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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숭배사회의 기형아, ‘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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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숭배사회의 기형아, ‘신정아’

〔벼리의 돋보기〕신정아의 가짜 학위 소동

벼리 | 기사입력 2007/07/14 [08:31]

학벌숭배사회의 기형아, ‘신정아’

〔벼리의 돋보기〕신정아의 가짜 학위 소동

벼리 | 입력 : 2007/07/14 [08:31]
어쩌면 장 보드리야르 표현대로 우리는 오리지날은 없고 사본이 지배하는 이른바 ‘시뮬라크르(simulacre)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오리지날이 아닌 ‘재현(representation)’이 삶을 대체하는 ‘스펙타클(spectacle)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기 드보르는 말했다. 그렇다. 진짜와 짜가의 구분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살아 있는 체험 대신 꾸민 말과 이미지들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삶이 위기에 처했다.

이 원본과 사본의 구분이 쉽지 않다는 진술, 한 걸음 더 나아가 원본의 사라짐, 사본의 전면 진출이라는 진술, 이 두 진술은 우리 시대의 암울한 상황 디스토피아를 지시한다. 유토피아를 꿈꿔? 쨔샤, 꿈 깨라! 그렇다. 진짜가 아닌 짜가가 판치기 때문이다. 진품이 아닌 짝퉁이 판치기 때문이다. 그 자리,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어 빛을 발하는 사람, 태양의 빛처럼 세상을 또렷히 증거하는 살아 있는 체험을 중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화장실(선거)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너무 다르다, 화장실 나와선 의무로서 받아야 할 견제와 감시를 거부하는 정치인. 나? 가진 것은 돈 밖에 없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느냐, 사람과 법을 농락하는 재벌총수. 사무원(私務員)으로 전락한 공무원. 부와 권력의 나팔수, 그 글쓰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은 사이비기자.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제 체험, 제 생각으로 말하지 않는 우매한 떼거리. 대체 짜가의 끝은 어디일까.

마침내 짜가의 극단이라 말해도 좋을 사례가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신정아’의 짜가가 그것이다. 철없는 한 젊은 여성이 미술계는 물론 세상을 저  마음대로 가지고 논 것이다. 살아 있는 삶을 대신한, 미술계에서 쓰는 비평용어를 차용하자면 ‘완벽한 재현’으로 미술계와 이 세상을 완벽하게 농락한 것이다.

‘신정아’의 짜가가 극단적 사례인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그녀가 미국에서 받았다는 학사, 석사, 박사 학위 모두 가짜였다는 사실, 가짜 학위로 금호·성곡 등 유명미술관의 큐레이터, 미술대학 교수로 지냈다는 사실, 시대를 성찰하는 진지한 주제에 창작으로 화답하는 세계의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광주비엔날레의 의미와 가치를 완전히 추락시켰다는 사실 등. 이러한 사실들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사례라는 점에서 그녀의 짜가는 극단적이다.

패러디적 관점에선 신정아의 짜가는 통쾌한 일이다. 그녀의 짜가는 우리 사회의 학벌숭배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숭배는 나쁘니까. 반드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들어 내니까. 신정아 같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기형도 만들어내니까. 덕분에 우리는 학벌숭배사회에 또 다른 짜가들이 있다는 의심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학벌숭배사회의 부실함, 그 허구를 알게 되었다. 이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자. 신정아의 짜가는 학벌숭배사회에 대한 당당한 저항이 아니라 기형적인 반응이라는 점에서 병리적인 것이다. 모든 질병은 나쁘다. 사실 신정아의 짜가가 가능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학벌숭배사회의 벽이 워낙 두터워 개인적인 수준에선 그 벽을 뚫고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 대신 얼마든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벽을 뚫고 나아가려는 시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가짜 학위라는 농락의 방법으로 학벌숭배사회에 ‘공모’한 셈이다.

우리 사회, 학벌숭배사회에서 학벌은 현대판 신분세습의 우선적인 기준이다. 엄연한 현실이다. 이명박 후보처럼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조차 자녀교육을 위해 ‘위장 전입’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천박한 부자들은 ‘머니 게임’을 통해 학력차별에 나선다. 세계에 둘도 없는 이상한 나라. 그러니 이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수준에서 헤치고 나아가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 수준의 대응이 뒤틀릴 가능성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실로 우리사회, 학벌숭배사회의 벽은 두텁다 못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기억하는가. 최근 박근혜 전 대표의 ‘입’에서 이명박 후보로 말을 갈아탄 전여옥의 망언. 지난 2004년 ‘고졸 대통령’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그 일말이다. 고졸을 두 번이나 대통령으로 맞이한 민주공화국에서 “다음 대통령은 대학 나온 사람이 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 절대망언이었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조차 고졸이라고 폄하하는 그녀의 발언은 우리 사회가 그야말로 세계에 둘도 없는 학벌숭배사회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녀의 발언이 절대망언인 이유이기도 하다.

