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가지 이유는 ‘정치력 부재’를 의미한다. 이들이 시의회를 이끄는 의장, 부의장으로서 무능하다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의장단의 정치력에 대해 참으로 유감스럽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고 평한 대로다. 이에 당사자들이나 이들과 지근거리에 있는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열린우리당의 정략적 의도로 보고 반발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같은 반발은 순진한 게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다. 정략이 없는 정당이 어디 있는가. 우리가 정당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지 않는 한, 정당은 정당에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구분하고 판단하기 마련이며 이런 판단 아래 정치력 발휘를 통해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고 사회를 재구성해가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정당의 모든 행동은 하나하나가 다 이해관계에 입각해 있고 계산된 것이다. 문제는 이 의장, 박 부의장의 무능을 문제 삼은 것이 정당적 이해관계를 우선 고려한 것이냐 아니면 시민의 이익이나 민심을 우선 고려한 것이냐에 있다. 명백히 후자다. 우선 이 의장, 박 부의장의 무능은 이미 필자를 비롯한 지역언론에서 충분히 지적되어 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지역언론의 비판보다 더 중요한 사회적 판단이라는 근거가 있다. 바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에 이들이 맞게 답했느냐하는 것이다. 왜 사회지도층 인사가 시민들로부터 대접-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한 대접을 문화양식화한 것이 바로 이들에 대한 ‘의전’이다-을 받게 되는가? 나아가 존경을 받게 되는가? 사회지도층 인사임을 드러내는 명칭 때문인가? 아니다. 그 명칭이 지니고 있는 공공선이라는 시민의 이익의 창출자라는 사회적 인정과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치 때문이다. 사회지도층 인사가 그 명칭에 맞게 처신한다면 곧 시민의 이익 실현이라는 기대치에 맞게 처신한다면 사회적 인정은 물론 존경이 뒤따른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정도에 따라 실망, 혐오감의 대상으로 추락되고 이번 열린우리당의 자진사퇴 촉구와 같은 치명타가 가해지기도 한다. 자리에 올라서기보다 자리를 자리답게 유지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말도 있다. 기관대립형인 지방자치제 하에서 집행부에 대응력을 확보한 의회의 권능은 중요하다. 이 같은 의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바로 의장, 부의장이다. 이 점에서 그 역할이 막중한데도 이수영 의장, 박권종 부의장은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만을 거듭해서 보여주고 있다. 투쟁국면에서 대화와 타협의 국면으로 책임지고 전환시켜야 할 이들이 오히려 ‘더 이상 의회가 파행되어서는 안 된다. 의장, 부의장 도대체 뭐하냐!’는 비판을 듣고 있다. 비판에 임해서도 속수무책 그야말로 꿀먹은 벙어리들이다. 이들의 행태는 상식적으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그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무능 그 자체다. 왜 그럴까? 이수영 의장의 경우 의장으로서 어떻게 하면 의회를 잘 이끌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대신 딴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와 관련, 지방지인 중부일보 1일자에 실린 그의 인터뷰 기사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의장이 무능하다는 그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실감케 하는 이 기사의 한 대목은 코미디 한편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자의 질문) 항간에 이수영 시의장이 국회의원감으로 손색이 없다고 합니다. 출마 가능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이수영 의장의 발언)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저는 시의회 의장 직무에 충실하고 시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박권종 부의장의 경우, 부친 땅을 시에 팔아먹고 의회모독 발언과 욕설로 의회의 권위를 땅에 실추시킨 저질행위로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그의 행보가 의회 파행 유지를 원한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긴 그는 얼마 전 한나라당 의총에서 의회 정상화방안의 일환으로 열린우리당이 제안한 의회 내 시청사대책특위 구성에 대해 대안 제시도 없이 극력 반대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사적인 문제가 결코 아니며 피해갈 수도 없는 문제다. <저작권자 ⓒ iwa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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