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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소나무숲, 천년 갈려면?

[벼리의 돋보기] 송창 선생의 재송(裁松)의 염원

벼리 | 기사입력 2005/03/15 [00:27]

남한산성 소나무숲, 천년 갈려면?

[벼리의 돋보기] 송창 선생의 재송(裁松)의 염원

벼리 | 입력 : 2005/03/15 [00:27]
남한산성은 식자층으로 갈수록 사적지로 읽혀지는 듯하다. 계절에 따라 그 곳을 찾는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사적지보다는 유원지로 읽혀지는 경향이 강해 눈요기하고 먹고 마시는 일이 잦다. 근래에는 별로 깊이 있어 보이지 않는 웰빙바람 탓인지 등산지로 크게 각광을 받아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등산객들이 붐빈다. 남한산성이 과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견뎌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남한산성 소나무숲은 산성 내 주민들이 해방 전부터 벌목을 방지하며 지켜온 숲이다. 간벌은 그 전통을 잇는 일이어서 뿌듯하다. 그러나 간벌만으로 소나무숲이 온전하게 보전되기는 어렵다.     © 2005 벼리

남한산성을 다녀본 사람들이 그 곳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든, 그 바탕에는 남한산성만이 드러내는 자연이 놓여 있다. 그 자연이란 남한산성을 다녀본 사람들이 누리고 산출해내는 의미나 가치의 원천이기도 하다. 씁쓰름한 것은 이 남한산성의 자연에 대한 별다른 주목과 관심이 없다는데 있다. 고작 눈요기감이나 건강증진의 계기를 주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가 싶다. 이 무관심에 대한 지적은 자연이 인간의 생활 영역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파괴되기 싶다는 우려에서 나오는 것이다.
 
남한산성의 자연 파괴를 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용에 한계를 두어야 한다. 이것을 전제로 제대로, 자연에 맞는 방식대로 관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남한산성은 그 정반대로 가는 것 같다. 허물어진 성벽조차 남한산성의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내 성품에서는 곳곳에 그냥 내버려둬도 좋을 성벽을 전혀 어울리지 않게 복원을 하기도 하고 인간의 편의를 위한 시설물들, 조형물들이 자꾸 들어서고 그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무들이 심어져 있기도 해 자꾸 거슬리고 눈에 띈다.
 
다만 부풀어갈 뿐인데도 자기합리화로 변명하는 인간의 탐욕이 자꾸 눈에 띄어 유년과 청년 시절, 힘들여 올라가 좋은 시간을 보냈던 그 남한산성의 모습과 느낌은 자꾸 상처를 받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며칠 전 작가들과 회의를 겸한 산보를 남한산성 소나무숲에서 가졌는데, 그 때 소나무숲의 도태를 막기 위해 치고 들어오는 낙엽활엽수들을 베어내거나 허약한 소나무의 가지들을 쳐내는 간벌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 일이다.
 
백살을 전후한 아람드리 소나무들 위주로 이루어진 남한산성 소나무숲은 수도권에서 보기 드문 자연숲이다. 게다가 이 소나무숲은 단순한 숲이 아니라 행궁 터 근방에 남아 있는 금림조합비로 알 수 있듯이 산성 내 주민들이 해방 전부터 벌목을 방지하며 지켜온 숲이다. 간벌은 그 전통을 잇는 일이어서 뿌듯했던 것이다. 그러나 간벌만으로 소나무숲이 온전하게 보전되기는 어렵다.
 
소나무는 생명이다. 생명은 종의 지속이 있어야 한다. 80년대 초, 솔잎혹파리로 극심한 피해를 입어 이 곳의 많은 아람드리 소나무들이 베어진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남한산성과 바로 붙은 성남을 비롯한 인근 대도시지역들의 오염된 공기와 이로 인한 잦은 산성비는 이 곳을 강산성 토양으로 바꿔버렸다. 소나무의 새싹을 틔우고 자라나게 할 수 있는 자연조건이 사라진 것이다. 실제로 남한산성 소나무숲에선 소나무 씨앗의 발아도, 어린 소나무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 날 함께 걷던 송창 선생이 문득 재송(裁松)의 염원을 밝혀 나를 감동시켰다. “묘포장에서 이 곳 소나무 씨앗으로 발아시켜 한 10년쯤 기른 어린 소나무들을 심어 이 소나무숲이 지속되었으면 좋겠어. 이대로 방치하다간 이 좋은 소나무숲이 사라질까 너무 안타까워.” 송창 선생은 남한산성의 소나무숲을 뛰어난 필력으로 화폭에 담아온 터라 선생의 말씀은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일구(一句)였다. 나 역시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요, 마땅히 그래야지요.”
 
오늘 송창 선생의 재송의 염원을 여기에 기록하는 것은 남한산성을 다녀본 사람들에게 전하는 바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남한산성의 무분별한 이용에 열을 올리면서 남산산성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의 바탕에 깔린 자연의 맥락을 무시해온 위정자들에게도 경책이 될 것이다. 옛일을 하나 붙인다. 임제가 절집 근처에 소나무들을 심는데 황벽이 왜 심느냐고 묻자 임제는 말했다. “첫째는 절집의 경치를 아름답게 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뒷사람들에게 표본이 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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