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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자랑하지 마세요”

〔벼리의 돋보기〕시청 앞 잔디밭에서 왠 공연이요?

벼리 | 기사입력 2007/04/08 [21:56]

“너무 자랑하지 마세요”

〔벼리의 돋보기〕시청 앞 잔디밭에서 왠 공연이요?

벼리 | 입력 : 2007/04/08 [21:56]
4월 4일 점심 무렵 시청 구내에 있는 잔디밭. ‘반짝공연’이 있었습니다. 서울서 열리는 이대엽 시장의 재판을 취재하기 위해 일행이 모는 차를 기다리고 서 있던 터라 그저 귀를 마다하지 않는 정도였죠. 공연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공연자들은 전자현악기를 다루는 젊은 친구들이었습니다.

▲ 성남시와 성남문화재단이 주최한 봄향기 가득한 한낮의 콘서트에서 전자현악 그룹 포엠이 연주를 하고 있다    © 조덕원

최홍철 부시장과 마주쳤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참이었나 봅니다. 반짝공연을 화제삼아 잘 봐달라며 광을 파시더군요. 공연장 인근에 서 있었으니 관객으로 비쳐질 수 있었겠죠. 이 점에서 공연을 화제삼는 것은 이해되는 일이긴 합니다만 제 속은 아니죠. 우연히 공연장 인근에 서 있었을 뿐이니 화제의 기반인 의사소통 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요.

화제를 넘어 광을 파는 일은 당연히 가슴에 와 닿는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동상이몽’이었다는 얘기죠. 여기에 예술적이거나 문화적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나름의 언어도 없지 않은 터라 약간 튀는 심리 같은 것이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언론적인 시각에서도 일단 한 번은 접고 보지 않으면 안 되었고요.

우선 이왕지사 하는 거 시청 잔디밭이 아니라 거리로 나가는 방향이었으면 좋겠다고 대꾸해주었습니다.

4월 한 달 시청 잔디밭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치러지는 이 반짝공연에 대해 어떤 ‘선입관(?)’을 가진 탓이었습니다. 올해 예정된 것으로 알려진 시의 업무가 아니어서 이 시장 재판으로 어수선한 시청 분위기를 어찌 해보려는 의도가 있는 것도 같고 시청 인근 주민들, 샐러리맨들이 일부 관객이 된다고 해도 ‘추가적인’ 의미 밖에는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국 시청 공무원들을 위한 잔치라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거리 개념에 대한 문화비평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거리에는 보다 많은 문화향유의 기회를 누려야 할 시민이 있거든요. 거리 개념이 지닌 다양한 함의도 있죠. 고정되고 상설화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우리 시대가 지향해야 할 가치인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 거리의 특성상 공연자와 관객의 거리를 좁히는 좋은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점, 거리가 지닌 최고의 잠재력인 역동성의 도출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술의 원천이 거리에 있다고 고백하는 예술관을 가진 예술가들도 있습니다. 예술작품이나 예술장르,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고 그것들이 놓이게 되는 사회적 환경과의 관계를 기성세대의 규정대로 주장하는 예술가들처럼 답답한 ‘판박이들’은 없습니다. 이들은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을 밥벌이 수단으로만 삼는 기술자들이라 불러 마땅하겠지요.

▲ 점심식사 후 한낮의 콘서트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공무원들.     ©조덕원

한 가지 더 대꾸를 했습니다. 공연에 대한 반응을 점검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관료들은 자기가 어떤 일을 벌이게 되면 그것을 자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광을 파는 일에 능숙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 일이 진행되는 어떤 단계에서나 일의 전체과정을 꼼꼼히 지켜보며 수정 보완하거나, 특히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는 매우 취약한 경향을 보입니다. 광을 파는 것과는 지극히 대조적인 현상입니다. 점검을 언급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였습니다.

공연에 대한 반응이란 무엇보다도 문화향유능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빵 다음에 문화’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 그들이 지닌 문화향유능력은 편협된 것이거나 수박 겉핥기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는 일상생활 속에 늘 친숙하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죠. 예술혁명으로 이미 예술이 미술관이나 공연장에서의 특별한 일이라는 인식은 폐기된 지 오래입니다. 삶과 병행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자 문화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죠.

문제는 인식과 향유의 괴리를 깨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의 경험을, 그 느낌을 솔직하게, 다양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화를 문화로서, 예술을 예술로서 보지 못하게 하는 인식의 덫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화향유능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느낌이죠. 사유능력으로서의 이해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일 뿐입니다.

체험컨대 관료들은 느낌을 솔직하게, 다양하게 드러내는 일에 매우 서툰 편입니다. 사실을 토대로 하는 행정에 너무 익숙한 탓일까요? 그러나 예술이 그러하듯 문화향유능력이라는 것은 가치와 가치평가를 토대로 하는 것입니다. 지방자치 시대에 주민밀착적인 행정을 펼치기 위해서는 행정도 예술과 문화향유능력의 근본원리인 가치의 문제, 가치평가의 문제에 어느 정도는 깨어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전부는 될 수 없지만, 이왕지사 반짝공연이 공무원들을 기본 대상으로 치러진 이상 그들의 머리가 아닌 ‘몸의 앎’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공연을 본 소감을 밝히고 공연 평가를 하는 자리를 한번 마련해보는 것은 어떠할는지. 번거로우면 간부회의를 이용하든가. 이른바 나쁜 취미와 좋은 취미를 누가,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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