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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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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란처럼

벼리 | 기사입력 2008/02/10 [22:56]

춘란처럼

벼리 | 입력 : 2008/02/10 [22:56]
▲ 춘란은 지금 춥고 외롭습니다.     © 2008 벼리

세상이 한쪽으로 치우쳐 흘러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한쪽을 향해 치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들의 관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비유컨대 일맹인중맹(一盲引衆盲)의 형국인 듯합니다. 요즘 느끼는 세상이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몸도 마음도 춥고 외롭습니다. 바깥에 나가기도 그저 귀찮기만 합니다. 문득 몸서리 칠 때가 찾아듭니다. 그 때 부재에 가까운 허무함이 밀려듭니다. 내 삶보다 짧았던 어느 시인이 읊조렸듯이 ‘들길에 떠가는 담배연기처럼’…….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마다하지 않습니다. 삶은 선택임이 분명하니까요. 그 길 위에서 마주치는 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일지라도 피할 수도 없거니와 피할 이유도 없는 까닭입니다. 오히려 고통은 고통이 아닌 듯합니다. 역설 아닌 이 역설은 이미 기꺼이 고통을 감수(感受)하는 길 위에 선 까닭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너무 크게 보아온 게 아닌가 되돌아봅니다. 남의 허물은 봐도 내 눈의 티끌은 보지 못한다 했습니다. 그런 게 아닌가 하고 말이죠. 하지만 선택한 길 위에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부단히 애를 써왔다는 느낌만은 지울 수 없습니다. 그 안간힘이 종종 고통으로 전이되는 게 아닌가 의심도 해봅니다.

사람이 사람 이하일 때 산이 다가섭니다. 그 때 산은 사람 이상으로 다가옵니다. 춥고 외로운 심사를 이기지 못해 산에 들었습니다. 인적을 느낄 수 없는 산이라니 아주 그만 아니겠습니까. 온산을 그저 짐승마냥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지요.

붉은 잎으로 겨울나기 하는 인동초. 눈밭에 난 산토끼 발자국. 한 뺨 정도의 땅을 차지하고도 묵묵히 수십 년의 성상을 버텨온 소나무. 그러다가 바위 틈 춘란을 만났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마치 나를 만난 듯했습니다. 춥고 외로워 보였으니까요. 춘란이 나일까요, 내가 춘란일까요.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그 곁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춘란이 말을 했습니다. 다만 춥고 외롭게 살다가라고. 그렇게 살아가면 냉철함은 잊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살아가면 분노할 때 분노하고 사랑할 때 사랑하겠노라고. 마치 ‘거리(距離)의 열정’을 유지하라는 니체의 음성을, 하나가 아닌 ‘둘의 논리’를 잃지 말라는 이탁오의 음성을 듣는 듯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춘란이 푸르름을 잃지 않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춘란이 왜 이른 봄 수수한 꽃망울을 터뜨리는지도 알겠습니다. 춘란은 지금 춥고 외롭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춘란을 사랑하기 때문이겠지요. 소나무 숲 사이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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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가 맑아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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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은 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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