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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도 욕 나름

[벼리의 돋보기] ‘노시개!’ 그게 뭐꼬?

벼리 | 기사입력 2005/01/27 [02:14]

욕도 욕 나름

[벼리의 돋보기] ‘노시개!’ 그게 뭐꼬?

벼리 | 입력 : 2005/01/27 [02:14]
‘노시개!’
 
엊그제, 한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후배가 들려준 충격적인 소리다. 그 소리는 그 이름 앞에 ‘대한민국 특별시’라는 간판치레가 붙는 강남 사는 사람들, 대개 상당한 부를 축적한 그들과의 술자리에서 그가 빈번하게 듣거나 술자리 예의상 불가피하게 따라서 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하찮은 성남사람으로 사는 나로선 참으로 엿 같은 소리였으니, 바로 욕!
 
그에 따르면, 강남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선 건배의 의미로 외치는 말이 '노시개' 아니면 '노시개나'란다. 그도 처음 들었을 때는 알아듣지 못해 뭔 소린가 물었더니 ‘노무현 시X놈, 개X끼, 나쁜 X끼'의 뜻이란다. 바로 욕이었다. 그는 황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혹스러웠다는 것이다. (여기에 급한 대로 평 하나를 붙이자면 이건 진짜 희극도 비극도 아닌, 어떤 것이다!)
 
게다가 그렇고 그런 술자리인지라 그들은 이 욕으로 건배를 할 때 얼마나 목청을 높였을까? 귀는 얼마나 크게 열렸을까? 혹시 조소하듯 가운데 손가락은 허공 중에 찔러대지는 않았을까? 아니 술잔을 부딪치는 욕의 건배로는 성이 차지 않아 춤이라도 추지는 않았을까? 비록 후배가 들려둔 얘기에 의존하지만, 일부는 기고 일부는 아니겠지만, 강남사람들, 그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이런 욕의 건배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 노시개!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진은 신라토우)     ©2005 벼리

헐! 욕도 욕 나름이라더니! 기가 막히다. 쓰게 웃을 수밖에. 소리상으론 전혀 거칠지 않게 들린다. 그러나 뭔 소리인지 모르던 사람도 ‘노’라는 첫 글자의 뜻만 들으면 노시개의 뜻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듣게 되는 아주 심한 쌍욕이다! 그들이 수사법상 직유를 쓴 것도 쌍욕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강렬한 심사를 드러낸다. 그 심사에는 그들의 속물적인 저급함, 졸부적 문화가 강하게 배어 있다.
 
소리는 부드럽지만 그 의미는 극심한 쌍욕이라는, 이 겉과 속의 현격한 거리에서 그들의 교묘함이 읽혀진다. 그들은 권력에 의해 하고 싶은 말이 억압 당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어제의 지배자, 특권층이었으며 오늘도 그들은 여전히 막강하다. 이 점에서 그들은 굳이 그런 극심한 쌍욕을 내뱉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교묘함보다, 그러나 더 강한 전율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드러내고 싶은 감정들이다.
 
그들의 욕에는 혐오, 경멸, 분노, 저주, 헐뜯기, 비방, 매도, 적의, 조롱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강렬하게 비친다. 그 욕은 곧 복수심에 가득찬 심리상태에서 나오는 일종의 언어행위를 통한 공격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의미로 와닿는 순간 낱낱히 풀어헤친 거칠고 쌍스러운 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실제 공격으로 나오는 듯한 전율을 전하는 것이다. 삼류 무데뽀정신!
 
욕이란 늘 시대풍조와 맞물려 돌아간다는 점에서, 물론 그들이 내뱉는 욕에는 나름대로 사회적인 배경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 아니라 대통령 할아비래도 욕먹을 짓을 한 사람은 욕 먹어도 싸다고 믿지만, 그러나 그 배경의 중요한 한 가지가 권력이나 돈을 세상살이의 척도로 삼는 바로 그들의 가치척도의 위기 내지는 결핍에 있다는 것, 이것마저 묻혀지거나 왜곡될 수는 없다.
 
실제로 그들의 욕이 배고픈 밥자리가 아니라 ‘술고픈’ 술자리에서 행해진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 술자리란 다소 풀어지고 여유가 있는 쉬는 자리, 다소 유토피아적인 자리다. 뭔가 진정한 것, 갈구하는 것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런 술자리의 성격 탓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노시개를 통해 언뜻 그들의 우월함을 드러내지만, 그 우월함이란 고작 술자리에서나 과시되는 것이라 뒤집어보면 그들에 반역해온 힘들에 대한 저들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욕을 정당화하려는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시도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런 시도가 아무리 세련되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들의 욕은 지난 80년대를 아프게 살았던 사람들의 그 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5공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을 향해 ‘살인마!’라고 외친 것은 욕이라기보단 차라리 절규였다. 무수한 생명을 앗아간 살인마를 향한 절규는 그 80년대 사람들의 공통적인 정서에서 나온 것이었다. 진짜와 짜가는 분명히 구별되는 법이다.
 
결국 그들의 욕은 막가는 쌍욕일 뿐이다. 그들은 권력의 상실 이후, 돈의 척도가 다소 흔들리기 시작한 이후 아직까지도 '안티'의 의미를 익히지 못했다. 그들의 막가는 쌍욕은 하이픈으로 연결되는 따라서 상대를 필요로 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안티가 아니라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독단에서 아직 빠져 나오고 있지 않다. 그들은 아직도 자폐증에 걸려 씩씩거리고 있다.
 
노시개를 외치는 그들은 전혀 고상하지 않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인내할 줄 아는 고상함이 없다. 그들에겐 그런 미덕이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낮추고 소견이 짧다고 말할 수 있는 겸양이 없다. 그들은 오히려 정반대다. 그들은 구토가 날 만큼 다만 쌍스러울 뿐이다. 기지가 있는 사람은 아마 관대하게 ‘개가 초저녁부터 짖어댄다’고 한 마디 슬쩍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욕조차 그들의 욕의 강도로 봐선 과분하다.
 
‘아는 이는 욕하지 않고 욕하는 이는 알지 못한다(知者不辱 辱者不知)’고 노시개에 대한 느낌을 한 마디 남기면서 가볍게 웃자. 어찌 저급한 속물들인 그들이 이 웃음을 읽어낼 수 있겠는가. 아마 미래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처음에 졸부로 나타난 그들은 2005년을 전후로 ‘노무현 시X놈, 개X끼, 나쁜 X끼'를 외치는 사람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기록할지 모른다.
 
지금은 우리의 때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때는 더욱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웃을 수 있다면 미래로 날아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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