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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행세 하는 어른은 싫어!

[벼리의 돋보기] 어린이의 정치

벼리 | 기사입력 2005/02/07 [04:56]

어른행세 하는 어른은 싫어!

[벼리의 돋보기] 어린이의 정치

벼리 | 입력 : 2005/02/07 [04:56]

하늘에 해님도 있고 달님도 있다. 햇빛과 그늘은 함께 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쉬운 이치가 어디 있으랴!
 
어느 한 쪽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결코 다른 쪽을 보지 못한다. 그런 사람을 두고 ‘가인’이라고 해볼까? 같은 쪽에 있는 사람이 보기엔 가인(佳人)일지 몰라도 양쪽을 늘 염두에 두는 사람이 보기엔 '가인(假人)'일 뿐이다. 짜가! 그럼 다음 이야기도 귀를 열어보도록.
 
조주(趙州)가 법당에 올라가 말했다.
“경(經)을 보아도 생사(生死) 속에 있고 경을 보지 않아도 생사 속에 있다. 자, 그대들은 어떻게 벗어나겠는가?”
어떤 학인(學人)이 대뜸 물었다.
“어느 쪽에도 머물지 않을 뿐이라면 어떻습니까?”
조주가 말했다.
“그게 진실한 것이라면 좋겠지만, 진실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생사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조주록(趙州錄)에 실린 문답(問答)이다. 형식적으로 들으면 물음표로 끝날 뿐이지만 한번만 살펴도 ‘생사를 벗어나려면 어느 쪽에도 머물지 않되 진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잡아낼 수 있다.
 
이 메시지는 또 말에 끄달리지 않는다. 진실한 ‘행(行)’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행의 문제에서 체험을 돌이켜보자면 어린이와 어른은 상당히 다른 반응을 나타낸다.
 
어린이는 ‘거짓말하면 못쓴다’고 가르치면, 대번에 알아듣고 그렇게 행한다. 우리집 아이들의 경우, 큰 애가 딱 한 번 내게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선의의 거짓말을.
 
그러나 어른은 ‘생사를 벗어나려면 어느 쪽에도 머물지 않되 진실해야 한다’는 말을 말로는 알아듣지만 행의 차원에선 열에 일곱은 어느 쪽에 머물러 있다. 편협하다는 소리다.
 
▲ 어린이는 어린이와 같이 놀 수 있다.     ©2005 벼리

 
열에 둘 정도는 어느 쪽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말을 알아들으며 또 의식적으로 행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행은 대개 간헐적이다. 정밀한 몸의 훈련, 거듭거듭 자문자답하는 성찰력이 몸에 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어른은 어린이만 못할까. 어린이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잃어버린 어린이의 마음은 의식세계에 속해 있지 않다. 그것은 무의식세계에 속해 있다!
 
의식적으로 어른은 누구나 어린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어린이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몸이 안되는데! 몸이 따르지 못하면 무의식은 맘대로 가지고 놀지 못한다.
 
이 점에서 다만 차이를 말하는 사람에게 “소이(小異)만 있고 대동(大同)은 없다”고 답하는  어른은 ‘의식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음이 간파된다. 까놓고 살피면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차이의 말살이다. 따라서 그의 무의식엔 대동이 없다.
 
의식의 세계에서 어느 쪽에 있던 자가 정반대의 다른 쪽으로 뒤집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그것을 뭐라 하던가. ‘변절’이라 하던가. 그러나 그의 무의식은 다만 어린이의 마음을 잃어버린 어른의 마음일 뿐이니 그것이 어찌 변절이겠는가.
 
분명하다. 조주의 메시지는 말로 어느 쪽에도 머무르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행으로 어느 쪽에도 머물지 말라는 소리다.
 
이 점에서 어느 쪽에 머무르는 사람은 어른이요, 어느 쪽에나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로 하는 사람도 어른이다. 어느 쪽에나 머무르지 않게 행하는 것은 진실로 어린이 밖에 없다.
 
어린이는 어린이와 같이 놀 수 있다. 어린이는 다만 어린이와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어른이 어찌 어린이와 얘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어른 중에 가장 나쁜 어른이 누군가? 모처럼 어린이로부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어른행세를 하는 어른이다.
 
그 때, 그 어른에게 어린이는 버릇 없게 보인다. 그러나 어린이는 자기 존재의 느낌으로 늘 충만하다. 어린이는 스스로를 '어른 전체'와도 바꾸지 않는다. 어린이의 정치는 ‘세계 전체’다. 어린이는 스스로를 세계 전체와 맞먹는다. 어떻게?
 
‘깔깔’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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