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ACCEPT_ENCODING in /home/inswave/ins_news-UTF8-PHP7/sub_read.html on line 3
문제는 줄탁동시의 ‘조건’이다:
로고

문제는 줄탁동시의 ‘조건’이다

〔벼리의 돋보기〕줄탁동시?

벼리 | 기사입력 2007/03/10 [23:15]

문제는 줄탁동시의 ‘조건’이다

〔벼리의 돋보기〕줄탁동시?

벼리 | 입력 : 2007/03/10 [23:15]
지난 7일 한나라당 안계일 의원이 시의회 본회의 시정질문을 통해 ‘줄탁동시’라는 말을 소개했다. 안 의원은 줄과 탁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추어 그 의미를 풀이했다. 그러나 안 의원은 줄탁동시의 의미를 제대로 풀이하지 못했다.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탄생하기 위해서 줄! 안에서는 병아리가 쪼고 탁! 밖에서는 어미가 쪼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전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안 의원의 풀이는 ‘동시’라는 타이밍 요소를 빼먹고 풀이한 셈이다. 줄탁동시는 줄탁과 동시로 구성된 말이어서 둘 중 어느 하나를 빠뜨려서는 그 의미를 읽어내는 일, 차용해 활용하는 일이 곤란해진다.
 
▲ 지난 7일 제142회 성남시의회 임시회에서 시정질의를 하고 있는 한나라당 안계일 의원     ©성남투데이

줄탁동시는 선가(禪家)에서 유래한다. 선가의 공안을 모아놓은 벽암록(碧巖錄) 제16칙에는 “어떤 스님이 경청스님에게 묻기를 학인(學人)이 줄을 하겠으니 스님께서는 탁을 해주십시오”라고 했고, 제7칙에 대한 평창(評唱)에는 “법안스님이 줄탁동시의 대기(大機)가 있었고 줄탁동시의 대용(大用)을 갖추었다”라고 했다.

같은 의미로 줄탁신기(迅機)나 줄탁지기(之機)라는 말도 쓰인다. 전자는 타이밍이라는 요소를, 후자는 기틀(機用)이라는 요소를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줄탁동시는 사회적 담론으로 차용, 활용하는 경우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조건’을 강조하는 말이다. 의기투합할 수 있는 기틀이 어느 한 쪽이 없거나 또는 의기투합할 수 있는 적절한 때(인연, 계기)가 아니면 줄탁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 차용된 줄탁동시가 언어적으로 꽃 피운 선가에서 어떤 의미 맥락으로 쓰이는지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역시 선가의 또다른 공안집인 무문관(無門關) 제17칙에 나오는 것인데 줄탁동시가 적용되고 그 의미가 왜 중요한지를 다잡을 수 있는 대표적인 경우로 손꼽을 수 있다.

<(남악 혜충)국사(國師)가 시자(侍者)를 세 번 불렀다. 시자는 세 번 대답했다. 국사가 말했다. “(너는) 내가 너를 저버렸다 하겠지만 실은 네가 나를 저버렸다.”(무문관 제17칙 國師三喚)

이 공안에 대해 무문스님은 이렇게 평했다. <(나) 무문은 말한다. “국사는 세 번이나 불러 혀가 땅에 떨어질 지경인데, 시자는 세 번을 수굿수굿 대답했다. 국사는 나이가 들어 쓸쓸한 마음에 ‘소머리를 눌러 풀을 뜯게’ 했는데 시자는 이를 받들지 못했다. 좋은 음식도 배부른 사람에게는 소용없는 법!”

무문의 평에 따르면 혜충국사는 때와 기틀을 알아보지 못해 무리를 한 셈이다. 익지도 않은 알을 탁! 쪼아버렸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타이밍을 모르고 너무 일찍 쪼아버린 것이다. 시자가 세 번이나 수굿수굿 대답한 것은 병아리가 줄! 쪼지 않았다는 말이다. 국사가 ‘소머리를 눌러 풀을 뜯게’ 했는데 시자는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아) 이를 받들지 못했다는 평은 이런 뜻이다.

한나라당 안계일 의원은 나름대로 줄탁동시의 의미를 풀이하며 “줄탁동시를 거울삼아 집행부와 시민의 대표기관인 시의회의 선배·동료의원 모두가 지혜를 모아 100만 성남시민의 삶의 향상을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함께 고민하고 서로 협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말이야 좋은 말이고 그가 여야를 넘어 신사로 평가받고 있어 진심이 배어 있다고는 보인다.

그러나 말이 전부가 아니며 진심 역시 전부가 아니다. 말이 말로서 받아들여지고 진심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조건’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안 의원이 줄탁동시를 소개한 취지를 깎아내리거나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가 풀이한 의미를 보충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이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점에서 안 의원은 집행부와 시의회의 줄탁동시가 가능한 조건을 놓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민선3기 이래 폭정과 실정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처지에 놓인 이대엽 시장, 다수당의 횡포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나라당의 반의회주의 행태야말로 줄탁동시를 불가능하게 하는 핵심요인이 아니겠는가. 어느 쪽이 ‘줄’이고 어느 쪽이 ‘탁’인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렇다. 문제는 줄탁동시가 아니라 줄탁동시의 ‘조건’이다. 이 조건이 ‘깜냥’의 문제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줄탁동시! 참으로 한나라당 안계일 의원이 좋은 말을 했다.

 
  • ‘남’이란
  • 잘 늙는다는 것
  • 의회독재를 경계한다
  • 플라톤 왈, ‘나보다 못하는 거시기들’
  • 성남의 한계를 씹는다
  • 여기가 섬이다. 자, 뛰어보라!
  • 진정성이 있냐고 물으면
  • 시립병원투쟁 제안?
  •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글까
  • 2008년 7월 8일 국치일(國恥日)
  • 촛불이 꺼질 수 없는 이유
  • 박권종의 반란 또는 삑사리의 비밀
  • 조중동만이 조중동?
  • ‘모두의 정치’를 향한 위대한 시작
  • “무당 찾아 굿도 하라고 그래!”
  • 총선, 한나라당에 역풍분다
  • 이명박정부 심판론, 총선 쟁점화
  • 대운하 찬성하십니까?
  • 386, 386정치인을 아십니까?
  • 1% 부자 내각이라니!
  • 많이 본 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