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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도 안 되는 기러기아빠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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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도 안 되는 기러기아빠를 위해?

〔벼리의 돋보기〕인수위의 천박한 영어공교육 강화정책

벼리 | 기사입력 2008/01/29 [04:08]

한줌도 안 되는 기러기아빠를 위해?

〔벼리의 돋보기〕인수위의 천박한 영어공교육 강화정책

벼리 | 입력 : 2008/01/29 [04:08]
청소년 시절 자발적으로 ‘학교교육’을 거부하고 학교를 때려치운 경험을 가지고 있다.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후회없이 살아 왔으니까. 지금도 한국사회의 초중등교육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핵심은  ‘공부’가 없다는 데 있다. 한국의 학교교육은 크게 세 가지 병을 앓고 있다.

첫째, 앎(지식)에 관한 것이다. 앎을 새롭게 탄생하는 세계의 표상이 아니라 ‘미리 구성된 세계의 표상’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 앎의 참과 거짓 또는 O와 X라는 내용중심, 교과서 중심의 교육이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다뤄지지 않은 무수한 삶의 사실들, 진실들에 침묵하는 인간이 길러지기 딱이다.

둘째, ‘미리 목표를 정해놓고 정해진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교육’이라는 점이다. 바탕에 깔린 교육철학은 쓸모를 척도로 삼는 기능주의다. 소유하고 축적하는 교육 따라서 아무리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앎이나 깨달음도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남이 가지 않은 길 따라서 스스로 개척하는 길은 배움의 과정에서 고민하는 후대에게 고려되지 않는다.

셋째, 생활세계를 좁은 교실의 연장으로 본다는 점이다. 생활세계의 한 복판에 학교교육이 놓여 있음을 보지 못한다. 교육의 중심축은 여전히 교실이다. 생활세계 자체에서 비롯되는 가르쳐야 할 것, 배워야 할 것은 고민되지도 실천되지도 않는다. ‘열린교육’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 영어공교육 강화정책에는 왜 후대들이 영어를 배워야 하고 잘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 질문이 생략되어 있다. 잘못된 철학적 근거에 대한 무반성, 교육에 대한 권력의 지배의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영어공교육 강화정책이다. “기러기 아빠와 펭귄 아빠 현상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이 당선자와 인수위가 토해내는 한심한 그것이다.  사진은 1월 28일 오전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인수위 간사단회의에서 이경숙 인수위원장과 인수위원들이 회의를 하면서 웃고 있는 모습.(사진출처; 민중의소리)    © 성남투데이

이런 앎의 왜곡, 목표지상주의, 삶과 앎의 괴리라는 교육현장의 병리들은 인간을 계몽과 훈육의 대상으로 삼는 서구의 근대이성주의의 산물이다. 바로 비서구에 대해서는 지배의 권력의지를 가진 서구중심주의의 산물이다. ‘선진화’를 내세워 선진국 미국를 따라가겠다고 새 집권세력이 지금 교육에 마구잡이로 개입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런 교육의 병리들, 잘못된 철학적 근거에 대한 무반성, 교육에 대한 권력의 지배의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영어공교육 강화정책이다. “기러기 아빠와 펭귄 아빠 현상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이 당선자와 인수위가 토해내는 한심한 그것이다. 기러기 아빠? 펭귄 아빠?

맙소사! 이들은 대개 교수들이다. 이들 뿐만이 아니라 참새 아빠니 독수리 아빠니 하고 부르는 아빠들을 다 합쳐도 이들 모두는 교수, 대기업 임원, 부자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한 줌도 안 되는 무리다! 결국 극소수가 아닌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층 부모들로 하여금 “나도 그런 아빠 한 번 돼봤으면 좋겠다”는 심한 박탈감을 안겨주는 정책인 셈이다.

대체 누구냐? 이 당선자와 인수위다. 새로운 집권세력이다. 당초 이 당선자가 밝혔던 바 사회적 통합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분열을 초래하는 장본인이 바로 이 당선자를 비롯한 새로운 집권세력이라는 적나라한 고백인 셈이다. 여기에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사회적 우려도 빠뜨릴 수 없다. 영어교육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전문적 식견들이 무시되는 새로운 집권세력의 권력적인 태도 역시 심각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어공교육 강화정책에는 왜 후대들이 영어를 배워야 하고 잘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 질문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병리현상을 보이는 교육현장에 대한 성찰과 개선없이 따라서 새로운 인간과 이를 위한 교육에 대한 모색없이 특정과목에 불과한 영어교육만을 강화하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사태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런 왜곡된 교육을 통해 길러낸 인간이 결국 어떤 인간일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영어 중심의 병리적인 교육현장에서 길러지고 더 나아가 외국유학을 통해 서구중심주의자들에게 배운 자들이 결국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미국의 앞잡이가 될 게 아닌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다수의 동포들을 깔보고 짓밟는 우월주의자가 될 게 아닌가. 이들이 한국사회의 지배자로 등장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국사회의 질곡은 지금도 서구중심주의 특히 유독 미국에 편향된 친미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 있다. 이는 한국사회가 분단문제의 해결은 물론 지구촌의 일원으로 부여받은 의무를 다하는 데서도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 중 상당수는 비서구에 속하면서도 우리보다 못 산다는 단 하나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만으로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제3세계 사람들을 깔보고 짓밟는 민족우월주의자들이 아닌가.

이른바 세계화 담론을 일정한계 안에서  받아들인다고 해도 한국사회의 새로운 길은 영어에 매달리고 미국에 매달리는 길에 있지 않다. 다양한 나라, 다양한 민족, 다양한 사회의 차이와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을 때 새 길은 열릴 수 있다. 이 길이 한국사회가 번영할 수 있고 성숙될 수 있는 길이다. 아직 우리가 걷지 못한 길이다. 바로 우리의 후대가 걸어야 할 길이다.

우리의 후대가 새 길을 큰 오류없이 잘 걸어갈 수 있도록 한국의 교육이 변해야 한다. 교육정책이 변해야 하고 학교현장이 바뀌어야 한다. 이보다 더 절박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지금 당장 교육을 뒷받침하고 있는 잘못된 철학적 근거, 교육현장의 잘못된 현실에 대한 철저한 성찰, 무원칙한 개입을 능사로 삼아온 국가의 반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그런데 영어교육 중심의 천박한 공교육이라니. 세상에 국가정책 중에 이런 탱자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사회가 퇴락의 길로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이 당선자와 인수위의 이런 반역사적이고 반사회적인 행태에 안티가 필요하다.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새 집권세력의 아집과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사태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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