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20세기 초 어느 예술작품 전시회에서 변기를 전시했다. 뒤샹의 변기는 변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술관에 전시됨으로써 조각이 되었다. 기능의 변화. 일상생활용품에서 예술작품으로의 변화. 변기가 ‘샘(Foutain)’이라는 조각이 된 것은 기능이 바뀌고 따라서 맥락이 달랐기 때문이다.
레디메이드(ready-made)로 알려진 이 미술사의 명장면을 소개하는 것은 최근 시의회에 새로 들어온 시의원들을 접하고서 받는 어떤 느낌 때문이다. 과거 무엇을 했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남 보기에 그것이 그럴듯한 경력이든 아니면 변변치 못한 경력이든 ‘거리두기’의 시선을 지닌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갖지 못한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완장’으로 간주하지만 않는다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사례 제시로서 ‘모르면 침묵하는 법’이라고, ‘스토킹과 사랑을 구별하라’고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면 ‘왜 까대는데?’, ‘덤탱이 써볼래?’, ‘왜 삼켰냐?’ 등등 쓴 소리의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다. 자기 이름이나 자리를 스스로부터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릇 모든 존재자는 자기의 거소에 잘 거주할 때 그러함이 있고, 다움도 있다. 얼마 전 공자의 正名(이름이나 자리에 맞게 실질이 따르는 것)을 빌어 한나라당 홍문종 경기도당위원장, 이효선 광명시장을 사례로 정치인의 자질문제를 다루면서 모두 들으라고 한 적도 있었다. 성남의 야당 소속 의원들도 잘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피고 또 살피었으면 좋겠다. 옛사람의 글에서 배워 오래 전부터 지니고 다니는 글귀 하나를 마음의 선물로 남긴다. ‘止’ <저작권자 ⓒ iwa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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