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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둥이질은 별로! vs 니들이 진짜냐?

[벼리의 돋보기]'개혁과 진보, 그리고 보수'에 대한 약간의 생각

벼리 | 기사입력 2005/05/25 [04:38]

주둥이질은 별로! vs 니들이 진짜냐?

[벼리의 돋보기]'개혁과 진보, 그리고 보수'에 대한 약간의 생각

벼리 | 입력 : 2005/05/25 [04:38]
솔직히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는 자들에 대해서 '의심'을 버릴 수 없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한 마디로 무엇이 개혁이고 무엇이 진보인지 정말 모르겠다. 바꾸는 것이 개혁이고 더 나가는 것이 진보인가? 바꾸기 전에 제대로 들추어나 봤는가? 더 나가기 전에 지금-여기는 제대로 보고 있나? 더구나 우리네 삶의 실존이 또렷이 증시하는 것처럼, 삶과 삶이 놓인 현실은 그다지 속도적이지 않다. 그것은 징그러울 정도로 변화에 둔감할 때도 많고 심지어 나태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과연 바뀐 것이 무엇인가? 더 나간 것은 무엇인가?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더 나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 왜 개혁과 진보는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가?
 
세상은 아주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런 세상에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시대를 읽고 헤쳐 나가기 위한 '척도적 의미'를 가진다. 더구나 개혁과 진보라는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는, 선택의 능력이야말로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는 자들이 요구받는 핵심능력일게다. 개혁과 진보를 외치는 자들은 그런 능력이 있는가? 한 가지 상기해보자. 시쳇말로 국민참여경선제를 딱 한번 실시하고(물론 얼치기 수준이었고) 철회시킨 그 따위 정치가 무슨 개혁이고 진보인가!
 
둘째, 구두선이 아닐까? 솔직히 정치라는 사회의 '한 영역'(상론하진 않겠지만 이 생각은 정치를 사회의 전 영역에 대한 지휘 개념으로 보는 입장과는 뚜렷이 다르다)과 특히 선거라는 되풀이되지만 '일시적인 장'에서는 그 크기와 비연속성에 비해 개혁과 진보라는 말이 지나치게 난무한다. 난무한다? 흔해 빠졌다는 뜻이다. 흔하면 값은 똥값이 된다! 매스미디어에 의해 매개된 가짜현실이 진짜현실보다 훨씬 더 강도높게 판을 치는 문화적 상황에서 개혁과 진보가 아무리 그럴듯한 외관을 취할지라도 과연 상품과 광고에 이길 수 있을까? 매개된 가짜현실이 뿌려대고 꼭꼭 심어주는 욕망의 수많은 신화들, 그 유행들보다 얼마나 더 사람들 폐부에 호소할 수 있을까? 오히려 가짜현실을 닮아가는 게 아닐까? 닮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점에서 어떤 것을 개혁과 진보의 도마 위에 올리고 그것을 생선 지지듯 요리하는 섬세함, 맛이 어떤지를 여러 사람과 품평해보는 일에는 과연 얼마나 몸부림치는가? 그런 몸이 저절로 만들어지나? 자꾸 몸짓을 부려본 사람이라야 가능하지. 따져보자. 그들은 대개 '선수'이고 '기술자'이지 삶의 현장에서 성장하고 삶을 대변하는 '대리인'이 아니다. 설령 그 삶의 현장에서 성장했거나 더러 그 맛을 좀 봤다고 해도 그 현장과의 공고한 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부침을 거듭하는 특정 정치세력의 일원일 수 있어도 삶을 표방하고 대리하는 '사회세력'의 일원이 아니다. 그러니 그들은 허구한 날 주둥이질만 심할 수밖에!
 
그럼, '보수'를 표방하는 자들은 어떤가? 솔직히 그들은 '짜가'에 가깝다.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는 입장에도 형평성을 맞춰야 하니까, 두 가지만 이유를 대보자.
 
첫째, 보수를 포장하는 자들은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는 자들보다 더 포장되어 있다. 여기서의 논지와 관련해서는 포장이 아니라 '위장'에 가깝다고 느낀다. 보수가 뭔데? 꼼짝 않는 것? 유의미한 사회적 변화가 일고 있어도? 가진 것 내놓지 못하겠다는 것? 빽 없이, 가진 것 없이 사는 사람들이 무지무지하게 많은데도? 그런 것은 아닐게다. 이런 경우들에, 이런 엄연한 현실 앞에서 '보수!'를 외친다면 그들은 보수가 아니라 쇠망치질이라도 해대면 땅! 땅!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갈 돌부처 가운데 토막들일게다. 작금의 형국이 이렇다. 그러니 위장에 가깝다는 것이다. 보수? 그것은 가짜다. 지랄 염병일 뿐!
 
