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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실로 가는 모든 길은 막혀 있다

〔벼리의 돋보기〕이것은 화분이 아닌 금기, 협박, 폭력이다

벼리 | 기사입력 2007/07/04 [21:53]

시장실로 가는 모든 길은 막혀 있다

〔벼리의 돋보기〕이것은 화분이 아닌 금기, 협박, 폭력이다

벼리 | 입력 : 2007/07/04 [21:53]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시를 방문, 기념식수한 동백나무가 분노한 5.18 회원 등이 줄기에 구멍을 뚫거나 제초제를 넣어 죽기 일보직전에 놓였다. 광주시가 영양수액을 공급하고 있으나 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10일 죽기 일보 직전에 놓인 사진과 함께 연합뉴스가 전한 <고사 직전인 광주시청 '전두환 나무'> 소식이다. 사진의 ‘전두환 나무’는 그 모습이 그야말로 끔찍했다. 같은 소식을 자세하게 전한 한겨레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광주시청은 줄기에 영양수액을 주사하고 ‘해코지’를 막으려 애썼다. 그러나 현재 ‘전두환 나무’는 90% 가량 고사한 상태다. 5·18 부상자 김아무개씨는 “경남 합천에서 일해공원을 만든다는 얘기를 들으며 나무가 더 미워졌다”며 “광주에는 전두환의 흔적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 소식이 준 충격이 컸던지 전국지 논설위원들도 칼럼을 통해 그 의미를 살폈다. 경향신문 김택근 논설위원은 ‘부처님 오신 날’ 다음 날인 5월 24일 이렇게 썼다.

“‘전두환 나무’가 ……광주에서 ‘전두환’이라는 이름으로는 서 있을 수 없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었으면 그만이다. 동백이 죽을 일은 아니다.”

이보다 앞선 5월 11일 서울신문 진경호 논설위원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나무를 인격체로 보고 그 자체를 즐겼던 조상들과 달리 나무를 자신의 힘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긴, 비천한 권위주의가 동백나무의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이 물러난 지 20년. 한쪽에선 그의 호를 딴 공원이 지어지고, 다른 쪽에선 그가 심은 나무를 말려 죽인다. ……세상과 주인을 잘못 만난 그가 안쓰러울 뿐이다.”

그 살핌이 와 닿는 의미들이다. 그렇다. 나무가 무슨 죄가 있는가. 그만큼 요즘 사람들의 심성이 사나워질 대로 사나워지고 삐딱해질 대로 삐딱해진 것이다.

풀이나 나무를 인격체로 보고 이에 걸맞게 대한 것은 우리네 오랜 전통이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자신 주변에 있는 풀이나 나무를 살피면서 그 이치를 깨닫는 공부법인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자세와 사유가 있었다.

불가에선 사람은 물론 돼지나 소, 개미와 같은 유정물(有情物) 뿐 아니라 풀이나 나무와 같은 무정물도 불성이 있다고 가르친다.

일부 예술비평가들은 ‘식물성’이라는 미학적 개념으로 서구적 세계관이나 문화의 폐해를 비판하며 이 식물성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에 큰 주목을 돌리기도 한다.
 
▲ 시청앞 인도에 놓여 있는  대형화분들은 다시는 이 자리에서 집단적 항의를 할 수 없다는 기표, 이대엽 시장에게 항의하는 시민들에 대한 금기, 협박, 폭력의 시각적 장치이자 바리게이트다.     © 성남투데이

성남시청 앞 인도에는 어린이 키 높이의 대형화분들이 길 한복판을 막고 늘어서 있다. 어디에서도 이런 화분들은 본 적이 없다. 오직 성남시청 앞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길을 이용하는 모든 보행자의 통행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서 또 설치 당시 크레인이 동원되어 사람의 힘으로는 꿈쩍도 않는 화분이라는 점에서 대형화분들은 화분이 아닌 장애물이다.

대형화분들이 설치된 것은 올해 초 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가 또 다시 이대엽 시장의 무책임한 태도로 예정된 시립병원 설립이 불투명해지자 바로 이 길바닥 위에서 천막을 치고 전개한 농성이 끝난 직후였다. 대형화분들은 다시는 이 자리에서 집단적 항의를 할 수 없다는 기표, 이대엽 시장에게 항의하는 시민들에 대한 금기, 협박, 폭력의 시각적 장치이자 바리게이트다.

그렇다고 이 길에서 천막농성이 사라졌을까.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선 대형화분들이 끝나는 지점의 길바닥에서 이런저런 항의이유들을 가진 천막농성들이 더 많이 이어지고 있고, 심지어 대형화분들 사이에선 그 틈의 공간을 활용한 릴레이 시위도 더 많이 이어지고 있다. 성남시청 앞 인도에 꿈쩍도 않는 대형화분들이 늘어선 것은 오히려 금기의 속성이 ‘위반’에 있다는 역설이 진실임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주지하는 대로 성남시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장실로 통하는 모든 통로마다 철문과 셔터로 ‘철옹성’을 구축해 놓고 있다. 걸핏하면 시민의 세금으로 그 수고를 지불하는 용역회사 직원들은 물론 시민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일해야 할 공무원들마저 시장실 수호에 나서는 ‘경비병’으로 내몰리고 있다.

실은 성남시청 앞 인도에 대형화분들이 늘어서기 전에 그 오른편에는 시민들의 항의 행동이 잦아지자 이를 금기하기 위해 화단을 꾸미고 또 더 넓히는 일이 있었다.

▲ 성남시는 민원이 있을 때마다 철제 셔터를 내리고 이대엽  시장실로 향하는 통로를 이중 삼중으로 폐쇄조치를 내려 비난여론이 일고 있다.     ©성남투데이

따지고 보면 이런 일들은 결국 이대엽 시장을 수호하기 위한 조처들이다. 민선지방자치 시대에 시장이 시민들을 찾아나서기는커녕 오히려 시장실로 통하는 모든 통로를 막고 시청 앞 길마저 막는 이 희극적인 사태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시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존경받는 민선시장이 아닌 역사의 단죄를 받아 사라진 전두환과 같은 ‘독재자의 초상’,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독재자의 초상 앞에 맹목적인 충성으로 일관하는 일부 공무원들의 ‘개의 초상’이 추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시청의 고사 직전인 ‘전두환 나무’와는 달리 성남시청 앞 인도에서  금기, 협박, 폭력의 장치들로 내몰린 꽃과 풀, 나무들이 뽑혀나가지 않는 것은 왜 일까. 의미심장하다.

성남에 박물관이 생기고 지금의 지방자치 현실을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로 돌릴 그런 지방자치가 이루어진다면 성남시청 앞 인도에 놓인 대형화분들 중 하나쯤은 독재자 그리고 그의 개의 초상을 읽어낼 유물로서 보존·전시되었면 하는 생각이 있다. 그 때 다음과 같은 친절한 안내문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민선3,4기 시장은 3선의 국회의원까지 지냈으나 성남을 이끌어갈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대엽씨였다. 시민과의 접촉마저 꺼려한 그는 시장실로 통하는 모든 길을 가로막았다. 시장실이 있는 시청건물은 모든 통로마다 철문과 셔터가 설치되었으며 시민들의 항의가 잦은 시청 앞 길은 화단은 물론 크레인을 동원해야 설치할 수 있는 대형화분들이 늘어섰다. 여기에 전시된 대형화분은 당시의 것이다. 이 유물은 시민들의 각성과 힘으로 성남의 지방자치가 정상궤도를 되찾은 뒤 시민들이 민선3,4기의 반시민적인 지방자치 현실을 고발하고 다시는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으려는 뜻 깊은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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