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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선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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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선생이냐!”

〔벼리의 돋보기〕권위와 존경의 함수관계

벼리 | 기사입력 2007/03/06 [21:46]

“니가 선생이냐!”

〔벼리의 돋보기〕권위와 존경의 함수관계

벼리 | 입력 : 2007/03/06 [21:46]
성남 개발 초창기 그러니까 사립학교인 P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수학선생인 J는 수업시간을 앞뒤로 농담시간과 수업시간으로 뚜렷이 양분해서 진행하는 독특한(?) 교사였다. 농담시간은 점차 낯 뜨겁기까지 한 여자 얘기로 기울어졌다. 더구나 농담시간도 점점 길어지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엔 수업시간 45분 중 30분을 여자 얘기로 채우고 나머지 15분만 수업시간으로 때우는 패턴으로 정형화되어 버렸다.

당시 나는 반장이었다. 내가 반장이 된 것은 힘 있는 부모를 둬서가 아니라 공부를 좀 했던 탓이었기에 요즘 애들 말로 하면 범생이였던 셈이다. 범생이 입장에서 줄곧 여자 얘기로 아까운 수업시간을 허비하는 J에게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우리 반은 2학년 전학급에서 성적이 꼴찌였다. 나는 수업시간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감히 J에게 건의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던 따라서 선생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범생이였던 탓이었다.

마침내 J에게 건의할 용기를 일으킨 사건이 연달아 내게 일어났다. 담임선생인 H가 교감선생으로부터 수업료 납부가 꼴찌니 학생들 독촉하라는 일종의 꾸지람 같은 얘기를 우연히 교무실에 갔다가 듣게 된 것이다. 그러나 H는 종례시간에 두어 번 수업료 못낸 학생들은 부모님께 잘 말씀드리라고 가볍게 얘기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것은 전혀 독촉이 아니었다.

H는 당시 성남이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든 곳인지, 학생들이 얼마나 가정형편이 어려웠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을 나는 반장 일로 H를 찾는 일이 다른 학생들보다 많은데다 다른 선생들로부터 볼 수 없었던 H의 생각과 인품에 반해 자주 따로 찾아뵈었던 탓에 직접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반면 나는 당시 악랄한 선생들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수업료 못낸 학생들을 교무실 앞에 줄을 세워 대기시켜 놓고 한 명씩 불러들여 독촉해 납부날짜를 받아냈고 독촉이 통하지 않으면 뺨을 때리곤 했다. 이 같은 광경은 사립학교인 학교측으로부터 H가 수업료 납부 독촉요구를 자주 받았을 것이고 이로 인해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으리라는 생각을 내게 갖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종례시간이었다. H가 침통한 표정으로 우리 반이 성적이 계속해서 꼴찌라며 말했다. “과목선생들이 열심히 너희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담임인 내가 오히려 담임답지 못해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내게 빗자루를 가져오라며 바지를 걷어 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 빗자루는 다름아닌 매였으며 내게 매를 가져오라고 한 것은 학생들을 대신해서 반장이 담임선생을 매질하라는 뜻이었다. 지금도 이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울컥해진다.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참을 수 없어 엉엉 울고 말았다. 몇몇 학생들도 따라서 울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평소 우직한 성품을 보였던 급우 K가 갑자기 청소함에서 빗자루를 꺼내 들고 나가더니 H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매질하기 시작했다. 꿈쩍없이 매를 맞는 H, 그리고 H를 매질하면서 엉엉 우는 K. 모두들 놀랬다. 그렇게 사제지간이 뒤바뀐 채 얼마 동안 H를 매질하던 K가 빗자루를 집어던지고는 씩씩거리며 제 자리로 돌아왔다. 어느 새 교실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을 겪고나서야 나는 반장으로서 수학시간을 더는 방관해선 안 된다는 각오가 단단히 섰다. 급우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정한 날이 되고 마침내 수학시간이 시작되자 J에게 수업시간 정상화를 당당하게 건의했다. 잘못가는 수학시간의 폐단를 지적했다. 우리는 학생이며 공부하기 위해 학교에 왔다는 논거도 제시했다. 예상치 못한 건의에 놀란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J로부터 되돌아온 것은 선생이 아니라 한 인간의 폭언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곧바로 선생에게 대든 학생을 그만둬선 안 된다는 그의 선동에 따라 일부 급우들의 주먹과 발길질이 이어졌다. 그들은 수업시간마다 J의 여자 얘기를 기다리던 학생들이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나와 소원하던 학생들이었다. 내 건의를 받아들일 수 없고 그것이 학생이 선생에게 대든 경우라고 판단한다면 차라리 제 손으로 매질하면 되는 것을. 학생들의 폭력을 유도한 그는 선생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참으로 비열했다.

