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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할 때 구토하라!

〔벼리의 돋보기〕이대엽 시장과 분노하지 않는 자들

벼리 | 기사입력 2006/10/02 [03:44]

구토할 때 구토하라!

〔벼리의 돋보기〕이대엽 시장과 분노하지 않는 자들

벼리 | 입력 : 2006/10/02 [03:44]
최근 이렇게 저렇게 쓴 이대엽 시장 관련 기사들을 탐독을 했는지 시청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이 불만을 토로하며 “우리 시장님만 걸고 넘어진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 때, 그 공무원의 심적 경계가 어떤지를 직감했다. 그 공무원의 심적 경계가 설령 우리 시장님만을 보는 얕은 경계일지라도 인간 자체를 사유하는 신중한 태도에서는 그것을 탓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 심적 경계란 게 결국 허망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싹튼 허우적거림에 불과함을 아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아닌 일을 따지는 냉철한 태도에서는 그 공무원이 전한 메시지는 매우 불쾌하다. 그가 정상적인 사유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이대엽 시장 관련 기사들을 꼼꼼히 읽었다면 기사 쓴 이의 문제의식이나 의중을 외면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도 알았으리라. 그렇다면 그는 이 시장과 관련된 일에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은 스스로 오인받기 안성맞춤이다. 민선3기에 이와 같은 일을 기사로서 비판한 적도 없지 않았다.

이 점을 분명히 일러주었다. 못 알아듣더라. 이미 우리 시장님을 되풀이할 만큼 푹 빠진 어떤 심적 경계가 그가 시민의 공복인 공무원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한 공적인 태도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한심한 공무원에 대해서 어찌 불쾌하지 않으랴. 그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짜증날 수밖에. 그러므로 짜증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응하는 몸의 합리적인 반응인 셈이다. 내가 결코 옹렬해서가 아니다.

▲ 공공의 영역에서 있을 수 없는 행보를 거듭하는 이 시장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분노하지 않는 자들, 그런 자들이 정략과 술수로 필요에 따라 나서고 물러서는 지역사회가 더 문제다. 사진은 성남시의회 본회의에서 최만식 의원이 이 시장에게 "시장 자신과 조카며느리 Y씨 소유 부동산에 대한 특혜성 용도변경 논란에 대해 직접 나와 해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성남투데이  

요즘 이 시장에 대해서는 어떤가? 짜증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분노다. 분노 역시 합리성에 기초한 몸의 정직한 반응이다. 명색이 시장이라는 직을 통해, 수많은 공직자들을 거느리고 수행하는 행정을 통해서 나타나는 그의 공적인 생각과 태도는 분노하지 않으면 넘길 수없을 정도다. 혹시 누가 실은 개인적으로 이대엽이라는 사람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혹시 누가 다른 좋은 사람이 시장이 되었으면 해서가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지점을 공유해보고 싶다.

설령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서 도적적인 단죄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든 사적으로는 그의 삶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강한 신념이다. 이 원칙에서 사람을 대할 경우, 나는 이 시장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한 터럭의 선입관도, 어떤 판단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럴 권리도 없다. 그가 대통령 할아비래도 그럴 것이다. 솔직히 아예 관심조차 없다. 내 삶을 꾸리기도 정신없는데 어찌 남의 삶을 걱정한단 말인가.

이 전제를 염두에 두고 다시 분노에 대해서 말하자. 왜 이 시장에 대해서 분노하는가? 분노할 만한 이유를 이 시장이 연임하고 나서도 자꾸자꾸 제공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례들은 그간 많이 다루었으므로 생략하자. 한 마디로 그는 그가 제공하는 부적격 사유들로 인해 시장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이 분노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물이 차가운지 더운지는 맛을 봐야 알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이 시장이 시장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임을 알면서도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라. 그들은 왜 분노하지 않을까. 바보라서? 하긴 바보, 천치는 분노할 줄 모른다. 이 점에서 보자면 분노는 맹목이 아닌 셈이다. 다시 묻자, 그들은 왜 분노하지 않을까? 계산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분노는 정략이나 술수가 아니다. 그들은 왜 계산하는가? 내가 보기엔 병들었기 때문이다. 썩었기 때문이다. 썩었기 때문에 쉽게 썩은 것과 뒤섞일 수 있는 것이다. 건강하지 않은 자들은 단언컨대 결코 분노하지 않는다.

