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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길이 되고

[벼리의 돋보기]겨울 남한강을 따라서

벼리 | 기사입력 2005/01/16 [23:57]

강은 길이 되고

[벼리의 돋보기]겨울 남한강을 따라서

벼리 | 입력 : 2005/01/16 [23:57]
겨울 남한강. 그 강을 따라 갔습니다. 강은 길이 되었습니다. 강을 따라 가는 길은 단순히 강을 따르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때로 따르고 때로 거스르며 다시 길을 내는 일입니다. 설령 그 길이 강물을 손바닥으로 막는 어리석고 허황된 일로 그칠지라도, 나그네란 그렇게 길을 걷는 자가 아닌지요. 부질없는 삶 속을 순간의 불꽃으로 타오르기 위해 한없이 배회하는 자가 아닌지요.
 
길은 양평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강은 황무지 같은 느낌부터 전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강은 살가운 사람이 아닌 문명의 자동차를 건네주기 위해 육중한 콘크리트다리로 끊기고, 벗으로 어우러질 강변의 산과 들은 온통 생채기로 심하게 긁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땅히 만행이라 소리쳐도 시원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심한 상처 받은 풍경에 우리 시대 사람들의 끝없는 물욕이 괴물 같은 환영덩어리로 겹쳐집니다. 아주 낯선 이역의 공간이었습니다. 강은 시작부터 길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따스한 위무를 받습니다. 제멋대로 구불구불한 형상들로 인해 게으르거나 가난한 농사꾼이 갈아먹고 있을 강가의 논과 밭, 얼어붙은 하얀 강과 그윽하게 어우러진 누런 갈대숲, 겨울강의 적막을 뚫고 이따금 소란스러운 비상으로 눈길을 끄는 물오리떼, 예리한 천상의 눈과 사자의 발톱을 감추고선 겨울하늘 한복판을 유유히 비행하는 한 마리 검은 수리, 구름을 벗 삼은 산맥 사이로 구비구비 흘러오고 흘러가는 유장한 남한강……. 비어 있는 눈에 들어오는 강의 풍광입니다. 길은 길을 가는 나그네가 내는 것입니다.
 
한강의 마지막 나루터였던 이포에 이르러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니 옛일의 회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평화로운 강마을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낯선 배꾼들의 노래소리 그리고 웃음소리……유랑의 젊은 시절, 배 아닌 배 뗏목을 타고 이곳을 건널 때 눈에 푸르던 물빛과 인근 파사산성에서 날아와 강물에 피빛으로 떨어지던 뻐꾸기소리……. 강과 함께 했으나 시간과 함께 사라진 삶들이 떠오르자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흘러가는 강은 아련한 회상의 길입니다.
 
▲ 나룻배, 차안에서 피안으로, 다시 차안으로...     © 2005 벼리
 
하중도(河中島)라 할 양촌에선 강가를 배회했습니다. 얼어붙은 강가로 작은 배가 보였습니다. 강이 조형하는 너른 공간 속에서 자그마한 배는 어렴풋한 실루엣에 불과했지만 가슴을 찌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룻배와 나그네, 차안에서 피안으로, 타고 온 배를 강물에 흘려보낼 것인가 아니면 뒷사람을 위해 강가에 묶어둘 것인가, 다시 차안으로, 건너가고 건너오는 나룻배와 건너갈 수 없고 건너올 수 없는 강, 끝내 강물에 몸을 던졌으나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어떤 한……) 길은 문득문득 사유가 있는 삶입니다.
 
▲ 이 자그마한 풀들에게 한낮의 겨울햇살이란 얼마나 따스할까요     ©2005 벼리
 
강가 모래톱에선 작은 풀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습니다. 힘겨운 겨울나기를 하느라 잔뜩 웅크린 모습들. 웅크린 작은 풀들은 매서운 강바람과 한밤 중의 오한을 인내하는 생명의 모질음 그 자체로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 자그마한 풀들에게 한낮의 겨울햇살이란 얼마나 따스할까요. 참으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생명이란 우주 속 관계의 그물, 그 어디쯤에선가 굳게 서는 것이 아닐런지요. 생명의 생명됨을 길은 환하게 드러냅니다.
 
▲ 강 건너 한 그루 나무는 말한다, 외로움과 함께 외로움을 견뎌야 된다고     ©2005 벼리
 
강 건너 홀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없이 외로움이 밀려왔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붙인 구실에 베어질지도 모르고 난폭한 여름장마에 부러지고 휩쓸려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 나무에서 눈을 떼지 않자 그 나무에게서 낮은 음성으로 전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외로움과 함께 외로움을 견뎌야 된다……) 그렇습니다. 길은 끝없는 외로움입니다.
 
