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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왜소한 권력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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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왜소한 권력관에 대해서

[벼리의 돋보기]권력분점은 각자 진지를 지키고 강화하는 것

벼리 | 기사입력 2004/12/22 [04:33]

어느 왜소한 권력관에 대해서

[벼리의 돋보기]권력분점은 각자 진지를 지키고 강화하는 것

벼리 | 입력 : 2004/12/22 [04:33]
들어가기에 앞서 : '좋은 지역사회, 어떻게 만들어갈까?'에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이 글은 그 댓글에 대한 반응이다. 이 반응은 두 가지 이유에 근거한다. 첫째 소통의 언론모델에선 근거없는 댓글이 아닌 한 할 수 있다면 상대하는 것이 기본이다. 둘째 논의를 통해 옥석을 가릴 필요성 때문이다.  

지난 번 글을 통해 '좋은 지역사회'에 대한 소박한 꿈을 제출했다. 그리고 개인의 재발견, 협력을 속성으로 하는 다양한 커뮤니티의 형성, 권력의 분점이라는 세 가지 재료를 살펴보면서 그들의 새끼꼬기를  통해 그 꿈이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누가 '권력의 분점'에 크게 눈을 뜨고는 "시민단체나 비영리단체, 지역사회 리더들, 다양한 분야의 개인들이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로 진출해서 직접 선한(?) 권력분점에 나서는 외에 달리 방법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을 제출했다. 이 같은 주장에 우선 시력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전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좋은 지역사회를 만드는 개인, 공동체, 권력의 분점이라는 3가지 재료를 언급했고 또 이 3가지 재료는 새끼 꼬듯 서로 상관적으로 엮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한 가지 재료에만 주목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권력의 문제를 법규범 안에서만 사고함으로서 권력 분점의 문제를 시장과 시의회의 권력 분점 문제로 가둔다는 점이다.
 
첫째 이유는 개인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를 사실상 사장시킬 우려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도드라진 국가권력이 사회를 대리하는 현상, 사회부재라는 현상은 근본적으로 사회의 기초인 개인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를 적극 사고하지 못하고 풀어내지 못하는 데 있다.
 
요컨대 '강한' 개인, '건강한' 공동체의 부재가 권력 분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주된 이유는 권력이 현실적으로 책임보다는 갈등적 측면이 강한 반면 강한 개인이나 건강한 공동체는 그 반대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다. 세 가지의 혼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이유는 그가 어떤 권력관을 가진 사람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우선 적지 않는 사람들이 개념을 구사할 때 자명하게 또는 고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개념이 노는 물(맥락)을 눈 여겨 보지 않는 한, 논의의 공통분모는 세울 수 없게 된다. 맥락없는 개념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고 단지 사전이나 교과서에서만 가능한 탓이다.
 
앞선 글에서 권력을 말할 때, 그것은 정치권력에 한정된 개념은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능력, 가능성에 가깝고 따라서 자율, 책임과 같은 개념을 동반한다. 법규범에 따르면 권력은 정치권력이지만 상식의 세계에선 가령 언론, 시민운동도 권력으로 기능한다고 인정된다. 어떤 강한 개인이나 건강한 소공동체가 가령 국가권력과 싸울 때 그것도 분명 권력이다.
 
이처럼 권력을 사고하게 되면, 정치권력 중심의 권력관은 아주 왜소하게 보인다. 더구나 이런 권력관을 가진 사람들은 설령 정치제도가 민주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라도, 정치권력이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입각해 움직이는 현실에 그냥 매몰되고 만다. 왜? 표가 절실한 탓이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단기적인 정권적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현실은 사회의 운명, 미래와는 거의 대부분 어긋난다는 점을 냉철히 보자. 정치권력은 일상생활의 혁신에 얼마나 무능한가.  정권적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모든 정치권력이 다른 사회권력들에 의해 전방위적으로 두들겨맞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령 언론이 언론답지 못하다면 정치권력을 두들겨팰 수 있을까? 시민운동이 시민운동답지 못하다면 정치권력을 두들겨팰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달리 말하면 언론이라는 진지, 시민운동이라는 진지를 지키고 강화하자는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이 다름아닌 권력 분점의 사례들이다.
 
권력의 분점은 정치권력이 권력의 독과점을 자행하거나 사회의 운명, 미래에 반하는 짓을 하는 한, 일차적인 과제가 된다. 각각의 권력 분점의 진지를 지키고 강화하는 일에 정당한 주목을 돌리지 않고, 힘도 쏟지 않으면서 단지 정치권력 장악에 목을 매는 경우라면?
 
더구나 정치권력의 장악조차 그것이 본질적으로 특정인이나 패거리의 '욕망'에서 비롯된다면? 이 때 욕망이 넘침이 아니라 결핍에서 비롯된다면? 결핍은 반드시 체하고 만다는 교훈이 없지 않다. 각자의 진지를 지키고 강화하는 일에 힘을 쏟지 않았을 때, 아마 미래는 암울 그 자체일 것이다.
 
권력의 분점이라는 입장에서는 정치권력의 장악은 전술적 목표로서만 의미가 있다. 이 전술적 목표조차 권력의 분점이라는 전략적 목표 아래 수행될 수 있다. 왜 권력의 분점이 우리 시대에 중요한 사회적 가치인지 깊이 있는 고민과 성찰이 있으면 좋겠다. 특히 권력의 분점이 사회를 강화하자는 입장에 서있음을 눈여겨 봐야 한다.
 
성남지역사회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이런 삼류사회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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