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수입리(水入里)에서

벼리 | 기사입력 2005/02/07 [04:48]

수입리(水入里)에서

벼리 | 입력 : 2005/02/07 [04:48]

장작난로의 온기가 좋다. 겨우내 얼었던 몸이 녹는 듯하다. 강 건너 아른거리는 불빛은 한겨울 밤의 작은 꽃이다. 어둠은 해석되지 않는 또 하나의 여백이므로. 밤 늦도록 술을 마셨다.
 
늦은 아침 잠에서 깨자 몸은 어느 새 강가로 달려나갔다. 예전엔 북한강 물이 드나들어 작은 나루터가 있었던 곳. 이름이 곱기도 하지. 수입리(水入里)다.
 
어디라 할 것도 없이 눈 가는 대로 맡긴다. 시야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 탁 트인 곳은 몸과 자연, 그 걸림 없는 소통과 상감(象嵌)의 로망스가 찾아 든다. 물론 그 로망스는 뜨거움이 아니라 다만 서로를 일깨움으로써 족함을 아는 그것이다.
 
▲ 하늘과 강 사이에 산들이 흐른다. 흐르는 기운을 느낀다. 북한강변 수입리에서.     © 2005 벼리

 
하늘이 흐린 탓인지 시간이 정지된 듯하다. 얼어붙은 강 역시 그런 하늘 못지않게 광활함 속에 시간을 정지시킨 듯하다. 순간 텅 빈 하늘과 강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하늘과 강 사이로 흐르는 산들이 그것이다.
 
말이 말을 한다고 하던가. 흐르는 산들에서 산의 말을 들으며, 그 말을 통해서 그 말을 듣는 하늘과 강의 말을 듣는다. 노자의 아포리아,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아서 그 안은 텅 비어 있지만 만물을 생성하는 기운은 계속해서 나온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러니 텅 빈 하늘과 강을 어찌 산들을 양각(陽刻)하는 배면(背面)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그것은 여백이면서 여백이 아니다. 여백이 아니므로 큰 여백인 듯하다.
 
더구나 그 여백이면서 여백이 아닌 것은 하나의 말로는 들리지 않는다. 무수한 의미의 기표 따라서 의미와 어긋나야 들리기 시작하는 기표일 뿐이다.
 
비움으로서 채운다던가. 그러나 그 채움은 빈 것을 채우는 채움이 아니라, 다만 마주치고 헤어지고 그리하여 함께 실려 마냥 흘러가는 고요한 즐거움이다. 삶이 죽음을 향한다고 잘라 말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으리라.
 
하늘과 강 사이에 산들이 흐른다. 흐르는 기운을 느낀다. 북한강변 수입리에서.
 
  • 高度
  • 슬픔
  • 불안이라는 병
  • 유언
  • 국화차를 마시며
  • 머리가 맑아질 때까지
  • 춘란처럼
  • 無題
  •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 이것은 神이다
  • 몽골 초원에서
  • 계란으로 바위치기
  • 어떤 사소한 즐거움
  • 조롱
  • 근조 서민경제
  • 봄날에
  • 성불사
  • 남한산에서
  • 紅一點
  • 많이 본 기사
    많이 본 기사