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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못마땅한 언론

[벼리의 돋보기] 기자 그리고 언론

벼리 | 기사입력 2005/08/24 [04:27]

자주 못마땅한 언론

[벼리의 돋보기] 기자 그리고 언론

벼리 | 입력 : 2005/08/24 [04:27]
기자가 뭔가? 기록하는 사람이다.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추켜세워 말하면 현대판 사관이라 할 수 있다. 사관은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사람이다. 만약 기자가 비틀거나 더하거나 빼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는 기자가 아닌 것이다. 기자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좀처럼 기자를 믿을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언론은 뭔가? 말에 대한 론이다. 어떤 말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이다. 언론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잣대가 있어야 한다.   사진은 성남시 홈페이지에 링크되어 있는 언론사 사이트들.  © 성남투데이

기자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부지불식간 지니게 된 편견이나 선입관으로는 결코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이념이니 사상이니 철학이니 아무리 고상한 척 표방해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면 다 포장에 불과하다. 만약 지금까지 평생 도적질만 해온 사람이 죽기 전에 개과천선해서 도적질한 물건을 되돌려 주기 위해 남 몰래 담을 넘다가 잡혔다고 치자. 선입관을 지닌 기자는 틀림없이 도적놈이 잡혔다고 신문에 쓸 것이다.

사람이나 사람 일의 경우,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기자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 전한다. 언론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많은 정보들이 이른바 쓰레기 정보로 되는 까닭도, 언론이 나팔수 노릇한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고 했으면 지금 당장 기자 짓을 그만 둬야 할 사람이고 모르고 했으면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안목을 부지런히 길러야 한다.

기자가 기사를 쓸 때 독자에게 전할 내용을 정리하고 그 내용에 담긴 메시지를 기사 제목으로 담아내는 것도 필수자질이다. 일반적으로 독자들은 기사제목을 보고 기사를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메시지로서의 기사 제목은 중요하다. 전할 메시지가 확실치 않아 초점을 알 수 없거나 전할 내용을 요약해 드러내지 못하면 그것은 영락없이 실패한 메시지다. 하물며 없는 것을 전할 때야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같은 메시지라도 어떤 표현을 쓰느냐에 따라 메시지의 값이 달라진다는 점도 중요하다. 표현력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타성에 젖어 비슷비슷한 기사제목을 쓰는 메시지 전달 방식은 그 값이 똥값일 수밖에 없다. 표현력의 부재, 바로 그것이다. 표현은 늘 새로운 고민과 모색을 요구한다. 머리를 비우지 않고는, 상상하는 태도가 배이지 않고는 표현력은 결코 향상되지 않는다.

언론은 뭔가? 말에 대한 론이다. 어떤 말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이다. 언론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잣대가 있어야 한다. 잣대 없이는 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긴 하나 남에게서 빌린 것이라 해도 자기가 능숙하게 쓸 수 있는 잣대가 있어야 한다. 남의 것을 잘 빌려 쓰기 위해서도 자기 잣대가 있어야 한다. 결국 자기 잣대가 없는 사람은 언론하기 어렵다. 기자는 되도 언론인은 못된다.

언론하기 위해서는 론에 앞서 언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편견이나 선입관에서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 맥락에서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 자체의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고 포장된 문제의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위험한 언론행위의 시작도 없다. 많은 언론행위들이 이런 기초에서 어긋난다. 이런 언론행위들은 당연히 어딘가 뚫려 있고 심하면 헛소리다. 안목이 높은 독자들은 당연히 주접떤다고 간주해버리고 만다.

기자가 언론인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부지런해야 한다. 그 방식이야 다양할 수 있지만, 언론인의 글쓰기가 전문가나 비평가들의 글쓰기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내용상 잡스러워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잡스럽되 그 잡스러움의 전문성을 끌어올리는 일도 중요한 일상적 과제다. 어떤 기자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특히 언론에서 가장 발육상태가 느려터진 지역언론에서 이런 기대는 아직 요원하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기자만 기자하는 시대가 아니다. 언론인만 언론인하는 시대가 아니다. 시민기자던가, 아니면 게릴라기자던가, 아무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게 종종 문제이긴 하지만. 또 인터넷의 영향, 다문화적 현상의 영향으로 주고받는 쌍방향 시대가 도래되었다. 이 탓에 이른바 댓글저널리즘도 성행한다. 얼마든지 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개미 언론인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문제가 적지 않다. 익명성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더니 요즘은 이조차 조직적인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의 사례에서 보듯 여론을 왜곡시키기 위해 전담하는 사이트별로 뭐, 사이트전사대 활동을 펼친다나. 대개 다양한 형태의 집단에 소속된 패거리주의자들이 이런 소행을 자행한다. 하긴 성남투데이의 댓글을 보면 제 생각을 온전히 전한다거나 책임감이 있다고 느끼는 댓글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쌍방향의 문화를 지탱할만한 대화와 토론, 논쟁이라는 민주주의 훈련이 결여되서다.

특히 요즘 기자나 언론이 결여된 것이 있다. 통시적인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공시적인 일람과 분석 곧 때마다 몇 마디 토해내는 시론은 많아도 문제를 바닥에서부터 천착해 들어간다거나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는 그런 통시적인 시각이 보기 어렵다. 대개 사회의 문제들은 시간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또 그런 뿌리를 가진 현실의 문제들은 종종 미래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비판 못지 않게 해결이나 대안의 모색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기자, 언론이 눈여겨 볼 중요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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