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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차를 마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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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차를 마시며

벼리 | 기사입력 2008/11/10 [08:10]

국화차를 마시며

벼리 | 입력 : 2008/11/10 [08:10]
▲ 국화가 한창이다. 내 곁에서 몇 해를 함께 한 야생국화다.     © 2009 벼리

의(義)로 맺은 아우가 손수 만든 국화차를 작은 비닐봉지에 절반쯤 담아서 주었다. 양평에서 양파자루 두 자루 가득 산국을 따다가 제다(製茶)했다고. 소금물에 찌고 따스한 방바닥에 널어 말려 모은 것이 겨우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채울 정도란다. 아우가 슬그머니 넘겨주니 형은 그저 말없이 받을 뿐이다. 고이 받았으니 그 맛을 음미하며 마셔야 하는 법이다. 가을이 다 지나가기 전까지는.

국화차를 마신다. 그 맛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말이 없다. 실은 말이 마땅치가 않다. 그 맛이 쓴 계열이라고 해서 가령 씁쓰름하다는 말을 하나 끄집어내도 같은 계열의 다른 표현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물론 씁쓰름하다는 말은 그 맛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아이와 어른의 차이처럼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추상적인 수준이지 체감 수준은 될 수 없다. 이런 사정은 빛깔에서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래서 그저 몸으로 받아들이는 국화차. 단지 형용하기 어려운 어떤 느낌만을 간직한 채 말의 차원은 버리게 된다. 몸과 국화차가 하나 되어 남을 뿐이다.

국화차 한 잔을 아버님께 올린다. 좋아하신다. 깊게 주름 팬 얼굴에 어느 새 오전 양지 같은 미소가 도신다. 그것은 늘 아버님이 기거하시던 그 산들의 자연, 그 자연의 미소다. 차 맛을 보셨는가보다. 아버님이 한 말씀 툭 내놓으신다. ‘막내 놈이 최고다’. 슬며시 나는 미소가 인다. 어느 새 즐거움은 슬픔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만 눈물이 뚝 떨어진다. 지금 내 앞에는 아버님이 안 계신다. 아버님은 몇 해 전 돌아가셨다. 국화차를 마시다가 문득 돌아가신 아버님이 그리워서, 그 그리움에 국화차 한 잔을 올린 것이다. 의례 아닌 이 작은 의례. 나는 왜 돌아가신 아버님에게 국화차를 올리나.

돌아가신 아버님은 스스로 국전(菊田)이라 이름하셨다. 아버님의 고유명. 내가 어렸고, 아버님이 산으로 들어갈 무렵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그 이름은 산사람들의 심오한 여느 이름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 차이에 대해 나는 왜 그런 고유명을 갖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의문에 상관없이 그저 유물론적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고 그런 느낌만으로 그 이름을 받아들여 왔다.

그 고유명만큼이나 아버님 곁에는 늘 국화가 피었고 아버님의 계절은 가을이 한창 지날 무렵이었다. 기거하는 곳마다 국화를 즐기신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아버님을 그리워할 때, 어떨 때는 아버님 얼굴 위로 노란 국화꽃이 오버랩 된다. 또 어떨 때는 아버님 얼굴 대신 국화꽃이 떠오른다. 그 국화꽃은 짙은 향기를 흩뿌린다. 향기는 떠흐른다. 게다가 그 향기에는 일교차가 큰 늦가을, 아마 첫 눈이 내릴 무렵의 그런 한기가 있다. 국화꽃 향기는 차갑다. 눈에 아른거리는 국화꽃은 어느 새 차가운 향기로 달려들어 가슴을 찌른다. 국화꽃처럼 그렇게 살다간 아버님을 나는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나는 지금 국화차를 마신다. 국화꽃 같이 살다간 아버님과 함께.

돌아가신 아버님과 나는 다르다. 상당히 다른 삶, 다른 생각과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훨씬 이전부터 아버님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인정했다.  그 삶이 여느 사람들과 사뭇 달라서가 아니다. ‘다르게 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사는’ 삶 자체, 그것을 어느 순간 내가 분명히 깨닫게 된 까닭이다. 어쩌면 이 지구상의 다른 누군가도 그러하리라. 그가 누구든, 그런 삶은 국화꽃처럼 살다간 그것이 아닐까. 아버님 임종의 순간, 나는 불현듯 요괴스러운 불친(不親)의 생각을 떠올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삶을 얼마나 들여다봤고 어떤 경계에서 죽음의 길로 들어 섰나라고 말이다. 모른다. 다만, 나는 나름대로 치열하게 이 세계와 대적했던 아버님의 그 모습을 그려낼 수는 있다. 그것을 나는 국화꽃으로 그리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아버님께 국화차를 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올리는 국화차는 자식의 도리 이상인 셈이다. 어쩌면 그 도리와 전혀 무관할지 모른다. 무관해도 좋다. 그러나 일종의 의례랄까 자연스러운 이 작은 행위에서 나는 나와 아버님 사이에 끊어지지 않는 어떤 끈을 본다. 그 끈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면 그것은 나를 낳아준 인연, 아이인 나를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어른으로서 가르친 인연, 함께 또는 따로이지만 함께라고 말할 수 있는 생의 시간들을 통해 만들어진 어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님의 임종 이후 뚜렷이 알게 된 것이다.

