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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전환은 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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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전환은 힘든가

〔벼리의 돋보기〕대선과 화려한 휴가·남북정상회담

벼리 | 기사입력 2007/08/10 [10:09]

사유의 전환은 힘든가

〔벼리의 돋보기〕대선과 화려한 휴가·남북정상회담

벼리 | 입력 : 2007/08/10 [10:09]
첫째, 사유의 대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사유한다. 말하자면 특정한 ‘인식틀’ 안에서 대상을 사유한다. 이 경우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는 사유, 관성에서 벗어나는 사유는 어렵다. 이 경우, 결코 특정한 인식틀로서 포착되지 않는 ‘외부’는 사유되지 못한다.

둘째, 자신의 사유가 나름대로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이 진리 추구행위에서 자신의 의지나 뜻을 대상에게 투영한다. ‘사유의 자기중심주의’라 할 만하다. 따라서 그 의지나 뜻이 문제시되어야 한다. 사유의 자기중심주의는 권력의지나 사유의 무능력이 빈번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경향은, 정말 안 좋다고 말해야 할 이 두 가지 경향은 상투적으로 사유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이 같은 ‘사유의 부정적 경향’은 사회적으로 보자면 언론계, 지식계, 정치계, 노동계, 기업계에서 극심하다. 이 ‘부정적인 사회적 현상’이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인 것도 사실이다.

<화려한 휴가>가 시민들 사이에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자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 사이에서 지극히 경계하는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핵심은 ‘시기’를 문제 삼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정권교체기에 <화려한 휴가>가 극장가를 강타하느냐, 왜 대선용 깜짝쇼인 남북정상회담을 여느냐는 것이다.

시기를 문제 삼는 이 같은 생각은 특정한 ‘인식틀’ 안에서 대상을 생각하는 관성적인 사유방식, 정권교체에 방해가 된다는 권력적인 사유방식의 산물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그것은 특정한 사회현상을 탐구대상으로 포착하고 이를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성실하게 읽어내긴커녕 오히려 권력의지를 들씌우고 탐구의 무능력으로 덮어버리는 천박함 그 자체다.

<화려한 휴가>의 경우 이 영화가 갖는 진실과 힘은 결코 얄팍한 이해득실 계산에 따른 정치권의 이런저런 반향에서, 하다못해 기존 인식틀에 따라 영화를 재단하는 고급스러운 평자들의 평가 속에선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라스트 신을 통해 이 영화의 사회적 메시지인 집단적 기억을 관객 모두에게 요구한 박신애 역의 이요원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에서 발견된다.

“시사회장에서 처음 영화를 보면서 초반에는 이요원만 보였어요. 영화에 참여한 배우로서 말이죠. 그런데 점점 신애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요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신애만 남아 있더라고요.”(8월 6일치 OSEN과의 인터뷰)

이는 이요원이 배우로서가 아니라 ‘관객’ 으로서 감동 받았다는 생생한 발언이다. 이요원은 또 인터뷰를 통해 관객으로 영화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쏟아졌어요”라고 고백했다. 이요원의 말보다 이 영화가 전하는 진실과 힘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말이 있을까.

이요원의 말은 내가 '학살의 잔혹함에 전율하다'라는 글에서 “당장 총을 들고 스크린 속으로 뛰어들어 군인들과 맞서 싸우고 싶었다. 이 잠재적인 강렬한 감응이야말로 <화려한 휴가>를 본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썼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녀의 눈물과 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반응은 전적으로 이 영화가 갖는 진실과 그 힘에 기인하는 것이다.

“저는 영화를 하면서 뭔가 얻은 게 있었어요. 일종의 자신감 같은 거죠. 사실 <화려한 휴가>에서 제가 보여준 특별한 캐릭터는 없어요. 비슷한 인물 비슷한 연기를 했지만, 사람들은 제가 처한 상황 때문에 저를 다르게 봐주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많은 걸 깨달았어요. 연기 변신을 통해 극을 끌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 극 속에 녹아드는 것이 한층 더 중요하구나 생각했죠.”

이요원의 말은 이 영화가 갖는 진실과 힘이 원천이 ‘극 속에 녹아드는 것’ 즉 ‘체험’에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배우로서나 관객으로서나 예외는 아니다. 이런 체험적 시각에서 비로소 나는 관객으로서 영화를 본 후 5·16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간주한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에게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할 수 있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보여준 천인공노할 ‘학살’과 그 잔혹함이 전두환이 이끄는 반란군들의 ‘5·18군사쿠데타’로 자행된 것이며 그 원조는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다. 5·16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간주한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는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당한 광주시민들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발언 취소와 대국민사과를 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의 경우는 더 분명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며,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것은 남의 국민들, 북의 인민들 각각의 이익이자 공동의 ‘민족적’ 이익이다. 아니, 분단을 끝장낼 ‘민족사적’ 소망이자 대의다. 남도 북도 예외일 수 없다. 정권적 차원에서 남북의 이해가 같든 다르든, 시기적으로 남의 정권교체기이든 아니든, 북의 김정일체제 이후와 관련이 있든 없든, 다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경우는 북보다 남이 더 절실하다. 핵심적인 이유는 고착화된 남북 분단과 북한 핵문제가 1953년에 맺는 정전협정의 산물이며 이 정전협정에서 남은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일방은 북한·중국, 다른 일방은 미국이었으니 남한의 이승만정권은 오직 북진통일만을 부르짖으며 참여하지 않았던 오판을 범했던 것이다. 지금도 북이 남을 배제하고 미국을 상대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유신본당, 유신잔당, 한나라당이 남북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이용이 아닌 악용인 것은 정치적 이익을 국민적 이익, 민족적 이익과 일치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자 한나라당은 뭐라 했는가. “선거판을 흔들어 정권교체를 막아보겠다는 술책” 이라고 악담을 늘어놓지 않았는가.

이는 한나라당이 국민적 이익, 민족적 이익의 문제인 남북문제를 여전히 당파적인 이익에서만 보고 있다는 적나라한 폭로가 아닌가. 특히 이런 태도의 바닥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특정한 인식틀 안에서 대상을 생각하는 관성적인 사유방식, 정권교체에 방해가 된다는 권력적인 사유방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오락가락했다. 8일 정상회담 발표 직후 강력하게 반대했다가 불과 두세 시간 만에 조건부 찬성으로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이 오락가락에서 포착되는 핵심은 한나라당의 무책임한 ‘사대주의’다. 한나라당은 9일 새벽 남북정상회담 환영 및 남북정상회담은 북한 핵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미국정부의 공식입장이 발표되자 이를 그대로 받아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북통일의 우선적 원칙인 자주성을 염두에 두고서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변화를 두고서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지금 미국은 남북분단의 고착화를 통한 평화체제를 지향하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의도대로 한반도 정세를 이끌어 가려는 국제정치적 게임을 주도적으로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국제정치적 안목과 함께 국민적, 민족적, 민족사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제 당파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비판할 수 있고, 의제나 성과와 관련해 이런저런 요구를 주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족의 최대사업인 통일로 가는 과정에 기여할 수 있고, 대선국면에서 당파적 이익도 챙길 수 있다. 당파적 이익조차 챙기지 못하고 민족적 이익에 반하는 헛소리나 늘어놓는 것은 그야말로 퇴출감이다.

이 점에서 왜 정권교체를 목놓아 부르짖는 한나라당이 여전히 구태를 반복하고 있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과연 개인에게나 집단에게나 사유의 전환이란 힘든 것일까. 현재로선 딜레마로 남을지 서광이 비출지 좀더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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