범생이의 참았던 울분이 폭발했다. 책상 위에 올라 점프하며 온힘을 실어 그대로 책상을 두 발로 내려쳤다. 낡은 책상이 부서져 버렸다. 울분의 토로였지만 의도적인 행동이기도 했다. 선생과 학생 간의 매개인 공부의 의미를 그 앞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를 선생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명확한 내 의사표시이기도 했다. 그와 나 사이에는 더 이상 선생과 학생으로서 연결할 수 있는 끈이 사라져 버렸다. J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니가 선생이냐!”

J의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울분과 울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J의 그 표정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수업시간을 정상화하던가 아니면 학교를 그만두던가 하라고 냉철하게 말했다. 끝까지 부딪쳐보자는 심사였다. 그저 휘둥그레진 눈망울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교실을 나가 버렸다. 일거에 선생의 권위가 무너져버린 까닭에 결국 그는 더 이상 망신 당하는 자리에서 버티기 힘들었던 것이다.

J는 한 해 더 학교에서 근무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3 수학은 맡지 않았다. 그 동안 그는 나를 몇 차례 불렀지만 무슨 배짱에서인지 나는 그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그가 학교를 떠날 무렵에야 마음이 누그러져 그를 만났지만 그는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그는 내게 선생이 아니라 비열한 인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중2 때 학교에서 내가 겪은 이 사변적인 체험은 다름아닌 학교현장에서 벌어지고 알게 된 권위와 존경의 함수관계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하나의 거울이 되고 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지도층 인사들 곧 권위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존경심이 사라진 사회라는 비판이 일고 있음을 잘 알기에 존경할 만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에 대해선 더욱더 존경심을 갖는다. 

사회지도층 누군가의 행동이나 발언에서 공공선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것을 대할 경우, 절로 고개가 숙여지거나 끄덕거리게 된다. 이것은 내 존경심의 표현이다. 그가 만약 민선이라면 나는 그에게 소중한 내 한 표를 보태줄 의지가 있다. 그러나 이름만 사회지도층 인사인 경우 곧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제 자리에 걸맞는 마땅한 일을 하지 않고 대신 같잖은 처신이나 변명을 보이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이런 경우, 존경심은커녕 배신감은 물론 심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진실로 권위를 갖는 것은 평범한 시민들의 존경심이 짝을 이룰 때다. 이 짝은 그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치에 성실히 답할 때 이루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성남시의회 이수영 의장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그에게 평범한 시민들이 거는 사회적 기대치에 비쳐보면 상식 이하, 수준 이하다. 더 이상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이대엽 시장에 이어 시의회 의장도 그러니 지방자치제도상 성남시 공식사회는 사표(師表)가 서지 않은 셈이다.

이미 이수영 의장의 그릇된 행태에 대해서는 몇 차례 지적한 바 있다. 그런 지적에 대해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기는커녕 고작 지역언론이 때렸다고 같잖은 항변이나 하고 이젠 여러 공인들 앞에서 자신이 내뱉은 말조차 도로 주어 담는 행태를 보여주는 정도이니 전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릇이 문제인지 지금 내딛고 있는 걸음이 문제인지는 본인 스스로 알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나는 그의 말대로라면 이런저런 비판으로 때리지 않을 작정이다. 대신 때리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전혀 아프지도 않을 어떤 침묵을 그에게 전한다. 그러나 그 침묵은 내가 중2 때 겪은 일에 대한 연상과 연상된 그 일이 지금 이수영 의장이 보여주는 행태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내 물음과 무관하지 않다. 이 물음만큼은 그에게 전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 글에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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