전여옥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학력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면 좋겠다”다는 의미라고 풀이한 바 있다. 대통령이 된 노무현이 학력 콤플렉스가 있다? 고졸임에도 사법시험에 패스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이 되기까지 배움의 연속을 보여준 노무현 아닌가. 자신의 발언에 대한 그녀의 풀이는 자기극복의 길을 걸어온 한 인간의 진지한 삶에 대한 최악의 모독 발언이다. 그녀의 입이 한나라당의 ‘입’이라는 점에서는 한나라당이 학력이 딸리는 이들은 결코 대변하지 않는다는 적나라한 고백인 셈이다.

전여옥의 풀이가 망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굳이 당파심에서 비롯된 그녀의 계산된 의도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 학력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콤플렉스에 대한 아주 천박한 그녀의 이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선 학벌숭배사회라는 담론이 펼쳐지기만 하면 무작정 ‘학력 콤플렉스’로 펀치라인을 날리는 일부 보수언론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하긴 신정아의 짜가가 알려지자 그들은 예의 ‘학력 콤플렉스’를 떠들어대고 있는 중이다.

빙신들! 이 세상에 콤플렉스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모든 결핍은 심리내적인 반응으로서 콤플렉스를 낳는다. 가령 벼리처럼 아버지를 잃었다고 치자.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그 상처에 시달린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하지 않고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중3인 우리 큰 애는 제 친구들에 비해 키가 작다. 키 얘기만 나오면 기가 죽는다. 그 때 해주는 말, “아버지는 고교 때 키가 컸다.” 얼마나 많은 콤플렉스들이 있는가. 문제는 콤플렉스에 있지 않다. 치유에 있다. 어떻게 치유되느냐에 있다.

학력이 딸리면 학력 콤플렉스가 생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학력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긍정적인 치유라면 열심히 공부하고 돈을 모아 진학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진학 대신 남 달리 열심히 공부해서 자기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치유로는 학력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학력과는 무관하게 자유로운 자기공부의 삶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

학력 콤플렉스에 대한 잘못된 반응 따라서 잘못된 치유는 “배운 놈들은 다 그러냐”며 자기보다 학력이 높은 사람에 대해 이유 없이 반발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배운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자칫 경거망동했다간 개망신 당한다. 학력을 속이는 방법도 있다. 신정아처럼. 의외로 우리 주변엔 이 학력을 속이는 사람들이 많다. 언론을 통해서도 가짜 학위소동은 심심치 않게 소개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락 의원의 경우는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무식한 놈이라 고백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그의 고백을 기억하는가. 초등학교 졸업을 고등학교 졸업으로 속인 것은 가짜 학위가 판치는 세태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 나쁘다. 이런 비판보다 더 의미 있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그의 사례는 가난으로 인해 채우지 못한 학력, 그로 인한 무학의 부끄러움을 그가 학벌숭배사회의 견고한 벽 앞에서 끝내 지우지 못하고 스스로를 무너뜨렸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하는 것이다. 학벌숭배사회의 폐해, 그 심각성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핵심을 꿰뚫어 말하면 학력은 ‘유도된 필요성’이다. 단, 학벌숭배사회에서만이다. 학벌숭배사회가 아니라면 사람이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필요성 가운데 한 가지로 그 사회적 지위가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학벌숭배사회라고 해도 이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자기 삶에서 터득한 쓸모 있는 지식과 사유를 중시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유도된 필요성이며 현대판 신분세습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학력은 ‘권력’이다. 모든 권력은 나쁘다. 따라서 학력은 끊임없이 비판되고 분쇄되어야 한다.

대체 학력이 자연스러운 욕구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대체 학력이 (의식주나 성과 같은) 본능적인 욕구, (우정, 사랑, 자기실현, 자기표현, 깨달음과 같은) 인간적인 실현가능성을 위한 욕구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대체 학력이 인간의 본성적이고 인간적인 삶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며칠 전 무지 좋아하는 카수 김윤아가 신문에 이런 얘기를 남겼다. 역시 김윤아답다. 함께 나누고 싶다.

“엘리트 코스의 혹독한 교육을 받고 자란 어린이가 어쩌면 성인이 되어 부와 권력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아이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누리며 마음 깊은 곳까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적어도 스스로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인간이 되도록 독려하는 교육, 그것은 정말 불가능한 형태의 교육인가요? 인간의 가치를 수치화해서 모든 학생들에게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 이외의 목표는 상상하지도 못하도록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는 우리 사회와 가정이 가끔은 너무 슬프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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