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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은 없고 공공성은 훼손당하고

〔벼리의 돋보기〕당상(堂上)의 노탐(老貪)

벼리 | 기사입력 2006/11/06 [21:04]

비전은 없고 공공성은 훼손당하고

〔벼리의 돋보기〕당상(堂上)의 노탐(老貪)

벼리 | 입력 : 2006/11/06 [21:04]
성남은 성의 남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 성이 남한산성이다. 성남사람들에게 남한산성이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다름 아닌 남한산성에 기대어 그 따듯한 남쪽에 살고 있는 탓이다. 송파, 하남, 광주 등 사방으로 뻗어 내린 남한산 자락에서 유독 성남 쪽이 단풍이 아름다운 것도 성의 남쪽인 탓이다.

첫 눈이 내렸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남한산 꼭대기에 눈이 내리고 있다. 남한산성이 눈으로 덮이고 있는 것이다. 하얀 첫 눈과 절정의 단풍이 섞여 만든 절경 앞에 시선을 잃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니 어느 새 눈을 뿌린 구름이 스멀스멀 남한산성을 가린다.

슬픔이 밀려온다. 넋을 잃고 바라본 풍광의 힘인가. 그런 풍광을 자연스럽게 읽어 들이는 성남이란 터의 지난한 삶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가난에 밀려 어린 시절 성남에 들어와 먹을 만치 나이 먹도록 저 남한산성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내놓고 말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이 터의 사람임을 느낀다. 그런 내게 오늘 슬픔이 밀려오는 까닭은…….

▲ 아직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 성남투데이

옛일이 떠오른다. 사대(事大)의 나라 조선이 결정적으로 기울어진 계기는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남한산성 아래 삼전도에서 청 태종 앞에서 굴욕적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세 번 절하며 그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것)를 치르며 이마에 피가 나도록 머리를 땅에 부딪쳐야 했다. 성하지맹(城下之盟)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다름 아닌 완전한 국가적 종속의 맹세였다.

17세기 중반 제주에서 난파해 조선 땅을 밝게 된 하멜 일행을 조선은 어떻게 대했는가. 그들은 뛰어난 해양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난파선원들을 받아들여 조총 제작법, 조선술, 해양술을 배워 이른바 난학(蘭學)이라는 독특한 학문체계로 완성했다. 이 난학이 메이지유신 등 일본의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이끈 결정적 힘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조선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하멜 일행을 오랑캐라며 고관대작들의 술자리 노리갯감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문제가 될까봐 이 곳 남한산성으로 숨겼다. 아사와 병사 끝에 살아남은 하멜을 비롯한 일부 일행은 목숨을 건 수 차례의 탈출 시도 끝에 마침내 조선을 탈출해 버렸다. 하멜이 남긴 《하멜 표류기》에 나타난 조선은 그야말로 한심한 나라였다.

나라가 망할 때는 항상 안에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구한 말 조선 각지를 여행한 영국인 비숍 여사가 증언한 대로 조선은 부패한 관리들, 그들의 수탈로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위로는 도백에서부터 아래로는 조그만 고을의 수령에 이르기까지 매관이 성행했고 이것이 민초들의 수탈로 이어졌다. 누가 열심히 일할 엄두가 나겠는가.

군부독재가 물러가고 민초들의 피로서 쟁취한 지방자치가 실시되자 트럭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철거민의 도시, 광주대단지 폭동으로 출발한 천형(天刑)의 땅 성남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믿었다. 굶주리고 천대받고 더러는 자리 잡지 못하고 떠나버리는 이웃들을 보면서 지방자치야말로 성남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보았다.

지금 성남자치호의 사정은 어떠한가. 이대엽 시장은 역대 민선시장 가운데 최악이다. 그 사람이 있어 그 일이 일어난다고 했으나 사정은 정반대다. 한 마디로 이 시장의 무능으로 지금 성남자치호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대엽 시장을 들여다보면 지금 성남자치호가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두 가지 핵심을 비켜갈 수 없다.

첫째, 이대엽 시장은 비전이 없다. “아, 그렇게 가면 성남이 달라질 수 있구나!”라는 그림이 그려지는 비전을 제시한 바가 없다. 그 그림을 그려가는 실행프로그램이 있을 리 만무하다. 시쳇말로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는 식이다. 일이라곤 그저 단발적으로 달려들 뿐이며 잘못 달려드는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마저 안 되면 잘못했다는 반성의 소리는 결코 하지 않는다.

이대엽 시장은 단 한 번도 시의회나 성남시민들을 향해 공개적으로 성남을 이렇게 바꿔보겠다고, 어떻게 바꿔보겠다고 제 입으로 직접 발언한 적이 없다. 분명하다. 지방자치가 뭔지, 지방자치를 통해 성남을 경영한다는 의미가 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선으로 시장이 된 자로서 명백한 직무유기다.

둘째, 심각한 공공성의 훼손이다. 공공성이란 현실과 떨어진 어떤 것이 결코 아니다. 성남시 공직사회가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사병화, 용병화가 두드러진다. 그 자리에 앉혀선 안 될 사람들을 함부로 쓴다. 이 시장이 추진하는 주요 프로젝트들도 그저 과시용이거나 성남의 이익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공공성을 담지하고 있지 못해서다.

공공성이 사회주의에 대당적인 ‘사회적 가치’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사회주의에 맞선 자본주의의 핵심가치는 시장주의가 아니라 공공성이라는 의미이다. 공공성이란 정부든 지방정부든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어떤 것이다. 지방자치 경영이 회사 경영과 다른 점도 바로 이 공공성 유무에 있다. 지방자치에서 공공성이 훼손되는 순간 시민들의 소외는 피할 수 없다.

부끄러운 줄 알라. 어떻게 이대엽 시장은 자신과 친인척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 공공성을 훼손한단 말인가. 어떻게 도시계획을 함부로 건드린단 말인가. 어떻게 부인이 남편에게 도시계획을 건드리라고 요구하는 천하에 둘도 없는 부끄러운 짓을 서슴지 않는단 말인가. 세상에 이런 유치하고도 낯 뜨거운 권력행사의 남용 아니 사유화 사례가 어디 있단 말인가.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상(堂上)에서 노탐(老貪)이나 부리는 무능한 시장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비전이 없는 도시,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당하는 도시, 그런 도시 성남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분노케 한다. 남한산성에 배인 역사의 상처, 성남에 깃든 동시대사의 상처가 오늘은 왜 이렇게도 아프냐.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아직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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