라서 문제를 진정성과 같은 관념론의 수준에서 바라봐선 안 됩니다. 내가 내 속도 모르는 데 어떻게 남의 속을 알겠습니까?

그분은 시립병원 문제의 핵심은 설립에 대한 의지라고 말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시립병원이 설립될지 안 될지 믿을 수 없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라고도 말합니다.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틀린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도, 현실의 문제도 아닙니다. 시립병원 설립은 이미 누가 하고 싶고 하고 싶지 않고 하는 차원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이는 가령 이대엽 시장이 지금도 시립병원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점을 의심해선 안 됩니다. 이미 지금까지 예정된 대로 행정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그 확실한 증거입니다. 부시장도 이번 논란의 와중에서 해당 상임위에서 이점을 의심해선 안 된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바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립병원 설립은 시의회가 민의를 수렴해 결정하고 이 결정에 따라 시 집행부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구해집니다. 즉 그것은 단체자치라는 공식적인 시스템에서 동의되고 이미 행해지는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시립병원 설립에 대한 의지 여부니 의심이니 하는 흉문이 퍼지게 된 것은 우선적으로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와 민주노동당에 책임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그들이 이런 불신의 분위기를 만든 당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이 문제를 바깥에서만 바라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립병원 설립이 이미 공식적인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가볍게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명색이 사회운동 하는 사람들이, 진보정당 표방하는 사람들이 이런 태도로 나타나는 것은 회의스러운 일입니다. 비정상일 것입니다. 이는 근거없는 관념론적 태도, 즉 비과학적인 태도가 아니고선 생각할 수 없는 사태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태도가 현실에선 정치성으로 출현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문제나 사태를 직시하지 않고 문제의 심층을 집착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따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저는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느낍니다.

비겁한 자들, 그리고 지역사회의 한계

그분이 지금까지 말한 것에 대해 총평이랄까, 그런 것을 말해보고 싶습니다. 아마 이미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분은 문제를 정치적인 태도에서만 파악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정치적인 존재라고 하면 제가 할 말은 없어집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룬 바와 같이 그분에게서는 정책적인 것, 공식적인 시스템과 그 운영에 대한 이해 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이 정치적인 것에 대해서 저는 이번 시립병원 설립부지 변경문제에 등장한 모든 정치인들, 시, 그리고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를 비판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들로부터 비겁하다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선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입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드린 질문들이 품고 있는 의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만 말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민주노동당,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 그의 도구로 전락한 한나라당 중원구 시의원들, 정용한 의원입니다. 여기서는 굳이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부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중립이란 방법으로 정치적이었습니다. 정책의 문제였음을 충분히 알고 있을 그가 전혀 정책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이 문제를 들고 나온 시의원들입니다. 그들의 지난 20일 기자회견 당시 “포기할 수도 있다”는 발언에서 저는 이 발언이 배수진은커녕 아차다 싶을 정도로 과연 이들이 자신들이 제출한 정책적인 문제를 끝까지 밀고나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의문의 관점에서만 그들은 비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성에 관한 문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능력 내지 능력의 실현에 관한 문제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능력이 부족했고, 보다 강화되는 그런 힘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힘에의 의지’(니체)가 퇴화되고 끝내는 꺾이고 만 것입니다. 능력의 수준이랄까 차이랄까 그런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들이 그 중요시해야 할 의회 밖 활동이 사실상 미미했으며 24일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점차 자신을 잃고 약화되는 모습에서 제가 읽어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일부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구성원이면서 자신을 감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라고 가리킬 이유야 없지만 이보다는 그럴 가치를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구체적인 행동에서 어느 편에 섰든 이들은 정말 비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성적 판단보다 연결된 정파나 맺은 관계들, 돌아가는 상황을 우선 고려했고 카메라와 펜을 의식했던 것입니다. 정말로 비겁한 자들입니다.

끝으로 가장 비겁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대엽 시장입니다. 그는 전혀 앞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시립병원 설립부지 변경문제가 나온 것도, 공공기관 재배치나 예산절감과 같은 문제들이 나온 것도 실은 이대엽 시장의 무능과 잘못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시장 했으면 제기된 문제가 어떤 문제인지, 자신이 어떻게 나서야 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을 그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마 시립병원 설립부지 변경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이번 도시의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는 이대엽 시장의 결단이 없고서는 그 누구도 더는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성남지역사회의 한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선 ‘역사는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출한다’는 경구랄까, 그런 게 저 자신을 위로할 뿐입니다. 그래선지 자신을 포함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던 몽테뉴의 그 웃음마저 떠오릅니다.

그분에게 좀 심하게 말했나요?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대로 성실하게 답했다고 봐줄 수는 없을까요? 중요한 것은 그분의 아이디는 밝히지 않으면서도 그분을 다른 누가 될 수 없는 고유명으로 간주하고 이런 답을 드린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답을 하는 저 역시 어떤 집단이나 집단의 기억이 아닌 고유명을 가진 개인, 시민으로서 제 기억을 남기고 있는 셈입니다. 누가 제게 어떤 딱지를 붙여도 저는 ‘벼리’이니까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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