나처럼 분노하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분노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싶다. 왜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는가? 몸을 사려서? 어떤 실제적인 이득을 보기 때문에? 아니면 달리 정략이나 술수를 염두에 둬서? 그가 누구든 상관이 없다. 분명하다. 잘못만이 잘못은 아니다. 잘못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은 자들도 잘못이다. 이 점에서 상식의 세계에서 충분히 분노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음에도 분노하지 않는 자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많은 시장후보들이 등장했던 지난 시장선거 당시 풍경을 떠올려보자.자기가 지지하는 시장후보를 두둔하는 듯한 인상을 충분히 주는 분노의 메시지가 연일 시장선거판에 날아다니지 않았던가!

공공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분노가 공분(公憤)이다. 공공의 영역에서 볼 수 있는 분노는 공적인 것이다. 그래서 공분이다. 분노할 때 분노하라! 공분할 때 공분하라! 이렇게, 정말 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살아온 성남이라는 도시에서 이 도시를 이끌어가기로 약속한 시장이란 자가 어떤 수준의 사람인지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써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신과 자신의 친인척을 위해 권력을 남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내 공분은 좌절감에 부딪친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이 때문에 두 번 다시 나는 공분하지 않는 자들을 내 사전에 기록해 두지 않을 작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이 나설 때, 그들의 위선을 위악적으로 폭로해볼 수도 있으리라.

심한 좌절감 때문인가. 분노는 어느 새 구토로 바뀐다. 견딜 수가 없다. 그렇다. 더러운 세상을 향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몸의 저항은 다만 구토일 뿐이다. 내 정직한 몸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구토일 뿐이다. 사르트르가 말했던가. 실존은 존재보다 앞선다고. 그럼, 이런 말도 가능하리라. 구토는 존재보다 앞선다고. 사르트르가 그의 소설 《구토》에서 로캉탱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을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구토에서 로캉탱은 작은 항구도시에 내려와 그 도시의 박물관을 방문했다. 그 박물관 회랑의 벽에는 거대한 초상화들이 걸려 있었는데 그들은 의사, 법률가, 상인, 정치가들로 말하자면 그 도시가 배출한 인물들이다. 명예, 돈, 권력으로 일세를 풍미한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근엄하고 심지어 교만하기까지 했다. 적어도 박물관 회랑에서 그들은 살아서와 마찬가지로 죽어서도 퍼런 서슬을 잃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나 로캉텡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심하게 구토했다. 그가 보기에 그들은 살아서는 주어진 질서에 순응한 노예들에 불과했고 죽어서는 고매한 표정으로 박물관의 한쪽 벽을 차지함으로써 역사 속에 남겨진 ‘더러운 새끼들’에 불과했다. 박물관을 빠져나오면서 로캉탱은 그 속물들을 향해 이렇게 구토했다. “나는 돌아다보았다. 작은 그림의 성당 속의 한없이 고운 백합이여, 안녕, 우리의 자존심이여, 우리의 존재 이유여, 안녕, 더러운 새끼들이여, 안녕.”

내가 보기엔 공공의 영역에서 있을 수 없는 행보를 거듭하는 이 시장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분노하지 않는 자들, 그런 자들이 정략과 술수로 필요에 따라 나서고 물러서는 지역사회가 더 문제다. 처음에 분노에 대해서 이 글을 쓸까 하다가 숨길 수 없는 몸의 저항이 분노에서 구토로 바뀐 것을 느끼고 방향을 선회한 것도, 결국 구토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이다. 분노할 때 분노하라! 물론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 말보다 지금 당장 더 유효한 것은 다음과 같은 말이다.

‘구토할 때 구토하라!’
 
  • ‘남’이란
  • 잘 늙는다는 것
  • 의회독재를 경계한다
  • 플라톤 왈, ‘나보다 못하는 거시기들’
  • 성남의 한계를 씹는다
  • 여기가 섬이다. 자, 뛰어보라!
  • 진정성이 있냐고 물으면
  • 시립병원투쟁 제안?
  •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글까
  • 2008년 7월 8일 국치일(國恥日)
  • 촛불이 꺼질 수 없는 이유
  • 박권종의 반란 또는 삑사리의 비밀
  • 조중동만이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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