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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피랍 동포들이 적이라니!

〔벼리의 돋보기〕 탈레반의 ‘말의 전쟁’

벼리 | 기사입력 2007/07/28 [03:30]

세상에, 피랍 동포들이 적이라니!

〔벼리의 돋보기〕 탈레반의 ‘말의 전쟁’

벼리 | 입력 : 2007/07/28 [03:30]
‘피랍된 동포들은 탈레반에게 누구인가’
‘탈레반은 어떻게 ‘말의 전쟁’을 수행할 것인가’


탈레반에 의한 동포들 피랍 소식을 들었을 때 직감적으로 던진 두 가지 질문이다. 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두 가지 의문을 묶는 공통점은 ‘탈레반’이다. 탈레반을 알아야 우선 해결과제인 무사귀환을 이뤄낼 수 있고, 그들이 반정부·반외세 무장투쟁조직이라는 점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탈레반을 알아야 무사귀환을 위한 수단들을 강구, 선택, 배치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위험한 상대를 마주쳤을 때는 침착해야 한다. 유의미한 것은 구체적인 상황을 직시하는 것,  주체의 현실적인 대응 마련이라는 실천적 맥락이다. 불시에 동포들 피랍을 자행한 탈레반 앞에서 함부로 내 생각, 우리 생각을 내세울 게 결코 아니다. 이는 하수들이 하는 짓이다. 그들을 바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원칙을 위배하면 그들은 얼마든지 이를 활용, 우리를 가지고 놀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무장투쟁의 연속된 형태로서 ‘포염없는 순수전쟁’을 치루고 있다. 순수전쟁이란 이상적인 전쟁형태인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키려는 전쟁(不戰而屈人之兵)’의 도착적 형태일 뿐이다. 이 도착에 말려드는 한 무사귀환은 더욱더 어렵게 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앞서 ‘즉각 철군’ 주장부터 내세우는 부류들에 안티를 걸은 바 있다. 피랍 동포들이 무사귀환을 위해 우리의 지혜와 힘을 모으자는 주장도 했다. 실제 탈레반이 피랍된 동포 석방조건으로 주장했던 게 뭔가. 즉각 철군이 아닌가. 누구 좋으라고! 급기야는 배형규 목사의 잔혹한 살인까지 자행했다. 그렇다. 사태가 엄혹하다. 탈레반을 바로 봐야 한다.

이런 실천적인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는 한, 지금까지 나온 내·외신 보도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7일 탈레반 대변인으로 자처하는 아마디의 발언이다.

“여성 인질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협상타결 전에 먼저 석방할 뜻이 없다.”
“인질이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다국적군과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편이며, 이들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


그렇다. 내 생각, 우리 생각을 내세우는 일부의 부류들이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가하게 즉각 철군을 주장하고 있을 때 탈레반은 피랍 동포들을 ‘적’으로 간주했다. ‘피랍된 동포들은 탈레반에게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인 셈이다. 그들은 동포들을 그들의 적이기 때문에 납치한 것이다!

분명해졌다. 탈레반은 피랍된 동포들을 그들의 적으로 보고 있다. 이 점에서 그들로부터 사라진 것들이 읽혀진다. 인간의 지구촌에서 필수윤리인 인도주의, 정치인이나 군인이 아니어서 편 개념을 적용할 수없는 민간인 또는 양민의 의미,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생명의 존재론적 가치,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고려한 차이의 윤리 등.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반외세·반정부 무장투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제대로 묻지 않았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적나라하게 입증하는 사례가 있다. 임현주씨를 ‘포로’로서 ‘말의 전쟁’에 도구로서 내몬 천인공노할 만행이 그것이다. 임현주씨는 그들의 조국 아프가니스칸에서 헌신적인 자원봉사를 오래 동안 펼쳐온 사람 아닌가. 보통사람이 아니다.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고귀한 인간 아닌가. 이런 임현주씨에 대한 탈레반의 만행은 묵과하기 힘들다.

이 점, 탈레반이 어떤 투쟁조직인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최소한 그들은 투쟁의 윤리와 정당성을 제대로 갖춘 무장투쟁조직 같지는 않다. 반정부·반외세투쟁에서 역사상 사회적·정치적·윤리적 정당성을 갖는 투쟁조직들이 있어 왔다. 중국혁명, 베트남혁명의 주역들이 그랬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이 치열하게 진행 중인 멕시코의 사빠띠스따가 그렇다. 탈레반은 이들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임현주씨의 사례는 탈레반이 순수전쟁의 한 가지 형태이기도 한 말의 전쟁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말의 전쟁은 경쟁적으로 나서는 언론사들을 활용해 말로 치고 빠지고 수시로 말을 바꾸면서 그들의 적을 교란, 고갈시키는 것이다. 연이은 언론 오보사태에 갈팡질팡하는 우리. 우리를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탈레반은 말의 전쟁을 현실의 무장투쟁보다 더 중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 가지고 장사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따라서 그들의 말의 전쟁에 우리도 말의 전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들의 말의 전쟁은 나쁜 말의 전쟁이다. 단적인 사례로 석방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고 임현주씨가 말하지 않는가. 이는 스스로를 비적떼로 만드는 짓이다.

말의 전쟁에서 탈레반에게 다르게 비쳐질 수 있는 애타는 가족들의 모습, 이야기는 그만 보도될 필요가 있다. 우위를 점하는 말들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다. 국·내외에 그들의 만행에 대한 비판여론을 시급히 조직할 필요가 있다. 협상에 크게 보탬이 될 것이다. 지금 시기 피랍 동포들의 무사귀환보다 우선적이고 지고한 가치, 목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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