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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은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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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은 화두다"

[벼리의 돋보기] 지역이 뭔데?

벼리 | 기사입력 2005/01/08 [00:30]

"지역은 화두다"

[벼리의 돋보기] 지역이 뭔데?

벼리 | 입력 : 2005/01/08 [00:30]
화두라는 엉뚱한 소리부터 먼저 하자. 화두는 큰 문제거리, 정말 만만치 않은 문제거리라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 화두라는 말은 선가에서 공안이라는 말과 통용되면서 남의 말과 글 따라서 남의 생각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적인 공부를 통해 자신의 거듭남, 곧 깨달음을 체득하는 일로서 포착된다.
 
그래 화두 공부는 대단한 공부가 된다. 공부 중에 이런 공부는 세상에 다시는 없을 정도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이런 의미에서 언론이나 일부 말꾼들 사이에서 비유적으로 쓰곤 하는 화두라는 말은 너무 가볍다는 혐의가 있다. 거의 예외없이 상투적인 수사로 쓰고 있는 탓이다.
 
본래적인 의미에서 화두는 운명을 걸고 도전해야 할 해결과제라는 무게가 실린다. 그래 그 공부에는 방편이야 여러 갈래 나뉠 수 있어도 진지한 태도만큼은 핵심으로 요구받는다. 붓다가 "길의 끝에는 자유가 있다, 그 때까지는 참으라!"라고 말했을 때, 이 말은 공부에서 진지한 태도의 강조라는 문맥을 타고 있다.
 
이런 태도 없이는 모든 진지함을 요구하는 일들이 그렇듯이 화두 공부는 정말 '뜬 구름 잡는 일'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화두라는 것이 정해진 답이 없을 뿐 아니라 오로지 자력하고 자득한다는 점에서 '섣부른 접근'이야말로 화두 자체를 희화화시키고 만다.  
 
각설하고 이제 화두를 빌어 지역을 무대 위로 올려보자. 바로 지역이라는 화두를 제창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보니 지역이란 화두는 기실 동시대인들에 한정해도 꽤 오래된 것이다. 곧 전두환 독재정권 말기인 1987년에 이른바 또다른 독재자 노태우의 6·29 선언에서 비롯되어 근 20여 년의 세월을 거쳐온 것이 지역이란 화두다.
 
6.29 선언에 포함된 '지방자치 실시'라는 대국민약속은 동시대인들에게 처음으로 지역을 화두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0여 년이 흐른 지금, 과연 지역이란 것이 화두가 되었는지 또 화두공부 수준에서 접근되고 있는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진지한 태도가 없다는 점에서다. 이 회의를 가져다준 실상을 이곳 성남을 터삼아 보자.
 
아직까지 민선시장은 두 사람의 관선시장 출신과 구닥다리 국회의원 출신을 거치고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시의회 역시 지역토호들의 과점상태에 멈춰 있고 시의원이란 그저 고만고만한 행세주의자의 간판이거나 위로 더 뜨기 위해 거쳐가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시의원으로서 당당하게 의회민주주의자를 외치는 이는 찾을까 말까 하다.
 
더구나 민선3기 이대엽 시장 체제에선 각종 무모한 개발계획의 수립이나 할당정치적인 사업들의 단발적인 시행으로 정말 횡설수설이 아닌가 싶은 시정행태를 보이지 않는가. 도대체 지역민들의 여론수렴이라곤 눈꼽만치나 염두에 두고 있는지, 과연 도시경영 책임자로서 지역에 대한 고민과 자기생각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그래 이런 사람을 시장으로 내보낸 한나라당의 수준도 알만하다.
 
여기엔 그간 지방자치의 실시 이래 지역의 중요성, 지역의 가치가 점점 더 크게 부각되어 왔음에도 지역을 화두삼기는커녕, 진지하게 화두공부하기는커녕 그저 중앙의 변두리로 간주하거나, 범범하고 데먼데먼하게 간주해온 따라서 그렇게 대해온 지역주민들, 특히 지역언론과 지역운동의 책임도 크다. 남의 탓을 빙자하는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잘못 또는 미미하게 보고 처신하는 만큼 지방자치의 뜻과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아주 못된 생각들은 캄캄한 밤의 강도처럼 끼어들기 마련이다. 결국은 지금 같은 지방자치에 대한 깊은 불신을 야기하는 제왕적인 민선시장, 반주민적인 시의회의 인상을 유포하게 되는 것, 그리하여 지방자치는 실망을 넘어 더 이상 별볼일없다는 냉소주의까지 유포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지역을 제대로 화두 삼지 못한 데서 오는 이런 어긋난 지방자치의 실상은 자연스럽게 지역이란 화두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또 다른 회의의 근거와 연결된다. 중앙적 시각이긴 하나 이른바 자치와 분권의 강화는 노무현정권의 대국민약속이고 주요 사회담론의 한 축이 아닌가. 그런데도 이곳 성남에선 아직 지역이란 화두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강력한 반증이 있다.
 
개인적 수준이든 조직적 수준이든 선거 참여라는 단기적이고 전술적인 대응이 되풀이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선거시기에 마치 합법적으로 권력 찬탈을 노리는 야수처럼 보이기도 하는 제정당의 수준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엔 선거현상과 그 해석인 말을 다루는 지역언론, 소위 오피니언 리더로 불리우는 이들의 수준과 행태도 진짜 꼴사납다.
 
이런 단발적인 대응수준 가지고는 지역민들의 실망과 냉소주의를 낳고 있는 지방자치의 실상을 고쳐세우기는 정말 불가능하다. 게다가 그것이 실제 결핍 따라서 소유 측면의 권력욕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니 이러다간 주민의 삶에 터해야 할 지방자치는 오히려 적대적인 시선들이 쏟아질까 두렵다. 
 
화두란 것이 삶의 공부에서 마지막 관문 통과와 같은 것이고 보면 지역이란 화두는 지역의 다양한 사회문제들과 연결되어 있고, 그 지위와 역할에서 단순한 연결이 아닌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기원(起源)되고 통과되고 귀결되는 화두라는 점에 동그랗게 눈뜰 필요가 있다. 지역을 마냥 걸어가야 할 큰 길로 삼고 다른 사회문제들은 이 큰 길에 착종되는 이런저런 길들로 삼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역경제 활성화, 빈곤의 해결, 일자리 창출를 겨냥한 민생문제가 크게 제기되는 사회문제라면 그것을 지역 차원에서 그 전망과 구체적인 목표, 방도를 고민하고 모색하고 실천하되 그 출발과 과정과 열매가 모두 지역주민들의 지역적 삶의 내용과 흐름에서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성남에서 이런 사례는 없었다.  
 
지역을 화두로 끌어올리고, 지역이란 화두를 열심히 공부하자. 이 공부가 얼마나 풍부한 내용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사람과 사람관계, 신체적 체험을 중시하는 실존적 내용의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익혀나가자. 이쯤에서 하나 레드카드를 미리 뽑아들자면 이데올로기적이거나 권력적인 접근태도 또는 책략가(策略家)를 위주하는 접근태도에 대한 경계다. 질적으로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한 그것은 '섣부른 접근'이란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 지역을 화두라고 말했는지 누렁소의 되새김질 같은 것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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