이 점에서 그 끈이란 게 어쩌면 아버님의 죽음 그 자체가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것이다. 실은 아버님이 지금 내 곁에 안 계시다는 사실에서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 찾아들었고, 이 그리움으로 나는 아버님에게 국화차를 올린 게 아닌가. 그렇다. 나와 아버님을 잇는 끈은 다름 아닌 죽음이다. 산자와 망자, 살고 있는 자와 이미 죽은 자, 현재와 과거를 잇는 끈이 죽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죽음에 무슨 특별한 의미나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이란 다만 삶의 바깥일뿐이다. 이 점에 관한 한, 예나 지금이나 나는 투철하다. 삶에 대해서는 많은 느낌,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나는 단 한 마디의 말도 꺼내지 못한다. 죽음 앞에서는 어떤 체감도 거부당한다는 것을 이미 나는 체득했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분해된다는 것은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감각이 없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에피쿠로스, 쾌락)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므로 죽음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내가 어떤 반작용도 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도저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타자라면, 죽음은 가히 절대적인 타자다. 그것은 이쪽의 삶으로부터 오는 그 어떤 것도 겨자씨 한 톨만큼도 접근과 용인을 불허하는 그런 것이다. 가령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세속의 거대한 권력도, 죽음에 가까운 어떤 미친 사랑조차도 죽음 앞에서는 태양 앞에 녹아내리는 이카로스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상황은 삶과 죽음의 관계가 완전한 비대칭성에 있음을 알게 한다. 이것이 바로 삶과 죽음을 잇는 그 끈의 본질 같은 것이 아닐까. 본질적인 이것을 시간의 관념에서 본다. 그것은 이런 것이리라. 삶이란 가령 30년, 60년, 100년과 같은, 그런 두께를 지닌 축적의 생(生)이 아니라 “지금 막 태어난 것처럼 세상을 떠나는”(에피쿠로스, 같은 글) 그런 찰나와 같은 것이다.

그럼 삶이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삶’을 위한 죽음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삶은 곧 죽음이다. 내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처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의 삶은 이내 나의 죽음으로 나의 후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죽음을 절대적 타자로 고려하는 한, 기실 삶이란 없다. 그 삶을 삶이라고 강변하는 어떤 이념도 또는 삶과 죽음을 심연으로 가르는 각종 세속적인 장치들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죽음 앞에서는 하나의 시간만이 도래할 뿐이다. 그것은 ‘영원’이다.

시계나 달력으로는 잴 수 없는 시간. 타임머신으로도 되돌아갈 수도 없고 건너 뛸 수도 없는 그런 시간이다. 영원은 이미 죽은 자, 지금 살고 있는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를 늘 실어 나르며, 그것도 늘 함께 실어 나른다. 영원이란 그런 시간이며, 그런 시간으로서만 내게 도래하는 것이다. 결국 영원은 고유명을 가진 자, 오직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시간이다. 균질적인 일반에 해소되고 그런 일반의 한 질로서, 따라서 아무 질이 아니고 따라서 그저 양에 불과한 개(個)로 살아가는 한, 그 누구도 이미 죽은 자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도 직접 만날 수 없다. 그에게는 영원의 기회가 결코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그 기원을 찾는 내셔널리즘이 실은 근대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방식으로 기원을 지워버리는 이 망각이 일반-개라는 관념 속에서 공유된다는 것은 눈 부릅뜨고 보지 않으면 안 되는 단층과 같은 지점이다. 이 지점은, 말하자면 내 이웃들을 빠뜨리는 뻥 뚫린 구멍 아니 블랙홀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쳐보지 않는 한 자신의 얼굴을 아는 방법은 없다. 그런 것처럼 이미 죽은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와 마주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자는 스스로를 알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망각은 차라리 잔혹한 폭력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어디선가 그 누군가도 자신의 고유명, 자신의 고유한 삶으로 이 세계와 마주칠 수 있기를. 부서지고 흩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세계와 대적할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여기 내가 국화차를 마시며 떠오른 한 구절은 나의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내 아버님과의 사연(私緣)의 소산은 아니다. 오히려 보편적인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것은 그 누군가에게는 그의 것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다른 무늬, 그의 무늬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고 또 그렇게 나타날 것이다.

‘저무는 가을 돌아가신 아버지와 국화차라니!’

 
  • 高度
  • 슬픔
  • 불안이라는 병
  • 유언
  • 국화차를 마시며
  • 머리가 맑아질 때까지
  • 춘란처럼
  • 無題
  •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 이것은 神이다
  • 몽골 초원에서
  • 계란으로 바위치기
  • 어떤 사소한 즐거움
  • 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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