▲ 하늘과 산, 강과 길이 서로 교합하는 황홀한 풍광 그리고 맑은 섬강의 물소리     ©2005 벼리
 
있는 그대로 지상(至上)의 자연이 있습니다. 남한강으로 흘러 드는 겨울 섬강에서 만났습니다. 여주 강천과 원주 부론 사이 섬강교 위. 하늘과 산, 강과 강가의 선명한 길이 서로 교합하는 참으로 보기 드문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교합의 풍광 속으로 자연의 교신처럼 섬강의 맑은 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눈이 밝아지고 귀가 맑아졌습니다. 극에 달한 감동으로 온몸이 지워지는 듯했습니다. 길은 황홀을 선물할 때가 있습니다.
 
▲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역사를 절감하는 흥원창     © 2005 벼리
 
이내 도착한 흥원창(興原倉).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이곳은 깎아지른 벼랑과 세 갈래 물길이 어우러진 독특한 산수미를 드러내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옛 영서지방의 세곡(稅穀)을 걷어 수십 척의 배에 실어 서울로 나르던 곳, 민초들의 수탈의 집결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걷어들여 서울의 통치배들은 과연 무슨 일들을 했을까요. 늘 와 닿지 않고, 늘 회의와 의심, 끝내 분노로 마감하는 그 통치의 역사. 본디 빼어난 이곳 산수에 젖어들며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역사를 절감했습니다. 길은 역사의 한계를 몸서리치게 합니다. 
 
▲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의미, 가치가 과연 있을까     ©2005 벼리
 
흥원창에서 멀지 않는 부론 법천리에 있는 폐사지 법천사. 곳곳에 흩어진 와편과 초석들, 심지어 진행중인 유적발굴의 흔적조차 스스로 시간 속의 무력함을 입증하는 듯했습니다. 시간의 무게가 송곳처럼 파고드는 곳이었습니다. 샘물처럼 흘러나온다는 그 법이라는 진리조차 그저 무능한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의미, 가치가 과연 있기나 한지……. 폐사지 한복판으로 난 길과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고목에 눈길을 떼기 어려웠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길은 시간과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 이 탑처럼 길은 소박하고 정갈하게 가는 것     © 2005 벼리
 
인근 산골마을 정산리에도 폐사지인 거돈사가 있었습니다. 휑한 도량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토단 위에 자리잡은 삼층석탑이었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자태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탑이었습니다. 시간의 힘을 견뎌낸 것은 이 본성적인 자태 때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그 탑에 표상된 불신(佛身)의 의미는 거추장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 탑이 불러들이는 산과 하늘은 얼마나 무구하던지요. 이 폐사지에 남은 탑처럼 길은 소박하고 정갈하게 무소의 뿔처럼 가는 것입니다.
 
▲ 겨울강을 배경으로 한 버드나무숲, 스산하다     © 2005 벼리
 
충주 소태면을 지날 무렵 강가와 강에 침식된 분지 곳곳에 무성한 버드나무숲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기 드문 것이었습니다. 차가운 겨울강을 배경으로 한 버드나무숲은 스산한 것이지만 본디 버드나무는 춘정이 솟구치는 봄날의 이미지를 전해줍니다. 다시 이곳을 지나갈 날을 그려본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 고유한 자태로 말미암아 섬세함, 우아함, 부드러움, 은은함과 같은 이미지들도 전해주는 나무지만 그러나 아무렇게나 꺾어 꽂아도 왕성한 뿌리를 내리는, 강인한 생명력이 그 바탕에 있음을 어찌 가볍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부드러움에 못지 않은 강함이 있어야 길은 갈만한 것입니다.
 
▲옛 목계나루에 자리잡은 소나무숲     © 2005 벼리

충주 엄정과 가금을 잇는 목계교에 이르러서야 길은 끝이 났습니다. 흥원창과 같은 가흥창(可興倉)이 있었던 곳 바로 옛 목계나루였습니다.  옛 목계나루에 모여들던 민초들이 안녕을 빌던 의미인 듯 가금면쪽 강둑에는 묵은 소나무숲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소나무숲에서 악보도 없고 곡도 없는 송성(松聲), 그 무애의 소리에 귀를 맡겼습니다. 이곳을 스쳤던 어느 시인이 쓴 시의 한 구절이 더불어 노래가락으로 흐르기도 했습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신경림, 목계장터 일부)
 
▲어느 새 저녁하늘 속으로 겨울 남한강이 숨어 들기 시작했다     © 2005 벼리
 
길은 그 무엇으로 살든, 어떻게 살든 머물지 않는 삶입니다. 그런 삶 자체가 삶의 유일한 목적이자 근거임을 절실히 깨닫는 길에 삶의 매혹이 있는 듯 싶습니다. 그리하여 무수한 길, 저마다의 길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닌지요. 길을 나서는 것은 결국 끝나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고 따라서 늘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아닌지요. 그것은 삶의 숙명, 머물지 않는 나그네의 숙명일 것입니다.
 
어느 새 잔뜩 구름 낀 저녁하늘 속으로 겨울 남한강이 숨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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