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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삶, 네가 알아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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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삶, 네가 알아서 해!

[벼리의 돋보기] 이기적인 인간에 대해서

벼리 | 기사입력 2005/01/08 [16:13]

서로 다른 삶, 네가 알아서 해!

[벼리의 돋보기] 이기적인 인간에 대해서

벼리 | 입력 : 2005/01/08 [16:13]
누군가 네게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텐가? 어렵나? 그럼 여기 광대짓 같은 글놀이를 지켜보라. 누군가 내게 '너는 누구냐?'라고 물으면 벼리는 주저없이 '이기적인 인간'이라 답한다. 이 답이 바로 여기서 벌이는 글놀이의 테마다.
 
그런데 이렇게 답하자마자, 실제 몇 번 경험을 통해 확인한 것인데, 사람들은 금새 쓰디쓴 표정을 짓는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라고 속심하는 게 틀림없다. 아쉽다! 의외의 답이라면 적어도 물어는 봐야 하는데 말이다.
 
물음이 이어지지 않는 것은 이미 제 머리 속의 박제화된 어떤 뜻과 도덕적 판단에 의존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이기주의는 저 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따라서 감히 어디 이타주의에 견주랴라는 뜻 그리고 나쁘다는 도덕적 판단이겠다.
 
이런 '교과서형 인간'을 대할 때 이기적인 인간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변명으로 전락될 게 뻔한 해명의 운명을 예감하는 탓이다. 차라리 오해 받는 게 낫겠다는 심사로 그냥 대면의 자리를 거둬들일 수밖에.
 
체제(體制)가 몸을 길들이는 것이고 그 도구가 교과서적 인식이라면 그것은 결코 제 것, 제 몸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교과서로부터 주입된 것을 제 것으로 착각하는 현실. 현실의 벽은 아직 두텁기만 하다(반체제의 교과서 역시 대개는 같고, 같은 현실을 드러낸다!) 저주 받아라, 교과서여!
 
자신을 몸으로 아는 것 곧 깨닫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기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기주의자라고? 아니다. 매도하지 말라! 두 가지 근거를 드러내보일 수 있다.
 
첫째, 한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를 무슨 '주의자'라고 딱지 붙이는 것은 이념적인 재단이지 상대방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에 입각해 있지 않다. '그' 사람을 보라! 결코 허툰 이념의 뭉치로 낱낱의 사람을 재단하면 못쓴다.
 
둘째, 이기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은 영어의 egoism과 정확히 일치한다. '번역어'라는 얘기다. 번역어와 이곳 사람들의 관념이 일치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곳 사람들이 이곳 말을 쓰면서 그 겉과 속이 이곳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곳은 그렇게 쉽게 까먹어도 될 만큼 의미와 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조선사람이 사는 이곳이 미국인가? 이 놀라운 일은 왜 놀랍지 않게 되었나? 그것은 천박한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적 사고의 수입전문가들과 체제의 기술자들이 야합한 결과이며 여기에 대중이란 이름의 떼거리로 전락된 '골 빈' 사람들이 추수한 결과다.
 
이제 이기적인 인간은 저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다. 그럼, 이기적인 인간이란 어떤 인간인지 진지한 물음이 따라야 하리라. 이기적 인간은 우선 '생존'의 관점을 놓치지 않는다. 요즘 같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느끼는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생존이라니? 단지 생계를 유지한다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한다는 그런 뜻인가? 고전경제학이나 마르크스의 노동관이 가리키는 그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근대의 판결일 뿐이다. 생존의 관점은 삶을 유지하고 가꾸는 모든 생명활동이라는 지평을 갖는다.
 
실직자는 일자리가 시급하다. 예술가는 창조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배우지 못한 사람은 배움이 시급하다. 생계 유지만으로는 살 수 없고 노동, 노동의 해방만으로는 사람이 결코 사람노릇 하지 못한다. 그 경로와 모양은 달라도 사람의 생명활동이란 삶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가꿔나가는 문제일 뿐이다.
 
이 온전한 삶을 보존하고 가꿔나가는 것이 진실로 이기(利己)라는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말의 실체적 의미다. 동양의 사유로 예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내려오는 이기적 사고인 양학(楊學)은 이 온전한 삶을 최고의 삶으로 간주한다(全生爲上, 呂氏春秋).
 
두 번째로 이기적인 인간은 생존의 관점에서 온전한 삶을 꾸리기 위한 방도가 이기라는 것을 직시한다. 양주(楊朱)는 "백이는 욕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청렴을 과시하다가 굶어죽기에 이르렀고, 전계는 정이 없었던 게 아니라 정절을 과시하다가 혈족을 적게 함에 이르렀다"(伯夷非亡欲 矜淸之郵 以放餓死 展季非亡情 矜貞之郵 以放寡宗, 列子)고 말했다.
 