사회의 유지와 변화를 위해 현존하는 것 가운데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보수가 성립한다. 그런데 그런 가치 있는 것, 그것을 지켜보자는 믿음의 제시는 과연 있었나? 내게는 기억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물론 지킬 것만 지킨다면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다. 그것은 '편협한' 보수다. 어떤 것이 보수적인 가치 안에 '없다'고 무시하는 게 바로 편협한 보수다. 경험적으로는 대체로 그럴 만하다고 판단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보수적 가치 안에 없는 것에 대해선 문외한들이다.
 
없는 그것이 사회의 유지와 변화에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깊은 헤아림이 있어야 하고, 판단 결과 필요하다면 달게 삼킬 수 있는 도량이 있어야 한다. 시대를 위반하고 따라서 뛰어넘기도 하는 그 없는 것은 이런 방식을 통해 보수의 가치 안에 편입이 가능하다. 또 이렇게 해서만 보수는 사회의 유지와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런 능숙함은 보수의 필수조건이 아닐까? 그런 보수, 어디 없나? 거 참, 안보이는구먼!
 
둘째, 한국사회에서 보수가 자리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보수다운 보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승만 독재정권,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상징되는 군사파쇼정권의 시대도 벌써 지나갔고, 민간정부이지만 권위없는 권위주의정권들도 이미 시대의 운명을 마쳤다. 이와 맞물려 사회의 여러 영역들도 독자적인 내용들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힘있게 자라는 중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과거 독재정권이나 권위주의정권 시대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자들은 없다. 굳이 정치에 호소하거나 눈치 보지 않고도 자기가 속한 사회적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이에 걸맞는 힘을 확보한 사람들도 상당히 많아졌다. 한국사회는 그만큼 겪을 만큼 겪었다. 그만큼 민도도 매우 높아졌다.
 
이런 역사적 시기야말로 보수가 설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보수가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한국사회의 여러 영역들에서 근대화의 과정에서 축적해오고 변화의 동력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포착해내고 지킬 만한 것으로 사회에 제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고 믿는다. 여기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것들은 눈만 크게 뜨면 매우 많다.
 
더불어 한국사회의 흉한 오늘날의 모습을 해독하는 중요한 한 가지 방법으로 간주되는 것에도 깊은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오랜 전통적 가치들과의 단절현상에 대한 성찰'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사회가 도달한 지적인 능력과 그간의 천박한 근대의 사회적 체험에서 비롯된 반성적 요구라는 맥락, 그 관점에서는 '짧은 근대화' 이전에 성립한 우수한 오랜 전통적인 가치들을 재발견해낼 수 있고 역시 이것을 지킬만한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사회적으로 제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 두 가지 범주에 걸친 작업은 보수를 보수로서 서게 하는 중요한 두 가지 지반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가? 나는 알지 못한다. 아직도 한국사회는 쉰세대는 너무 고루해 새세대와 늘 충돌을 빚고 새세대는 너무 빨리 쉰세대로 변해버리는 현실이다. 아직도 편협한 보수 수준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현실이다. 보수적인 사람이 의외로 드물다. 나는 더러 보수적인 사람을 만나본 적은 있어도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사람으로서의 보수는 만나본 적이 없다. 염병할! (가끔 내 사고와 생활습관으로 봐서 보수적인 면모가 있지 않나, 생각들 때가 없지 않다. 나이 탓이라고? 아니다. 그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마무리하자.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는 자들은 그 능력에서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보수를 표방하는 자들은 가짜인 듯해서 믿기 어렵다.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개혁과 진보의 세력이 등장하면 얼마나 좋겠나! 그 세력이 정치세력이면서 동시에 사회세력이면 얼마나 좋겠나! 진짜 보수주의운동이 시작되면 얼마나 좋겠나! 그리고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는 그 누구도, 보수주의운동을 시작하려는 그 누구도 감당해야 할 시대의 몫으로 던져진 '자치분권의 실천'을 피해나갈 수 없음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이 문제는 기회가 오면 한번 따져보기로 하자). 이 점에서 아직도 '호남표'를 공개적으로 떠들어대거나 선거정치 관점에서 '향우회'를 교묘히 이용하는 저열한 지역주의 정치행태는 신랄하게 비판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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