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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라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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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라는 병

벼리 | 기사입력 2008/11/29 [03:22]

불안이라는 병

벼리 | 입력 : 2008/11/29 [03:22]
▲ 글을 쓸 때마다 불안을 느낀다. 게다가 이 불안은 천당과 지옥 사이를 오가는 강도를 갖는다.     © 성남투데이

글을 쓸 때마다 불안을 느낀다. 게다가 이 불안은 천당과 지옥 사이를 오가는 강도를 갖는다. 고집일지 모르지만 죽은 글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려는 탓이다. 매번 그렇다면 그것은 병인 셈이다. 대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또는 사람들은 대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 후자가 진실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불안이라는 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아니 무심하다. 글을 쓸 때마다 글감을 다루기 위한 지식, 판단, 수사의 문제가 불가피하게 따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이 병은 그 원인을 알고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 치유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쓰는 한, 안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병 즉 불치병이다. 불안이라는 불치병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글 쓰는 행위가 계속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 불안을 즐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도박꾼이 돈을 따는 것보다는 돈을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도박 자체를 즐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도박꾼과 같은 강도로 천당과 지옥 사이를 오가는 글을 쓰는 동안 불안은 차라리 쾌락이다. 쾌락으로서의 불안, 그것은 오히려 글을 쓰고 계속해서 글을 쓰게 하는 엔진이다. 아마 삶 자체가 불안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삶의 불안은 기독교적 원죄 개념과 인생은 무죄라는 무구함 사이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파악한 키에르케고르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매번 결행할 때마다 발생하는 것이며 오히려 어떤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불안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교환의 어려움과 같은 것이다. 어떤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교환의 성립으로 볼 경우, 잘 만드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잘 만들어도 팔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불안을 낳고 말기 때문이다. 불안이라는 병, 이 불치병은 숙명과 같은 것이다.

 
  • 高度
  • 슬픔
  • 불안이라는 병
  • 유언
  • 국화차를 마시며
  • 머리가 맑아질 때까지
  • 춘란처럼
  • 無題
  •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 이것은 神이다
  • 몽골 초원에서
  • 계란으로 바위치기
  • 어떤 사소한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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