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남한강을 따라 걸었습니다. 시원했습니다. 강물에 떨어지는 낙엽에 자신을 태우면 어찌 그리 신이 나던지요. 가을바람이 이리저리 밀어주니까요. 두 세 시간을 그렇게 강에 정신을 잃다가 산자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아, 황홀했습니다. 풀과 나무와 숲이 저녁햇살에 반짝거리는 데, 눈에 마주치는 모든 존재들이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녁햇살이 비추는 때는 늘 고요함 속입니다. 더구나 절기는 늦가을 아닌가요. 그래선가요. 몸이 빠져드는 그 고요함이란 어디 비할 데가 없지요. 이러한 때에 모든 존재들 역시 비할 데 없이 또렷이 자신을 드러냅니다. 어찌 미치고 환장하게 황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억새풀 하나, 바닥에 떨어진 낙엽 하나, 나무 한 그루, 메말라가는 풀 한 포기, 심지어 언덕의 움푹 패인 곳과 산골짜기의 거무스름한 그늘조차 아주 또렷했습니다. 빛을 받으며 빛을 발하는 존재의 앞과 빛의 그늘진 존재의 뒤 모두 또렷했습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어떤 주관도 일으키지 않고, 마주치는 모든 존재들을 저대로 있게끔 하는 전혀 새로운 태도가 실감납니다. 확연히 알겠습니다. 이 몸의 앎, 그것은 무엇인가요. 혹시 저 옛사람이 오래 전 내게 날린 한 촉의 화살이 아닐런지요. ‘회광반조(回光返照)’ <저작권자 ⓒ iwa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많이 본 기사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