이 지적은 이기에 의존한 발상인데 몸 밖으로부터 오는 명예, 정절과 같은 현행의 사회적 인정가치들보다 몸에 맞는 욕구충족을 중시하는 것 곧 경물중생(輕物重生, 韓非子)이라는 이치에 근거한다. 몸에 맞는 욕구라는 점에서 능동적 절제와 포기도 포함함은 물론이다.
 
이 경물중생의 이치는 만물과 그 운동에서 상호의존과 주종불이(主從不二)를 가르치는 불가의 연기법(緣起法)에 비춰봐도 정확하다. 이런 이치에서 이기는 의지적이며 자발적이며 따라서 인간적이다. 그리고 삶의 유한함, 자연성을 고려할 때 생리적으로 건강에 속한다.
 
세 번째로 이기적 인간은 생존의 관점에서 필연적으로 타자를 건드리지 않는 태도를 포함한다. 사적 개인이 아닌 '사회적 개인' 곧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사회윤리에서 요구되는 것이 공생이라면 그 유일한 전제는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그침의 윤리!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는 공생윤리는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가치가 있다. 무위 아닌 작위가 언제나 갈등과 투쟁을 일으켜 왔다는 역사적 현실을 직시하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이기적 인간의 사회윤리는 아마 공생윤리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온전한 삶을 위해 그침의 윤리를 실행하는 이가 이기적인 인간이다. 자기 몸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다. 결과적으론 자리(自利)를 통해 이타(利他)하는 것이다. 이기적으로 사는 인간은 저가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 제 것이 될 수 없고 제 몸에 맞지 않는 것은 아예 쳐다보지 않는다. 전혀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다. 최고의 '약은' 인간!
 
이기적인 인간은 서구적 사고에서 사회적 개인인 개인(individual)의 의미와 무척 닮았다.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진 개인은 나도 중요하고 남도 중요하다는 관점에서만 읽혀진다. 사회 속에서 서로 다른 모든 개인이 중시되는 것이다.
 
흔히 개인주의로 읽혀지는 이 개인 중시의 관점은 서구적 사고에서 흔들림 없이 전해져 온 것이다. 이곳에서 받아들일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개인주의나 이기적 인간의 관점은 사회에서 '개인의 지상권(至上權)' 달성을 공유한다.
 
개인적 인간 역시 내가 중요한 만큼 너도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이기적인 인간처럼 공생윤리를 안다. 타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몸으로 아는 것 곧 자신을 깨닫는 일에서 개인적인 인간보다는 이기적인 인간이 더 적극적이다.
 
개인적 인간은 사회적 개인에 머물러 있지만, 이기적 인간은 사회적 개인 수준을 넘어 주체적 개인 곧 강한 개인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는 전자보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훨씬 더 넓고 깊은 틈을 확보한다. 이기적인 인간은 '틈의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이기적 인간이란 보다 낮은 자유인 현행 사회적 인정가치들과의 불화와 보다 높은 자유인 자신의 깨달음을 위한 자기투쟁을 통해 형성된다. 이기의 실천적 의미는 바로 이런 투쟁들이다. 이 점에서 이기적인 인간은 개인주의보다는 자기적이며 훨씬 더 위계적이며 따라서 훨씬 더 강하다.
 
이기적인 인간에 대한 지금까지의 글놀이는 궤변이 아니다. 다만 낯설게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인상조차 남의 것,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반증이라고 감히 말한다. 이 점은 여기서 왜 이타적인 인간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과 관계가 있다.
 
분명한 것은 이타주의와 이기적 인간이라는 개념의 대립적 구도짜기와 그것의 선악이라는 도덕적 판단은 ‘zero-sum게임’이라는 점. 그것은 승리와 패배만을 문제 삼는 천박한 이념적 투쟁론자들의 착각, 전도몽상(顚倒夢想), 허구 따라서 스스로가 제 것, 제 몸의 생각이 없는 맹목의 짜가임을 증명할 뿐이다.
 
이기적인 인간이 조금이나마 귀를 여는 이들에게 들려줄 최고의 조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은 삶, 서로 같은 것은 죽음(萬物所異者生也 所同者死也, 楊朱). 네가 알아서 해!'
 
  • ‘남’이란
  • 잘 늙는다는 것
  • 의회독재를 경계한다
  • 플라톤 왈, ‘나보다 못하는 거시기들’
  • 성남의 한계를 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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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성이 있냐고 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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